큰엉에서 바라 본 제주 바다
제주 여행에서 이런저런 일로 시간을 보냈다. 둘째 날 아침, 쇠소깍에서 정말 멋진 자연 작품에 입만 멍하니 벌리다 인근에 가까운 곳에 한번 둘러 보기로 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쇠소깍에서 가까운 큰엉에 갔다. '엉'이란 말은 우리 동네에도 있다. 웅덩이처럼 쑥 들어간 곳을 말하는데 '큰엉'이면 '큰 웅덩이' 같은 곳인가 보다. 큰엉에 가니, 무슨 리조트 같은 곳에 주차를 하고, 안으로 걸어갔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여기 볼만한게 있는 지 물어니 그럭저럭 볼만하단다.
한 많은 제주 아낙의 모습이 애처롭게 느껴지는 건 나만 그런가? 물도 지고, 해산물도 지고, 농작물도 지고.
어머님의 굽은 허리가 마음 쓰린 이유는 한 평생 고생만 하고 이제 조금 허릴 펼 때가 되니 굽은 허리가 펴지지 않는 그 초라함 때문일까?
인디언 추장의 얼굴을 닮았다는 큰엉 인디언 바위다. 사람이 부여하는 의미는 국경을 초월한다. 작은 의미를 부여하여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것도 아이디어다. 물론 저 바위 때문에 이 곳에 사람들이 찾지는 않을 것이다. 이 곳에 와서 누군가가 외친 '인디언 닮았다'는 말이 시작이었을 것이다.
푸른 남부의 바다를 원없이 바라본다. 시원하다. 해는 뜨겁고 습도는 높지만, 눈은 시원하다.
한반도란다. 보기에 따라서 달라지는 모양도 참 좋다. 내 고향 거류산 꼭대기에서 당동만을 바라보아도 한반도가 보인다. 한국은 한국인가보다. 땅 모양이 온 천지에 널리고 널렸다.
바다를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은 다들 다를진데 바다를 바라보는 그 모습은 닮았다. 한 곳을 바라보는지 다른 곳을 바라보는지. 자신이 보고 싶은 그 어느 지점을 바라보며 있을 것이다.
셋이 바라보아도 바라보는 지점은 조금씩 다를 듯 하니, 한 배에서 낳고 나도 그 마음이 같지 않으니. 타인의 배에서 나온 두 사람이 어찌 쿵짝이 잘 맞겠는가? 그러니 맞춰 갈 뿐이다.
같지만 다른, 다르지만 같은 그런 가족 구성원은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맞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최소 집단이다. 집단은 개인보다 강하지만, 하나가 되긴 싶지 않다. 개인은 그 나름의 멋을 가지고 있지만, 혼자서 해내지 못하는 일이 있다. 결국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다. 물론 '혼자' 문화가 번성을 누리지만, 영원한 '혼자'는 존재하지 않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더운 날씨에 다들 지친다. 나도 지친다. 여행이고 뭐고 빨리 시원한 곳이 그리운 이유는 아마 다 비슷하지 싶다.
이런 설정도 정말 오랜만이다. 가가만히 생각하니 아니 그냥 생각해도 함께 한 지 십 수년은 훌쩍 지나버렸으니 참. 세월 빠르다.
나는 아들이 찍어주는 사진이 좋다. 그런데 더우니 인상은 찌푸려진다. 우낀 사실은 나는 사진을 찍으며 아이들에게 웃으라고 한다. 정말 웃기는 빵꾸똥구다. 이젠 그러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