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봄 하늘의 역설
인간은 스케일을 줄여야 한다
Covid19 이 일상을 흔들었다. 직장인도, 자영업자도, 프리랜서도 제각각의 애로를 호소한다. 먹고사는 문제야 직장인은 조금 낫겠지만 대부분이 느끼는 현실은 복잡 미묘하다.
백수가 된 요즘, 일상이 무료해지고 삶은 팍팍해져 대출이라도 받아야 생활 영위가 될 판이니 참 지랄 맞다. 그래도 그동안 부실했던 아들 노릇이나 아비 노릇은 조금 더 할 수 있다. 애들을 데리고 시골에 가 어머니와 밥도 자주 먹는다. 어머니도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 치매로 자식이 다녀간 기억이 가물거리니 아쉬울 수밖에.
대문을 나서면 제일 먼저 하늘을 본다. 눈부신 푸른 하늘에 마음이 동하면 무턱대고 다시 시골로 향한다. 시골로 오가면 산은 다시 생명이 꽃핀다. 노랑, 분홍, 하양의 꽃도 다시 핀다. 무엇보다 푸른 하늘에 눈이 부시고, 맑은 공기에 콧바람이 시원하다. 살아난다. 다시 자연이 산다. 노자가 말한 자연의 의미도 뇌리를 스친다. 스스로 그러하다. 나무도 물도 스스로 제 모습을 찾아간다. 모든 생명이 자연하는데, 사람은 아직 자연하지 못한 듯하다. 가르고 우기고 씌운다. 완연한 푸름은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더 푸르러진 하늘에 작은 희망이라도 본다. 내 욕심을 좀 줄이면 더 오래가는 푸름이 이어지겠지.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스케일을 줄여야겠다. 밥 한 그릇, 국 한 그릇, 반찬 하나. 김치 몇 조각. 이게 뭐냐며 타박하지만 어머님의 소박한 밥상에서 다시 삶을 본다.
멀리 봄산 능선을 눈이 시리게 본 게 얼마만인가? 인간이 살아갈 길을 다시 보는 듯하다. 아직도 이 생의 욕심을 줄이기에 욕망의 불꽃이 사그라들지 않았지만 어찌 살아야 할지 새기고 되새긴다.
눈치도 없는 게 사람이가? 하는 자연의 호통을 우리는 알아야겠다. 그리고 눈치껏 살아야겠다. 자연의 눈치를 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