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뜩 가자.” 엄마의 고함소리가 마당 한 가득 번집니다.
“지금 안 가면 다 싣고 오도 못한다.” 군대를 막 제대한 형님도 저를 다그쳤습니다.
“에이, 오늘도 논에 일하러 가야 되나? 안 가모 안 되나?” 화가 잔뜩 나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시끄럽다. 세진이 니는 가마니 실어주고, 감 지키라이. 알았제? 형님하고 내는 나락 싣고 올끼다.” 학교에 다녀온 나에게 엄마는 오늘도 고함을 칩니다.
“오늘은 동네 애들하고 야구하기로 했다. 안된다. 맨날 내만 가야되나? 다른 친구들은 집에서 텔레비전도 보고, 저거들 맘대로 노는 데 맨날 내만 시키노? 행님도 좀 하라케라.” 나는 화살을 막내 형에게 돌렸지요.
“시끄럽다. 난중에 행님오모 보내꺼마.” 엄마는 고함을 한번 더 치고는 소를 몰고 나갔습니다. “퍼뜩 가자.” 셋째 형은 리어카를 끌고, 엄마 뒤를 따라갔습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너털너털 논으로 나갑니다. 손에는 나뭇가지를 꺾어 칼처럼 풀을 향해 마음껏 화를 풀었어요. 엄마가 예전부터 목소리가 큰 것은 아니었어요. 작년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다음부터 그런 거 같아요. 엄마는 자식이 여섯 명이나 되거든요. 저는 막내인데, 엄마가 마흔에 저를 낳으셨거든요. 아마 저처럼 애먹이는 늦둥이 자식들 키우느라 목소리가 커진 거 같아요. 시골의 가을 들판은 언제나 바쁩니다. 농부들에게는 가을이 제일 바쁘지만, 가장 행복한 시간입니다. 타작을 하고 짚단을 쌓아 짚 볏가리를 올립니다. 겨우내 소들이 먹을 양식이지요. 타작한 나락은 길이나 마당에 널어 잘 말려야 하지요. 그래야 매상을 할 때 좋은 등급을 받거든요. 그 돈으로 자식들 공부도 시키고, 집에 필요한 물건도 살 수가 있어요. 우리 집은 타작이 끝나고 나면, 마지막 가을걷이를 합니다. 바로 감이에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심어 놓으신 단감나무는 가난한 농부의 작은 유산이지요.
지게를 메고 소꼴을 베러 가시는 아버지를 따라다니든 기억이 납니다. 지게 한 가득 풀이 담기면, 아버지와 나는 산딸기를 따먹었습니다. 아버지가 따 주신 산딸기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간식이었지요.
딸기를 손에 들고 풀밭에 나란히 아버지와 앉았습니다.
“세진이는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노?” 저녁 노을이 내려 앉은 먼 바다를 보며 아버지가 말씀하셨죠.
“내는 아부지처럼 착한 사람하께예. 아부지, 배고푸다. 집에 가입시데이.”
“그래, 알것다. 배 마이 고푸낀데 집에 퍼뜩 가자.”
아버지와 저는 노을 진 언덕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날따라 지게를 둘러 맨 아버지의 어깨가 무거워 보였습니다. 나는 나뭇가지를 칼 삼아 길에 핀 풀을 툭툭 치면서 아버지 뒤를 따라왔었죠. 그리고 며칠 뒤에 아버지는 큰 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여섯 남매의 뒷바라지를 위하여 고기 한 점 제대로 드시지 못하면서 장만하신 논과 밭. 조금 더 넓지만, 싼 땅을 산다고 집에서는 한참이나 떨어진 논밭들이었지요. 그리고 그 두렁들이 비어있는 것이 아쉬웠던 모양이에요. 언제부턴가 아버지는 감을 먹을 때 마다 씨를 소중히 모으셨어요.
“아부지, 감씨는 와 모다 두는데요?”
“어, 씨를 잘 말려서 밭에 심어 묘목을 키울끼다. 그라모, 감나무를 많이 심을 수 있을 끼다.”
아버지는 감 씨를 하나 둘 모으셨고, 씨를 심어 나온 묘목을 논두렁에 옮겨 심었습니다. 감나무가 땅에 뿌리를 내리면 접을 붙이셨습니다. 아버지가 심은 감나무는 논두렁과 밭두렁을 따라 길게 줄을 섰습니다. 가을 추수가 끝나고 나면, 온 가족이 감을 따고, 골라서 시장에 내다 팔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감 하나도 막 드시는 법이 없으셨어요. 감 하나도 소중히 거두어 팔아서, 자식들 학비에 보태셨지요. 그런 우리 아버지는 55세의 나이,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그만 간암으로 돌아가셨어요. 그때부터 엄마의 목소리는 커지기 시작한 게 틀림없어요.
우리 집 감은 동네에서 맛있기로 소문이 났어요. 그러니 동네 사람들이 가을이 되면 제일 먹고 싶은 것이 바로 우리 집 감이지요. 추수를 하다 출출하면 하나 따 먹고, 밭으로 오가는 길에도 하나 따먹고. 동네 사람들과 나눠 먹으면 더 맛있는 우리 감은 언제나 인기 만점입니다. 엄마와 함께 논두렁에 앉아 엄마가 낫으로 척척 깎아 주시는 감은 어느 초콜릿보다 달콤하고 맛있습니다. 가을 추수가 시작되는 때면 노랗게 익어가는 감이 어쩌면 그렇게도 먹음직스러울까요? 당연히 우리 집 감을 탐내는 이들도 자연스레 늘어났지요. 이것이 아버지의 실수였지요. 과수원에 따로 없으니, 감을 지키는 것이 제 몫이 되어버렸거든요.
이십분을 넘게 걸어 논에 도착했어요. 엄마와 형이 타작을 다한 나락을 가마니에 싣는 것을 도와드렸죠. 형은 가마니랑 자질구레한 짐을 리어카에 다 싣고 소를 앞세웠습니다.
“세영이 오모 오라쿠끼께나, 해 떨어지모 밥 묵으로 오이라.” 엄마는 리어카를 밀며 그렇게 멀어져 갔습니다. 엄마와 형이 떠난 가을 논은 쓸쓸합니다.
‘뭘 하고 놀아야 재미 있겠노?’ 혼자 이리저리 논두렁을 걸어다니다, 출출해서 감을 따먹었습니다. 감 하나에 배가 조금 부르자, 더 심심했지요. 아직은 다 마르지 않은 논에서 흙덩이를 집어 손으로 꼭꼭 눌렀습니다. 흙덩이는 멋진 야구공으로 변신했어요. 야구공을 김재박 선수처럼 멋지게 던지기도 하고, 나무 몽둥이로 휘둘러 치기도 했지요. 그러다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개구리가 있으면 잡으러 뛰어 다니며, 형이 오길 기다렸어요.
‘에이! 행님은 와이리 안오노?’ 혼자 투덜거리며 점점 노랗게 변하는 서쪽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 논에서 바라보면 딱 서쪽에, 그러니까 붉은 노을이 지는 곳에 우리 밭이 있고, 그곳에 아버지 산소가 있는 곳이지요. 해는 아버지 산소가 있는 곳으로 사라지거든요.
‘뭐, 행님이 오던 안 오던, 내는 좀 있다가 집에 가모 되것지.’ 그때 멀리서 형이 보였어요. 형은 노을이 거의 내려앉을 무렵, 자전거를 끌고 나타났지요. 발에는 슬리퍼를 질질 끌고 온 걸 보면, 틀림없이 집에 가서 조금 쉬다 온 것이지요.
“와이리 늦었노? 심심해서 죽는 줄 알았거마는.” 나는 형에게 소리쳤습니다.
“뭐 하고 놀았노? 감 잘 지킨 거 맞나?” 형은 오자마자, 절 놀리기 시작했지요. 늘 모범생에 공부도 잘하는 형이지만, 몸이 약해 엄마는 늘 형한테만 맛있는 걸 챙겨주었어요. 나는 늘 그게 부러웠죠. 그래도 형이 있어 가끔은 맛있는 걸 얻어먹을 수 있어 나름대로는 좋았답니다.
“감 묵을끼가? 저게 감이 맛있더라.” 나는 형에게 저쪽 논두렁에 있는 감나무를 가리켰습니다. “아니, 안 묵을란다. 집에 가서 밥 묵지. 뭐.” 역시 형은 입이 짧습니다. ‘아이다. 집에서 뭐 묵고 온 기 틀림없다. 에이, 엄마는 맨날 행님만 챙기주고.’
세 살 많은 형과 논에서 이리저리 개구리 잡고, 흙 공으로 야구를 하는 사이에 해는 산으로 뉘엿뉘엿 넘어 갔습니다. 논에도 거무스름한 어둠이 찾아왔죠. 배도 고파져 집으로 돌아간 채비를 할 때였지요. 바로 그때였어요. 저 멀리서 친구 두 녀석이 졸래졸래 걸어왔습니다. 두 친구는 서울에서 이 깡촌 마을로 전학 온 쌍둥이 형제. 듬직한 형, 석호는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아 친구들에게 인기 만점의 멋쟁이. 동생 석룡이는 항상 형한테 어리광을 부리는 아이였지요.
순간 나는 장난끼가 발동했습니다. 그리곤 형에게 이렇게 말을 던졌습니다. “행님아, 저 애들이 감 따 묵것나? 안 따 묵것나? 우리 내기 하까?” 형은 웃으며 답했습니다.
“내는 따 묵는다에 걸꺼마. 니는 우짜끼고?”
“내는 안 따 묵는다에 건다. 이긴 사람이 자전거 타고 가기다.” 석호의 성격을 잘 알기에 나는 확실히 이길 것을 예상했습니다.
“자전거. 자전거 퍼뜩 숭카라. 자전거 보모 아들이 우리 있는 거 알끼다.” 우리는 자전거를 논 옆에 있는 한쪽 언덕으로 급하게 치웠습니다. 그리고 나뭇가지로 잘 덮어, 들키지 않게 했습니다.
“이만하모 됐다. 우리는 우짜꼬?” 나는 급하게 물었습니다.
“오데 숨으꼬? 보자. 감나무에 올라가자.” 형이 흙이 질펀하게 묻은 슬리퍼를 끌고 감나무를 올라가며 갔습니다. 나도 형과는 다른 가지에 올라가 숨을 죽였습니다. 노랗게 익은 감과 붉은 단풍이 든 감잎이 노을에 더 발갛게 익어 갔습니다. 가을 저녁에 떨어지는 해는 어찌도 빠른지, 금새 하늘은 붉게 물들었습니다. 우리는 숨 죽여 두 친구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형의 흙 묻은 슬리퍼가 살짝 미끄러졌어요.
“조용히 해라. 들키모 서로 넘사스럽다.” 나는 나직이 속삭였습니다.
논두렁이 길을 따라 꼬불꼬불하니 감나무가 있는 곳도 제각각이지요. 길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작은 감나무. 작은 나무에 몇 알 열린 감은 그만큼 굵고 먹음직스러워 보였습니다. 그 곁을 지나던 두 친구. 동생이 먼저 말을 꺼냅니다. “응아, 우리 저기 감 하나만 먹으면 안돼?”
“안 된다. 저건 주인이 있는 거야. 네가 배가 고파도 조금만 참아. 남에 물건에 손대면 안 되는 거야.” 역시 멋진 내 친구의 한 마디였습니다. 하지만 석룡이는 자꾸만 떼를 씁니다. “응아, 배가 너무 고프단 말이야. 하나만 먹자.” 녀석은 계속 졸라댔습니다. ‘아! 그 녀석, 머 저리 고집이 세노? 고마 행님 말 듣고 집에 가지.’ 나는 형에게 내기를 질까봐 조마조마했습니다.
“안 되는데…….” 쌍둥이 형이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그래, 그러면 하나만 따자. 하나만 따서 네가 먹어. 난 괜찮으니까.” 석호는 마지못해 동생에게 감 하나를 따 주려고 했습니다.
‘고마 한 개 따 묵고 가모 되낀데. 우리는 다 그리 하거마는. 참. 애들이 착하네.’ 나는 내 친구들의 모습에 살짝 감동받았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맞은 편 가지에 매미처럼 꼭 붙어있던 형이 그 모습에 웃음을 참으며 낄낄거리기 시작했죠. 흙 묻은 슬리퍼가 화근이었습니다. 형은 나무에서 그만 쭉 미끄러져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쿵’ “아하하하. 행님아. 니 와그라노.”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나는 소리를 지르고 말았습니다.
“거게 서라. 감 도둑 잡아라.” 형은 머쓱한 지, 큰 소리를 지르며 친구들에게 달려갔습니다. 나도 곧 나무에서 내려와 친구들에게 다가갔지요.
순간 당황한 두 친구는 꼼짝도 못하고 제자리에 얼어붙었습니다. 서울에서 전학을 와서 아직은 시골 생활이 낯선 두 친구는 한 순간에 도둑이 되고 말았지요. 그것도 같은 반 친구인 제 앞에서 말이에요.
“너거들 와 인자 가노?” 형님이 태연히 물었습니다.
“어, 안녕하세요. 형님. 학교에서 선생님 일을 좀 도와 드리고 가는 길입니다.” 친구들은 형에게 반듯이 인사를 했어요.
“그래, 너거들 배 많이 고팠제? 감 따 무거도 된다.” 형님은 제법 멋지게 옆구리에 손을 척 올렸습니다.
“몰랐습니다. 세진이네 감인 줄. 죄송합니다. 제가 배가 고파 하나만 먹으려고…….” 석호는 어쩔 줄 몰라하며, 자기가 잘못했다고 했습니다. 석룡이를 지켜주려고 했었지요.
‘우리 행님 같았으모 내가 그랬다 하낀데. 자식이 진짜로 괜찮네.’ 친구지만 동생을 생각하는 모습이 너무 멋졌습니다.
“괜찮다. 친구 집 감 따묵는 기 뭐 별끼가?” 나는 감 몇 개를 더 땄습니다. “너거 동네 갈라쿠모 먼 데 가다가 무라.” 괜스레 미안해진 나는 동생에게 감을 건넸습니다.
“인자 너거들은 지나가다가 배 고푸모 우리 감 따무도 된다.” 형님은 선심을 베풉니다.
“고마워. 세진아. 잘 먹을게.” 쌍둥이가 나란히 대답을 하니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친구들과 헤어진 후 우리는 숨겨둔 자전거를 가지러 갔습니다.
“행님은 괜히 미끄러지가꼬.”
“내도 고마 모린 척 할라캤지. 미끄러지삔 걸로 우짜끼고.”
“행님때매 내는 쪽 팔리 죽는 줄 알았다.”
“그기 머가 쪽 팔리노?”
“내 친구들 아이가. 공부도 잘하고, 그게 다가 서울서 왔다 아이가.”
“너거 친구들 중에 제일 괜찮은 거 같네.” 형이 자전거를 끌고 길로 나갔습니다.
“누가 이겼노? 내가 이긴 거 맞제?” 나는 얼른 자전거를 낚아 채, 올라탔습니다. 그리곤 울퉁불퉁 흙길을 내달립니다. 가을 저녁 바람에 달콤한 감 향기와 아버지의 추억이 함께 실려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