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사람에게 무엇을 주고 사람은 자연에게 무엇을 주는가?
땔감의 철학
늦은 가을걷이가 끝난 시골에는 곧 찬바람이 불었다. 지금처럼 넉넉한 마음으로 가을을 즐기며 유년기의 행복한 시기를 보낸 기억은 별로 없다. 타작이 끝난 들판의 이삭을 줍고 감을 따고 나면 곧 바로 겨울을 맞을 준비를 했다. 잘 마른 짚단을 집으로 나르고, 겨우내 소죽을 끓이기 위해 장작을 패야했다. 이듬 해 농한기에 사용한 땔감도 미리 준비해야 했다. 겨울은 농부들이 삶의 여유를 즐기는 농한기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준비 운동을 하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겨울이 되면 우리는 산에서 거의 매일을 보내야 했다.
산, 우리 집 바로 앞에 있는 거류산이야말로 우리에겐 최고의 놀이터이자 숨은 보물섬이었다. 봄에는 온갖 새싹들이 겨우내 부족했던 반찬을 제공했다. 지금은 이름도 그 모양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풀과 나무의 새싹들을 뜯어 집으로 가져가면 엄마는 나물을 맛있게 무쳐주셨다. 새콤한 초장에 무쳐먹는 봄나물은 가히 그 맛을 따른 음식이 없었다. 분홍빛 진달래는 허기진 아이들의 최고 간식이었다. 엄마 몰래 설탕 한 숟가락에 저려먹는 진달래의 맛을 요즘 아이들이 상상이나 할 수 있으려나? 이른 여름이 되면 양은 주전자를 들고 산을 오르는 동네 아이들로 절정을 이룬다. 뱀이 나온다며 한사코 말리는 어른들을 뒤로하고, 고무신에 의지한 채 산딸기를 찾아 나서는 길은 언제나 설레었다. 행여 누가 먼저 산딸기를 따 갔을까 불안한 마음 가득히 산을 오르다 잘 익어 붉은 산딸기 열매를 보는 순간의 희열은 지금도 가슴이 설렌다. 늦은 여름, 거류산 자락에 자생하는 돌배를 따 먹는 재미도 그리 솔솔 했다. 지금은 옛말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배서리, 수박서리를 하는 긴장감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미션 임파서블이었다. 그렇게 한 해의 농사를 마무리 짓는 가을이 오면, 들판의 곡식을 거두고, 감과 밤을 따느라 정신없는 가을걷이가 시작되었다.
황금들판은 가을걷이가 끝난 일요일, 온 형제들은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다. 막내인 나에게 돌아올 지게는 없었다. 다만 나에게 주어진 임무는 불쏘시개로 사용할 갈비(솔가리)를 긁어 담아 올 비료포대만 할당되었다. 그래도 아버지와 형들을 따라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가는 일은 꽤나 신나는 일이었다. 겨우 사카린만 들어간 개떡이라도 봉지에 담아가서 먹을 수 있는 영광이 기다리고 있기에. 오전에는 어른들이 땔감을 마련하는 동안, 나는 솔가리를 끌어 모았다. 어른들이 땔감을 마련하는 방법은 특이했다. 집 근처의 큰 나무들은 베지 않았다. 굳이 깊은 산으로 들어가 쓸모없는 오리목이나 잡목들을 베어냈다. 가시가 많은 아카시아 나무도 많이 베어내었다. 가끔 아버지께서는 제법 큰 나무도 톱으로 베어 넘어뜨리셨다. 덩치 큰 나무들을 낑낑거리며 집으로 들고 와 도끼질을 해대다 보면, 응당 그 나무들은 속이 썩어 가거나 벌레들이 가득 있었다. 당시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아이들이야 힘이 없고, 톱질을 못하니 죽은 나뭇가지를 줍고, 솔가리를 긁어모은다 손 치더라도, 힘 좋은 어른들이 좋은 나무를 내버려두고 왜 하필이면 벌레가 가득하고 죽어가는 나무를 베어 왔는지. 또한 집 근처 언덕에 있는 큰 나무를 몇 그루만 비어도 한 겨울을 나는 데는 충분할 것을 굳이 깊은 산으로 가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특별히 나에게 그 이유를 설명하는 사람도 없었다. 마땅히 그러려니 하고 어른들을 따라 다녔다. 어른들이 땔감을 지게 가득 싣고 집으로 나르는 동안, 나는 솔가리를 이고 지며 집으로 날랐다. 그렇게 오전이 지나고 나면, 배꼽 시계는 언제나 정확히 알람을 울렸다. 김치에 간장뿐인 반찬이라도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을 알기도 전에 “엄마, 배가 고프면 다 맛있어요.”라고 말하면, 기분좋은 엄마는 귀한 계란 후라이를 나에게만 살짝 해 주셨다. 나르으로 갈비(솔가리)를 긁어 불쏘시개로 땔감 준비가 끝나면, 내년 농사에 쓰일 새끼를 꼬느라 정신없는 겨울방학을 보내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