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을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한껏 폼을 잡아보기
금요일은 오전부터 분주했다. 아이들의 하굣길을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자, 팔룡 교육단지 학부모들이 뭉쳤다. 간식을 준비하고, 현수막과 종이를 준비하여 아이들의 소망도 적고, 자기 자랑도 하고, 친구 자랑, 학교 자랑을 맘대로 적는 시간을 가졌다. 작은 문화행사지만, 훗날 아이들에게 작은 추억이라도 되고자 매월 한 번씩 부모들이 고생 좀 하기로 했다.
팔룡초등학교 도서관에서 엄마들이 모여 분주하게 하루를 준비한다. 처음이지만 마음만은 척척 맞다. 하기야 마음도 맞지 않으면 어찌 이 일을 저지르겠는가?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나름은 괜찮은 놀이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한 주의 마무리가 상쾌하다.
아이들에겐 연예인이 인기가 좋다. 참 세상이 신기하긴 하다. 나와 이렇게 다른 아이들을 이해하려면 내가 아이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꼬마들이 하교하는 길에 마음껏 글을 적고 나면, 손수 준비한 과자를 한 봉지씩 안긴다. 그저 아직은 시작이다.
시작이라 미흡하지만, 문화란 이렇게 어릴 때부터 하나씩 쌓여가는 세월의 역사다. 그렇기에 우리는 멈출 수 없다.
행복 8단지 행사를 마치고, 학교운영위원회 임원진 모임이 있어서 갔다. 어시장에서 회에 소주를 몇 잔 했다. 그리고 창동으로 나가니 이렇게 멋진 연말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온 도시가 이렇게 불빛으로 화려하면 밤은 어디로 가버리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과음을 하게 되었다. -상황이 상황이니, 그럴 수밖에 없는 장면이지만 짜증이 나는 것은 사실- 아침의 시작이 달갑지 않다.
비몽사몽간에 깨어 아이들과 김장 김치를 진주 처형으로 보내고, 잠시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아직은 핸드폰이 없는 아이들만 버스를 태워 보내는 부모 마음이 편하진 않다. 속은 쓰리고, 마음은 휑 하고, 몸은 으스스하다.
마산문인협회 대표로 경남문학상 시상식과 경남 문학인의 밤에 시 낭송을 하기로 했다. 며칠 전에 우연히 한 약속인데 이런 날에는 괜히 했다 싶다. 두 시간을 일찍 나섰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나도 호텔 커피숍에서 제법 폼나게 노트북으로 글을 긁적이면 어떨까 하는 낭만에서 시작되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그런 멋진 청년들의 모습이 부러웠나 보다. 사실은 경남 아동문학회에서 다음 집행부로 업무 이관을 해 주기 위한 소모임 약속도 있긴 했지만 말이다.
조금 일찍 나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지난 2년 간의 업무를 마무리하고, 어제의 행사를 영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필요한 밴드에 자료를 올렸다. 그러고 나서 사람들을 기다렸다. 신임 집행부에게 업무를 이관하고 나면, 나의 일도 어느 정도 마무리된다. 기분이 묘하다. 홀가분하기도 하고 앞으로 뭘 할까 하기도 한다.
내년 사업이 잘 되면 좋겠다, 하면서도 하는 일도 잘 되고, 글도 좀 많이 쓸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별 일도 없는데 별 일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 너무 욕심인가 싶다. 하지만 돈도 좀 벌어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당연지사인데 나는 마흔다섯이 되도록 하고 싶은 일에만 매달려 살았다. 해야 하는 일은 잠시 접어두고 말이다. 그러니 어찌 일이 쉽겠는가? 필요와 욕구에서 나는 욕구만을 갈망했다. 필용를 채워야 한다는 그 사실을 망각한 채.
어쩌면 우리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꼭 저런 모습이지 아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 본다. 아버지가 살아계시다면 이제 아흔이 되실 거지만, 팔순의 멋진 문학 선배님을 뵈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나는 이들을 위해 시 낭송을 했다. 내가 직접 쓴 동시를 수많은 형님들과 누님들 앞에서 당당하게 했다.
밀감을 까먹으며
-말글손
겨울밤 군불 잘 든 아랫목에 앉아
사과 무걸끼가? 밀감 무걸끼가?
사과는 깎아먹기 귀찮다며
방바닥에 배를 깔고 밀감 고집하는 막내 형에게
달콤 아삭한 사과 깎아 한 조각 건네면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고 또 달라며
슬며시 손을 내밀었다
겨울밤 보일러가 잘 도는 윗목에 앉아
사과 무걸래요? 밀감 무걸래요?
깎아 먹는 재미가 있다며
방바닥에 배를 깔고 사과를 고집하는 내게
까먹는 재미도 쏠쏠하다며
새콤달콤 밀감 한쪽 건네는 아들 보며
슬며시 입을 벌린다.
게 눈 감추듯 뚝딱 먹어치우고.
문학상 시상식이 끝나고 진주 금산으로 왔다. 굳이 커피숍에 앉아 글을 쓰기 위해 이 먼길을 오진 않았지만, 오후의 행동을 돌아보며 다시 글을 쓴다. 일기에 가까운 글이지만, 이 글마저도 쓰지 않는다면 내 삶은 틀림없이 아무런 흔적없이 흘러가버릴 것임에 틀림없다.
나의 #하루48시간 은 이런 의미다. 생활 속에서 나의 글을 남기는 것은 하루를 바쁘게 산다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바쁘더라도 쉬어가고 돌아가고 남기고 가자는 말이다.
모든 사람은 순간이 동화가 되기도 하고, 시가 되기도 하고, 동시가 되기도 하고, 수필이 되기도 하고, 소설이 되기도 한다. 그 글이 무엇이든 무슨 상관이랴? 나의 시간과 생각을 남기는 것을 빼고 나면.
우주는 물질과 시간과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간은 내가 선택할 수 없는 흐름이고, 공간은 나의 선택이며, 물질, 즉 나라는 존재는 나에게서 시작되고 끝난다. 그러니 나는 글을 쓴다.
누군가를 깨우치기 위해,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아니지만, 나 같은 놈이 그렇게 쓰고 사니 누구라도 할 수 있다는 그런 생각을 전해주고 싶다. 전부다.
얼마 전 어느 문집에 보낸 나의 글, 골목길을 다시 생각해본다.
골목길
- 말글손
빠름을 추구하는 도시는 언제나 반듯하기 마련이다.
시간을 옭아맬 수 없어 스스로가 시간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한없이 바쁘게 살아가다 어느 순간 멈춘다.
골목길로 접어드니 시작이 끝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끝이 빤히 내다보이는 직선에 익숙해진 나를 나무란다.
굽이친 골목길에서 멍하니 서 다시 인생의 길을 찾는다.
인생길은 직선이 아니다 인생은 굽이치는 골목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