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의 진실
완전한 백수는 아니다. 그러나 연간 절반 정도는 무급 백수 생활로 겨우 버티고 있다. 자식 둘 키우는 아비로 나의 청춘은 어떻게 굴러갈지 걱정이 태산이다. 이에 틈나는 대로 백수 일기를 적어 두고자 한다.
20190220
간밤, 애들 학교 학부모회 어머님들과 식후 마신 맥주 몇 잔에 피곤이 몰리는 아침이었다.
-이젠 몸이 맛이 갔네.
오전에 찾아뵙기로 한 학교에 들렀다. 교장선생님과 차 한 잔을 했다. 그 사이 교장실에서 상담 선생님이 오셔 함께 학생들 진로, 학습, 인성 등 학교 표준화 검사 설명을 드렸다. -반갑습니다. 학지사 인싸이트 창원 장진석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작년에 홈페이지에서 몇 검사를 활용했습니다.
-아, 그러세요? 이젠 제게 연락 주시면 제가 싹.... 하하
간단히 설명하고, 교장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잠시 나누었다. 역시 좋은 질문은 서먹한 공기를 훈훈하게 한다.
-애들은 믿고 기다리면 되더라고. 우리 두 놈 보니 딱 그렇더라고. 경험이 자신의 길 찾는 제일 좋은 방법인 거 같아. 스카이캐슬은 아닐 거야.
-뿌리 깊은 남간 바람에 아니 뮐세. 애들이 자라니 가끔은 제 신념이 흔들렸는데 오늘 다시 뿌리 한번 내려 봅니다. 고맙습니다. 교장선생님.
창동으로 몰아가는 차가 부드럽게 미끄러졌다. 그 사이 김해건가에서 부모교육 강의 문의 전화가 왔다.
-선생님. 0월 0일 00시에 시간 되시나요?
-요새 백수라 선점하시면 다 됩니다. 하하.
-그래요? 잘 됐네요. 그럼 빨리 일정 짜서 연락 또 드릴게요.
백수에게 간만의 단비가 내린다.
마산학교운영위원장협의회 이사회에 참석했다. 회의는 잘 끝났다. 창동에서 김경년 창동 지킴이도 만나고 지인들도 만나 인사를 했다.
-백수는 아는 사람이 많은 법인가 보다.
점심은 보리밥. 나물이 푸짐해서 소가 되었다.
-우와.머가 이리 많소?
-큰사위도 안 주는 첫 정구지라예. 많이 드이소.
간만에 좋아하는 나물과 누룽지로 배를 채우니 늦겨울 하늘이 더 푸르렀다. 시원한 바람이 불룩 솟은 배를 두드렸다.
막바지에 접어든 예비고 애들의 영어 수업은 즐거운 이바구의 장이 되었다.
-배움은 지식의 방을 온몸에 만들고 필요한 지식을 하나씩 수집 저장해야 된다. 그래야 지식의 방에서 네 지식을 꺼내 활용하고 다른 이를 이롭게 한다면 지혜가 되는 기다. 인자 마지막이니까 잘 새겨놔라.
영어 단어 형성 원리를 시작으로 꼭 필요한 영문법을 최종 정리했다. 마치고 내가 운영하는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고3 친구를 좀 도와주고 밀린 업무? 아니해야 할 일을 계획했다.
그 사이 아내가 전화를 했다.
-간만에 도서관에 불 켜져 있네.
-어. 경욱이 공부한다. 퇴근하나?
-응. 저녁은?
-먹어야지. 오늘 뭐 먹으러 나갈까?
-뭘 나가노? 돈도 없다면서. 좀 아낍시다.
-뭐 먹을 건데?
-김치찌개나 남은 나물 먹지. 뭐.
스피커 폰으로 흘러나오는 아내의 목소리에 경욱이가 웃었다.
-알았다. 집에서 먹자.
집에 오자마자 큰 아들이 배를 내밀었다.
-아버지. 내 배 봐봐. 단단하다.
복싱을 2일 다닌 녀석의 자랑질이 시작되었다. 학교 동아리에 다니기 시작한 녀석은 신이 난 모양이다. 나에게 같이 다니자며 유혹을 한다.
-아부지가 복싱 얘기 엄마한테 했다가 혼났다.
-왜?
-술 담배나 끊으란다.
-끊어요.
-니가 알려줘.
-술 담배 끊으면.
-아부지는 돈 주고 뭐 안 배운다. 아부지도 옛날에 운동 좀 했다.
대화 끝. 아들의 어이없는 표정.
나물밥을 고추장에 비벼 먹었다. 설날 이후로 계속 나물밥인 듯하다. 부른 배를 두드리고 이래저래 정리하고 두 아들을 앉히고 영어 지식 방 만들기 특강을 했다. 모든 언어의 일반 규칙.
일기를 쓰는 아들에게 잔소리를 날렸다.
녀석은 아비의 잔소리를 잘 받아준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