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 소리에 몸이 바로 반응했다. 눈곱을 뗄 사이도 없이 밥솥을 확인하고 가스레인지에 불을 올렸다. 이틀 전 사 온 갈비를 조금 구워 김치와 상을 차렸다. 애들이 밥을 먹는 사이 영수는 씻었다. 광란의 양치질로 간밤의 피로를 쫓았다.
언제까지 애들 밥을 차려야 할까? 애들 밥 챙겨주는 게 끝나면 아비 노릇은 끝날까? 아비 노릇은 언제까지일까?
진수는 공공기관이 밀집된 곳으로 차를 몰았다. 오늘도 잠시 머리를 쓰고 점심 한 그릇 얻어먹으며 국민 세금을 축내는 자신을 보며 측은지심으로 스스로를 가둘지 모른다. 세상은 늘 그런 게 아니라고 하지만 농사만큼 가장 순수한 일은 없다고 그는 생각한다. 다른 생명을 죽이지 않고 살리는 가장 최고의 일. 그런데도 농업이 등한시받는다고 진수는 늘 투덜거렸다.
진수가 아이들 학교에 갔을 때, 나눔 바자회는 종착지에 있었다. 늦었지만 그를 반겨주는 학부모들 덕에 눈치를 굴려야 했다. 눈치를 누가 주는 건 아니지만 눈치는 스스로 받는 거라고 하지 않는가!
도서관에 앉아 시간을 죽이다 집으로 돌아왔다. 작은 아들과 협상을 시작했다. 작년에 부회장에 떨어진 아들은 이번 선거에 관심이 없다. 그런 아들을 설득하려 진수는 애를 먹다 결국 그만두고 말았다. 실패를 실패로 받아들이는 아들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세상에 실패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정만 있다는, 선택만 있다는, 게임을 하다 죽으면 다시 하는 것과 같다는 그런 온갖 말로 꼬셔도 아들은 꿈적하지 않았다. 실패의 트라우마가 남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담배 한 대를 꺼내 물고 큰 아들을 기다렸다. 아이들과 고기라도 구워 먹을 요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