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 방앗간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곳을 항상 찾아다니는 참새다

by 말글손

참새방앗간

“반지래이 캐로 갈래? 이번 주 일요일에는 물이 억수로 나낀데.” 형수님의 칼칼한 목소리가 울린다.

늦은 시간, 작은 실비집에 앉아 오가던 이야기는 바지락 캐는 이야기로 옮겨간다. 피곤하다고 연신 졸린 눈을 비비던 아내의 눈빛이 힘을 찾는다.

“이번 주에요? 음……. 가볼까요? 안 그래도 쉬는 날인데.” 일전에 형수님을 따라 바지락을 캐왔던 아내는 벌써 기분이 좋아진 듯 하였다.

그렇게 몇 잔의 맥주가 오가고, 아내와 나는 다음 날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와 누웠다.

“당신은 피곤하다 더마는. 바지락 캐는 거는 재미있던가베? 전에는 갔다 와서 영 죽겠다 켔다아이가?” 나는 곤히 자는 아이들을 바로 눕히고, 자리에 누운 아내를 놀렸다.

“바지락 캐는 게 힘이 들어도 억수로 재미있데요. 하나하나 올라올 때 마다, 기분도 좋고. 이번에 가모 소라 고동도 많이 잡아야지.” 아내의 말에 작은 다짐이 묻어났다.


고등학교 유학을 창원으로 와서, 군 제대 후 마산에 정착을 했다. 결혼 후 둘째를 낳았을 때, 장인과 장모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 어쩔 수 없이 누군가는 어른들을 모셔야 했다. 가까이 있으니 당연히 내가 들어가야 했다. 별 문제도 없었다. 아내의 부모님도 나의 부모님 아닌가? 그렇게 처가살이를 한 지도 어언 8년이 훌쩍 넘어간다. 젊어서부터 하루 일과를 마치면 시원한 맥주 한 잔에 하루의 피로를 풀곤 한다. 누가 보면 매일 술집에서 사는 줄 알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하지만 아내는 그런 내 모습을 싫어했다. 돈도 돈이지만, 건강도 문제였다. 신혼 초에는 꽤나 다투었다. 이제는 그런 일도 거의 없는 그런 중년의 부부가 - 예전의 상황으로 치면 그렇단 말이다. 요즘은 육십이 되어도 새댁으로 불리는 세상이긴 하다. - 되었지만 말이다.


내가 처가로 들어오던 그 해에 골목 바로 앞에 작은 실비집이 생겼다. 오십이 좀 넘어 보이는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가게와 살림집을 겸하는 실비집을 연 것이다. 처음엔 그냥 그런저런 인사만 하는 사이였다. 나 역시 장인, 장모를 모시고, 시골 어머님 일도 도와드리며 나의 생활을 하느라 바빴다. 내가 좋아하던 한 잔의 피로 회복제도 자주 접하지 못하던 시기였다. 처가에 온지 이태가 지났나 싶다. 찬바람이 부는 어느 날이었다. 지친 하루의 피로를 한 잔 술에 떨치고 싶었다. 늦은 시간이라 혼자 갈 데가 만만찮았다. 집에서 1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실비집. 골목 입구를 당당히 지키고 있는 두랑 실비에 들렀다. 늦은 시간이라 혼자였다.

“늦었지예? 맥주 한잔 하고 가도 될까요?”

“어? 골목 사는 아저씨네. 우찌 그리 아-들을 잘 보는고. 어서오이소.” 반가이 맞아주는 안주인이 마음에 들었다.

“혼자 왔는데 안주 아무거나 하나 주이소.” 안주를 시키고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냈다. 목구멍을 타고 넘는 맥주가 묵은 때를 싹 씻어 내려갔다. 밑반찬으로 내어준 나물과 그저 그런 나물을 함께 나온 초장에 찍어 먹었다. ‘이럴 수가? 엄마가 해준 반찬이랑 비슷한데?’ 평소 요리를 즐기는 나는 나도 모르게 나물을 한 번 더 먹었다. 초장도 따로 먹었다. 진짜였다. 이 맛은 내 어머님이 해 주신 반찬과 같았다.

“반찬이 억수로 맛있네예. 초장도 맛나고.”

“그라모예. 내가 이래뵈도 고성에서 횟집을 크게 했다 아입니까?” 형수님의 대답은 좁은 주방을 넘어왔다.

“고성이라예? 고성 오뎁니까?”

“고성 우두포. 우두포 압니까?”

“동해면 그 천씨들 모여 사는데 아입니까? 알지예. 우리 할매 고모집도 그 쪽인데요.”

“아제는 집이 오덴데요?”

“저는 거류면 감동입니다. 감동 알지예?”

“그라모. 잘 알지.” 형수님과의 첫 술자리는 고향 이야기로 새벽을 맞았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제법 긴 시간 동안 이어졌다. 늦은 시간 일을 마치는 나로서는 혼자서라도 술 한 잔 마실 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 더군다나 집에서도 가까우니 아내의 잔소리도 조금은 덜 할 것이니 말이다.


그렇게 두랑 실비를 찾는 날이면, 늘 고향 이야기로 촉촉한 시간들이 흘러갔다. 점차 서로를 알아가면서, 속내도 이야기했다. 쉬이 털어내기 힘든 속내도 나누면서.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형수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눈물도 흘렸다. 나 역시 어머님보다 먼저 떠난 형님 이야기, 이런저런 집 안 이야기도 털어 놓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기도 했다. 가끔 아내와 들르기도 하고, 지인들과 들르기도 했다. 회식이 있으면 사람들을 설득해 두랑 실비에서 하길 권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혼자 그 곳을 찾을 때가 많았다. 그렇게 두랑 실비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자, 만나는 사람도 점차 늘어갔다.


두랑 실비를 찾는 사람들과 하나 둘 인사를 하면서 동네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잦아졌다. 한 때는 복싱 국가대표를 하던 형님도 만났다. 인근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부형들도 만나면서 동네 사람들과의 인연도 깊어졌다. 시골에서 올라와 동네 주민들과는 그냥 인사만 하고 지내다, 이제는 막걸리 한 잔, 소주 한 잔을 건네며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혼자 가게를 찾는 날이면, 늘 옆자리 동네 형님들과 동석을 하게 되었다. 처음엔 남자들끼리 모여 한 잔 두잔 마시던 동네 모임이었다. 아내와 함께 들르면, 동네 형님은 우리 자리로 초대하기도 했다. 처음엔 어색해하던 아내도 곧 그 상황에 익숙해졌다. 어느 덧 가족끼리 만나 술 한 잔 건네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서로 낯선 이웃으로 서먹하게 지내던 사람들이 마치 고향의 선후배나 친구를 만난 것처럼 서로를 알아갔다. 그렇게 두랑 실비는 참새 방앗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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