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그 해 여름을 기억하다
양념통닭
치맥이 유행이다. 야구장에 가도 치맥, 친구들과 간단한 모임이 있어도 치맥이 대세다. 언제부터 치킨이 우리의 일상생활에 들어왔는지 알 순 없지만, 닭은 우리 음식 생활의 일부가 된 것은 틀림없다. 많은 이들이 그리는 시골 풍경은 나와 비슷할 것이다. 마당을 노니는 암탉 몇 마리와 그 뒤를 졸졸 뒤따르는 노란 병아리들. 벼슬이 붉게 자란 수탉(수탉)은 꼬마들에겐 무서움의 대상이었다. 아침이면 엄마 닭의 눈치를 보며 따뜻한 계란 몇 개를 닭장에서 꺼내오는 것이 꼬마들의 임무였다. 그렇게 모인 계란은 소풍 김밥 속에 자리 잡곤 했다. 가끔은 양은 도시락에 든 밥 아래로 숨어들었다. 밥 아래 살며시 숨어 있는 계란 프라이가 참으로 고맙던 시절이었다.
어린 시절, 나의 작은 형은 몸이 약했다. 공부는 잘했지만, 몸이 약한 아들을 보는 엄마의 마음이 그리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름이 올 때 즈음, 엄마는 암탉 두 마리와 인삼 몇 뿌리를 넣어 커다란 솥에 약을 끓이셨다. 닭 두 마리는 형의 몸보신 약이 되었다. 잘 고인 닭 두 마리는 보름 동안 형의 보약이 되었다. 작은 사발에 담긴 살코기 한 점, 껍데기 약간, 인삼 한 조각과 멀건 국물이 형이 한 번에 먹을 양이었다. 그렇게 하루 두 번 형은 보약을 먹었다. 나에게 형의 보약은 언제나 맛나 보였다. 형은 인삼과 껍데기가 싫다며 내게 조건을 걸었다. “껍데기랑 인삼 먹으면 국물 한 번 줄게.”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껍데기와 인삼 조각을 먹어치우고 국물을 들이켰다. 그렇게 닭은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남겨주었다.
누나는 대학을 다녔고, 형은 고등학교를 마산으로 진학했다. 창신고등학교가 회원동에 있을 때였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형을 배려해 어머님과 큰 형은-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셨다.- 회원동에 자취방을 잡아 주었다. 그리고 그 해 여름 방학, 나는 마산으로 놀러 왔다. 처음으로 시내버스를 탔고, 슬래브 지붕과 콘크리트로 지어진 주택을 구경했다. 회원동 태화시장 근처에 있는 빨간 벽돌집이었다. 마산의 집들은 모두가 근사하게 보였다. 벽돌집 마당을 지나, 집 한쪽에 자리 잡은 단칸방으로 들어갔다. 연탄이 놓인 작은 방이었다. 꼭 둘이 누우면 될 듯했다. 좁은 방이었지만, 처음으로 도시란 곳에서 놀 생각을 하니 기분이 여간 좋은 게 아니었다. 그렇게 나의 첫 도시 생활은 마산에서 시작했다. 비록 방학 동안의 도시생활이었지만. 자취방에 온 지 일주일이 되었다. 형을 따라 이 곳, 저곳을 쏘다녔다. 즐거웠다. 뭘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은 추억이 된다는 말이 참말인 듯 느껴진다.
공부한다고 매일 늦게 오던 누나가 일찍 들어온 어느 날이었다. 누나 손에는 종이봉지가 들려있었다. 대학생과 고등학생과 중학생은 동그라니 방 안에 둘러앉았다. 봉지 안에서는 고소하면서도 달콤하면서도 이루 말할 수 없는 향긋한 내음이 피어올랐다. 빨간 양념이 묻어 있었다.
“엥? 닭을 이렇게 먹어요? 도대체 이게 뭐야?”
“양념 통닭이란 거다.”
“뭐? 닭을 이렇게 먹는다고? 고아서 국물하고 같이 먹어야지.”
“먹어봐. 맛나다.”
“도대체 이런 걸 어디서 팔아?”
“저기 옆에 태화시장에 가면 할머니가 만들어 파시지.”
양념통닭이란 이름을 가진 음식은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다음 날, 할머니가 만들어 파신다는 양념통닭집을 찾아가 보았다. 조각낸 닭에 밀가루 반죽 옷을 입히고, 펄펄 끓는 기름에 닭을 넣으니 닭은 커다랗게 부풀어 올랐다. 잘 익은 닭을 꺼내 매콤 달콤 빨간 양념을 입히니 이렇게도 맛난 양념통닭이 탄생했다. 요즘 프랜차이즈에서 만들어 내는 치킨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양념통닭은 마산 회원동 태화시장 할머니표가 제일이다.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야 맛볼 수 있는 양념통닭.
마산 회원동 태화시장에서 날아온 양념통닭은 청양고추를 처음 맛 본 짜릿함보다 더 알싸한 추억으로 남았다.
국제 오락실
띠용띠용 타타타탁 펑펑펑
쉴 새 없이 울려 퍼지는 강렬한 기계음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아이들의 손놀림
삼발이 의자에 앉아 허리 숙인 아이들
기다랗게 늘어선 커다란 네모 상자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
전장에서 포화를 내뿜는 탱크
화려한 움직이며 격투하는 전사들
갤라그, 슈퍼마리오, 1945, 서커스
올림픽, 메탈슬러그, 쌍용
너구리, 점핑 잭, 버블버블
이름도 셀 수 없는 신나는 게임
마산 회원동 국제 오락실은 신세계
이제는 뒤 안으로 사라진 신세계, 국제 오락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