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 시. 선잠에서 깨고 나니 나이가 들어간다는 걸 실감한다. 마음속에 뭔가 께름칙한 것이 있거나. 아마 오디오북으로 듣던 오세희 작가의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에서 울분이 생겼는지. 데일 카네기의 성공법칙들을 들으며 자신을 돌아보았던지. 어느 것이라 단정 짓긴 어렵지만 새벽이슬을 맞을 준비를 했다.
어둠은 짙었다. 코로나 19로 밤은 더욱 침묵을 쏟아냈고 어둠은 제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행여 발길이 어딘가에 닿는다면 몇 자 남길 요량으로 노트북을 담아온 가방은 짐이 되고 말았다. 발길은 닿는 곳도 없었다. 정처 없이 흐느적대며 갈 지자를 그리고만 있었다. 인생도 이외 같겠지. 최종 목적지에 가기 전까지 정처 없이 흘러가겠지. 머무는 곳도 없을 거야. 그래서 순간이 소중한 거야.
바람은 찼다. 봄이 왔다고 연녹의 생명과 형형색색의 꽃비도 제 자랑에 급한데 부는 바람에 애먼 옷깃만 여미었다. 바람이 찰까? 대충 걸친 옷가지가 부실했거나 마음이 시리니 모세혈관을 흐르는 핏물이 찰 지도 몰랐다. 지친 취객만 덩그러니 남은 불 꺼진 간판에 가게 조명만 희미하게 어둠을 밝혔다. 가로등은 그에 비하면 눈부실 정도였다. 밤마실이 무르익을 무렵 낯선 아가씨가 말을 걸었다.
- 저기요. 죄송한데 택시비가 없어 그러는데 돈 좀 꿔줄 수 있나요?
잠들지 못해 나온 사람이 무슨 돈을 들고 나왔을까? 도와주고 싶었지만 나도 그럴 형편은 안되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자신의 잘못은 자신이 책임져야 하니까. 청바지에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그녀를 가만히 바라봤다. 조금은 슬퍼 보이는 여자의 얼굴이 앳되 보였다. 술을 마신 거 같지도 않았다. 순간 손에 들린 폰이 보였다.
-현금은 없고 송금이라도 해드릴까요?
- 그래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다음에 꼭 갚을게요. 그런데 제가 카드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웃긴 상황이지만 도와주고 싶었다.
-댁이 어디세요?
-합성동까지 가면 돼요.
한산한 거리는 택시마저 고요에 잠들게 했다. 가끔 굉음을 내며 달리는 불법 개조 차량만 정적을 깼다. 짜증 나는 녀석들이다. 제발 내 자식들은 저러지 않았으면 싶었다.
멀리 택시가 한 대 왔다. 합성동까지 요금을 물었다. 대략 오천 원 정도 나온단다. 기사께 송금을 하고 택시를 떠나보냈다. 송금 후 잔액 36,500원. 인생은 거런거다.
밤은 여명에 물러나고 졸린 눈을 비비며 이불속으로 기어들었다. 아침잠이 달다. 아직은 중년이 아닌가 보다.
전화가 울렸다. 가뜩이나 잠도 부족한데 짜증이 솟았다. 하지만 행여라도 일거리 전환가 싶어 목을 가다듬었자.
-네. 반갑습니다. 장진석입니다.
-안녕하세요. 새벽에 택시 얻어 타고 온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