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돌아오는 출발이다
다낭 공항에 도착해서 픽업 기사를 기다리는 시간이 제법 20분은 흘렀나 보다. 왜 기사가 늦게 왔는지 물어보는 아내에게 나는 나중에 이야기해 주겠다고 했다. 아내는 내 말이 못내 아쉬웠나 보다. 졸다가 나온 기사가 무안하겠다는 생각에 그냥 웃으며 그를 맞이했다. 호텔로 가는 동안, 한국에서 자주 만나는 베트남 사람들의 삶은 어떤지, 어떤 곳에서 사는지를 눈이 빠져라 살폈다. 밤거리가 제법 멋졌다. 베트남에서도 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공항 도착이 대략 현지 시각 새벽 1시경. 다낭 시내에 있는 센터 호텔이란 곳에 도착하니 새벽 2시경. 우리는 방으로 올랐다. 깨끗한 방이 마음에 들었다. 예전 필리핀 세부에 갔을 때 보다 훨씬 좋았다. 베트남이 새롭게 발전하고 신건물이 많이 생긴다는 느낌이다. 간단히 씻고, 소주를 몇 잔 마셨다. 맛났다. 역시 술은 소주다. 안주는 아이들이 먹는 컵라면 국물로 때웠다. 그런데 타국이라 그런지 벌써 라면 국물이 끝내줬다. 역시 라면은 우리 것이여.
3시경 즈음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곤했지만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도 자야 내일 아니 오늘 놀 수 있으니 잠을 청했다. 그리고 눈을 떴다. 나이가 들면 잠이 준다더니 참 맞는 말이다. 피곤했는지 모두가 깊이 잠든 6시에 떠오르는 태양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밖으로 발길을 돌렸다.
센터 호텔 방은 커다란 침대가 두 개 있었다. 어머님(장모님)과 두 아들이 함께 자고, 나와 아내가 한 침대를 썼다. 방 가격을 알려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잘 모른다. 대략 한화 5만 원에서 6만 원이라고 했던 아내의 말이 생각난다. 우리나라 같으면 최소 12만 원은 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나라는 방 값이 너무 비싸다. 나 같은 사람이 있으면 호텔은 모두 망할 것이다.^^ 센터 호텔 바로 맞으편에 있는 꽃집. 아니 꽃집이 이렇게 많다니? 그리고 꽃을 손질하는 남자들의 섬세한 손길. 그 손길이 그대로 느껴졌다. 아침부터 많은 이들이 꽃집을 들락거렸다. 꽃이 제법 인기 있나 보다. 처음부터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베트남에도 한강이 있다. 아내가 한강이라고 하기에 그냥 우리나라처럼 큰 강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진짜 이름이 한강이란다. 참 우습다. 흐린 하늘이 제법 맘에 든다. 물은 황토색 빛이다. 지금 보니 사진은 제법 운치 있어 다행이다. 강 너머에는 하나씩 솟은 빌딩이 멋있다.
통통배 한 척이 강을 따라 그물을 끌고 있다. 고기를 잡는 모양이다. 문득 든 생각이다. 물이 황톳빛으로 깨끗해 보이진 않지만, 우리나라의 강보다는 청정하리란 생각. 황톳빛은 자연적 여건일 것이고, 오염은 많이 되지 않았다는 생각. 눈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진짜가 중요하단 생각. 우리나라의 사대강은 이제 보기도 그러하고 진짜도 그러하니 마구 솟는 걱정도 지랄 맞다. 이사를 와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미쳤나 보다. 배 뒤로 멀리 보이는 다리가 Drangon Bridge이다. 용이 강을 가로지르는 듯한 형상이 멋지다. 야간에는 멋진 조명이 용다리를 수놓는다.
용다리를 조금 당겨본다. 또 멀리 배 한 척이 보인다. 내 눈에는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 더 자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멋진 장관이나 Land Mark 보다는 사람 사는 이야기가 더 맛깔스럽기 때문인가 보다. 나도 통통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해보고 싶었다. 그래도 누런 한강의 물은 겁이 났다. 살짝.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공간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멋진 열대나무의 생명이 느껴진다. 공간은 시원한 강바람을 그대로 맞을 수 있다. 현지인들은 그곳에서 춤도 추고 운동도 하고 명상도 한다. 중국처럼 수많은 사람이 모이진 않지만 - 중국을 가 보진 않았지만, 이래저래 주워들은 이야기로- 제법 즐거운 눈요깃거리가 된다. 남사스러워 따라 해보진 못했지만, 다음엔 꼭 해 보리라. 역시 지나고 나면 후회가 남는 법이다.
나를 졸졸 따르는 통통배의 두 어부는 구름 너머 햇살을 머금어 너무도 여유로워 보인다. 도심의 팍팍한 삶과는 또 다른 차원의 삶이다. 우리네 부모님들도 저러했을까 하는 마음이 솟았다. 부유하진 않지만 그래도 사는 맛이 나는 삶이었을 것이다. 지금과는 조금은 다른 모습이 내 기억에도 남아있다. 여유. 마음의 여유 말이다.
멀리 강 너머에는 서양 간판이 즐비하다. 국가 간의 문제는 벌써 넘어선 세상이 되었다. 국가 간의 문제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대기업의 세상이 되어버린 듯하다. 기업이 국가보다 큰 힘을 가지게 된다면 어떤 세상이 올까? 국민을 다독이고 지키지 못하는 국가라면 사람들은 차라리 자신이 속한 기업, 또는 단체를 더 따를 것이다. 참 재미있는 세상이 될 것이다. Money is Power. What do you think of it?
이 곳이 그 공간이다.(Here is the Space.) 멋진 조형물이 눈길을 잡는다. 솔직히 조각 실력이 우리나라보다 쪼매 낫다는 생각도 든다. 미안하다. 한국. 좋은 건 좋은 거니까.
베트남은 진짜 오토바이의 세상이다. (Vietnam is really the world of Bikes) 넓은 도로를 꽉 메운 오토바이 군단의 질주는 전혀 새로운 모습이었다. 복잡했다. 그러나 곧 그 편견은 사라지고 만다. 무질서 속의 질서, 혼란 속의 질서를 자주 말하게 될 것 같다. 마음이 그리 담대하지 못해 멀리 나가는 것은 포기했다. 그냥 쫄았다. 괜히 까불다가 한 대 쥐어 터지면 어쩌나 하고. 호텔 바로 뒤의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신호등도 없다. 그냥 알아서 조심히 건너면 된다. 빗방울 속을 헤치고 달리듯 오토바이를 피해 가면 된다. 별 어려운 건 없다. 조금 낯설 뿐이다.
시장은 북적북적했다. 우리 마산 어시장과 청과시장의 모습이다. 생각보다 도로도 넓다. 사람이 사는 동네는 사람이 사는 모습이 비슷하다. 이곳은 청과시장이라 이름을 붙일 만하다. 온갖 열대 과일이 진열되어 눈길을 사로잡는다.
채소와 각종 향이 나는 나물들, 그리고 과일을 파는 노점과 상점들이 서로 공생하며 살아간다. 얼마 전 서울의 모 시장에서 상점 상인과 노점 상인 간의 불화를 보았다. 그렇다. 참 쉽지 않은 것이 세상살이다. 자신의 입장이 있고, 타인의 입장이 있다. 무엇이 맞니? 그르니? 따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참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나 역시 아내와 의견 조율을 잘 못하거나, 의견이 부딪치면 니가 맞니? 내가 맞니? 티격이지 나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다.
과일은 저렴했다. 과일 이름을 조사하지 못하고 간 것이 또 후회되었다. 아이들은 과일 이름을 좀 찾아본 듯했다. 혼자 나선 시장길이 못내 아쉬웠다. 가만히 보니 돈도 없다. 이럴 수가? 그냥 눈으로만 먹을 수밖에. 영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용과라 불리는 선인장 열매가 눈에 띈다. 저건 참 맛난데. 사실 억수로 맛나진 않지만, 한번 먹어본 것이라고 괜히 친숙하게 느껴졌다. 나머지 과일은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눈요기로 만족하고 호텔방으로 급히 발길을 옮겼다. 이제 가서 식구들을 깨울 때다. 배가 고팠다. 싱싱한 과일을 보고 나니, 얼른 먹을거리를 배에 집어넣어야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입이 근질거렸다. 먹을 것이 필요했다. 남의 나라에 가면 먹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사람은 환경에 따라 살아왔고, 환경은 먹을 것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먹을 것은 사람들의 삶을 바꾸며 살았다. 모든 것은 환경에 따라 살아가게 마련이다. 자고 있는 식구를 깨웠다. 아직은 잠이 들깬 정훈이도 흔쾌히 따라나섰다. 아마 아이들의 마음에도 뭔가 새로운 것에 대한 희망이 가득 찼을 것이다. 투정도 없다. 그냥 길을 나선다. 한번 가 봤다고 내 입은 제법 나불대고 있다. 마치 내가 관광 가이드라도 된 듯한 착각, 아이들에게 아부지는 이런 사람이야 하는 그런 착각 속에서 말이다.
조금 전 보다 교통량이 늘었다. 오토바이도 점차 늘었다. 이 곳 사람들이 출근하는 시간인가 보다. 전부 마스크를 썼다. 왜 마스크를 썼을까? 아마 대기오염 때문일 것이리라. 그럼? 우리나라는? 조금 대도시만 가도 갑갑하고, 오토바이만큼이나 많은 자동차들이 뿜어내는 검은 독가스는 어쩌란 말인가? 우리나라 사람이 이들보다 오염에 조금 더 잘 적응을 했을지도 모른다.
도로는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게 되어 있다. 가끔 갓길로 역주행하는 바이크도 있지만, 한쪽 방향만 주시하고 길을 건너면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속도에 빠져 사는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수많은 바이크와 사람들이 지나가지만, 바이크의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다. 차도, 바이크도 모두가 고만고만한 속도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달렸다. 참 신기했다.
잠시 후에 온 시장은 그 사이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갔다. 노점을 펼친 분들이 몇 분이나 사라졌다. 금방 시장이 끝나는 분위기다. 마산역 번개시장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할까? 아침 식사 준비에 가게 준비에 모두가 바쁘긴 전 세계가 마찬가지인가 보다. 어릴 적 코를 질질 흘리며 엄마를 따라 유자를 경매하러 갔던 기억이 난다. 난생처음 국밥이란 것을 먹었을 때의 기분이 다낭의 한 시장에 들렀을 때의 기분과 비슷했다.
정말 조촐한 생선 노점이다. 소쿠리 네 개에 생선과 호래기 비슷한 것을 놓고 판다. 이 나라 사람들은 고기잡이를 많이 하지 않는 것인지, 잘 안 잡히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양이 참 아기자기하다. 뭐랄까? 예전 어느 책에서 읽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한 부자나라의 부자가 조용한 작은 나라의 어촌에 갔다. 어부가 고기를 잡는데 몇 마리를 낚고 어구를 챙겨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바다에 고기는 넉넉했고, 조금 더 잡아서 팔면 꽤 많은 돈을 만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부자는 어부를 미련하다고 생각했다. 참지 못한 부자는 어부더러 왜 고기를 조금만 잡아서 가느냐라고 물었다. 많이 잡으면 돈도 많이 벌고, 그러면 금방 부자가 될 것인데 말이요라며. 그리고 나처럼 이렇게 지긋한 나이가 되면 인생을 즐기며 살 수 있지 않소하고 자랑질을 했는 모양이다. 그러자 어부는 나는 이미 부자고 당신처럼 인생을 즐기며 살고 있소. 당신은 나이를 처 드셔서 느긋한 인생을 즐기지만 나는 지금 젊어서 당신이 즐기는 것을 즐기니 더 낫지 않소하고 말이다. 참 쪽팔리는 일이다.
가족과 함께 다낭의 한 시장을 걷는 재미는 쏠쏠했다. 이번 여행은 꽤 재미있을 것 같은 예감이 팍팍 들었다. 아내와 나는 서로 똥고집이 있는 편인데 이번 여행은 제대로 즐길 수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 말이다.
이제야 몇몇 과일의 이름을 알지만, 첫날은 아무것도 모르고 시장을 다시 둘러보았다. 수박과 망고는 확실히 알고, 포도도 알고, 나머진 그저 맛나 보이는 과일로만 만족해야 했다. 아이들에게 이름을 들었지만 이젠 기억도 나지 않는 나를 보면 참 어이가 없다. 이래 놓고 사람들을 가르치고, 배움이 즐겁다고 떠벌리고 다니는 내가 우습다. 한국에 돌아가면 학생들을 다그치지 말아야지 하고 또 다짐한다. 쉽지 않을 것이지만, 그러자고 다짐했다.
오! 반가운 얼굴이다. 우렁생이인지, 논고동인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네 논에서 나는 고동과 닮았다. 색깔도 참 참 곱다. 사람들은 골뱅이를 기억하겠지만, 나는 논고동을 기억한다. 참고로 나 어릴 적에는 논고동 같은 거 먹지 않았다. 하얀 쌀밥이 좋았다. 고기는 못 먹어도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덕분에 하얀 쌀밥을 먹었다. 저 세상으로 떠난 지 33년이 넘은 아버지와 병원에서 재활 중인 엄마가 생각났다. 참, 불효자식이다.
과일을 보면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어떻게 먹고, 무엇을 먹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과일은 껍질이 얇아 보통 그냥 입으로 베어 물면 된다. 그런데 열대 과일은 대부분이 씨앗이 크고 껍질도 엄청 두꺼워 막상 속을 열면 먹을 것이 없다. 망고스틱인가 스틴인가 하는 이 친구도 역시 껍질을 까고 나면 나오는 하아얀 마늘 같은 속살 몇 각을 빼고 나면 먹을 것이 없다. 그런데 우리 입맛에는 딱 맞았다. 새콤하면서도 부드럽고, 달콤하면서도 입 안에 퍼지는 즙이 넉넉했다. 아주 맘에 드는 친구를 만난 기분이었다. 참고로 껍질이 두꺼워 까먹기가 쉽진 않으며, 까고 나면 손톱 밑이 쌔까매지는 흔적을 남긴다.
누구나 알고 있는 망고 아닌가? 잘 익은 노오란 망고가 손을 당긴다. 하지만 망고 역시 나름의 단점이 있다. 커다란 씨앗이 달콤 새콤 맛난 망고를 늘 아쉽게 만든다. 우리나라에 파는 망고는 노랗다. 그러나 현지 망고는 이렇다. 무엇이 진짜 망고일까? 배를 타고 몇 달을 숨 죽여 온 망고는 온갖 약으로 목욕을 하고 우리에게 왔으니, 참 씁쓸하다. 국가 간의 거래도 참 쉬운 것이 없다.
들었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모르는 이름은 온라인의 많은 이들의 댓글로 답을 줄 것이기에 그리 애가 빠지지도 않는다. 요즘 같은 세상에 검색만 하면 니가 맞니 내가 맞니 하는 말다툼도 일어날 일이 없지 않은가? 글을 쓰는 지금도 현대의 편리함과 과거의 불편함에 대해 생각이 난다. 예전 친구들과 거제도 대우 조선의 크레인 높이가 얼마인지 내기를 하고 직접 전화를 걸어 확인했던 추억, 합천의 땅덩이가 서울보다 큰 지 아닌지 합천 군청과 서울 시청에 전화해서 물어보던 시절이 생각난다. 참 좋은 세상인데 대화의 필요성도 줄어들고 의견 차이를 조정하는 방법도 달라졌다. 소통이 불통이 되는 시대다.(Communication becomes No Communication)
제법 잘 가꿔진 술 가게 아가씨가 반갑게 인사한다. 역시 조금 젊은 친구들 또는 판매하는 물건에 따라 상인들의 의식도 많이 다른 듯하다. 적극적인 판매도 마다하지 않는다. 베트남의 영어와 우리의 영어와 원래 영어가 조금씩 다른 점을 서서히 느끼는 순간이었다. 나는 영어 강사를 한 지 십여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시험 영어가 익하니 참 넘사스럽다.
시장 골목은 바이크가 점령했다. 막내는 한 손에 망고스틴을 들고 있다. 망고 스틴인가 하는 저 친구들은 1Kg에 우리 돈 2500원인가 지불했다. 베트남 돈 동으로 치면 50000동으로 기억난다. 망고스틴과 붉은 방울처럼 생긴 과일- 우리나라 뷔페에 가면 늘 언 채로 나오는 과일-도 역시 같은 가격이었다. 그런데 이런 시장 상인들도 상품을 팔 때, 우리에게 바가지도 씌우고, 좋지 않은 물건을 팔기도 한다. 잘 협상하고 잘 대처해야 한다. 하긴 모르고 당하면 바보, 축구요, 알고 당하면 등신이라 했다.
술이 꽤 많다. 베트남 사람들이 술 마시는 장면을 그리 많이 보진 못했지만, 멋진 병에 화려한 술이 진열대에 가득 찼다. 아마 서양에서 넘어왔을 법하다. 우리나라 주류상사를 보는 느낌이다. 술은 술술 넘어가야 술인데 인상 쓰며 세상의 고민을 마시듯 마시면 술은 술이 아니라 인생이다.
손님들을 위해 과일을 손질해 두는 아낙들의 손길이 바쁘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길을 걷는 것이 나는 훨씬 좋다. 그런데 지금까지 여행을 다녀보면 많은 이들은 화려한 건물과 멋진 장관이 좋다고 한다. 뭐 그 역시 좋다. 그래도 나는 이런 삶의 모습이 훨씬 좋다.
우리나라 밀감인데 훨씬 크고 색은 짙은 분홍이나 주황이다. 먹고 싶지만, 참는다. 막 사재끼면 나중에 식겁하는 경우가 생긴다. 적절히 조절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나는 이 능력이 부족하지 이건 아내에게 맡겨두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쉽지 않다. ^^
꽃집이다. 다시 꽃집이다. 꽃집이 꽤 많다. 베트남 사람들은 꽃을 참 좋아하나 보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꽃을 산 지가 얼마나 오래되었는가? 연애가 끝나고 결혼이란 걸 하고 아이란 친구를 얻으니 꽃과는 멀어진 듯한 생각이 들었다. 몇 번인가 억지로 기억을 떠올리지 아내에게 꽃을 몇 번 준 적이 있는 듯하다. 그때도 아내는 쓸데없는데 돈 쓴다고 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꽃이 받고 싶은가 보다.
베트남의 학교다. 좁은 교문 앞에 바이크로 아이들을 데리고 온 엄마 아버지도 북적인다. 등교가 끝나고 나면 교문은 굳게 닫힌다. 초등학교 <안흐 듸옹>-발음이 맞나 모르지만,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모두 그러려니 하시겠지만 그냥 만고 제 생각임을 알려 드립니다.
그렇게 아이들 학교에 데려다준 부모는 모두 자신의 갈 길을 갔다. 사람 사는 게 참 너무 닮아서 싫었다. 하긴 나 같은 사람도 세상에 많을 것이니 뭐 별로 아쉬울 것도 없긴 하다.
한 무리가 떠나면 한 무리가 학교에 온다. 아침은 늘 이렇게 바쁘게 흘러간다. 이렇게 우리 가족의 첫 아침이 밝았다. 이제 주린 배를 채우러 호텔 식당으로 가야 한다. 어여 가자. 배고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