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의 나들이 2

이야기 이어서

by 말글손

-아, 네. 잘 가셨나요?

-네. 덕분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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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만 흘렀다. 딱히 말이 없었다. 전화기 너머에도 조용했다.

-나중에 다시 통화하시죠. 자다가 일어나서.

-네. 전화 드릴게요.

핸드폰을 던지고 이불을 뒤집어 썼다. 아침부터 피곤하게 전화질이라며 투덜대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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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번쩍 뜨였다. 누구? 전화번호는 어찌? 난감했다. 택시비는 기사에게 송금했다. 이름도 모른다. 그냥 급하다길래 택시 태워준 거 밖엔 아무것도 모른다. 그런데?

전화를 다시 할까하다 그냥 말았다. 다시 자려는데 머리가 복잡했다. 골목으로 나갔다. 골목 텃밭에도 봄이 왔다. 더덕순도 잘 자라고 있었다. 두릅을 따러 시골로 가야겠다 마음 먹었다. 잠도 오지 않고 코로나19 덕에 모든 게 정지된 상황이라 답답한 마음도 풀겸.


얼마전만 해도 동물을 어느 장소에 가두고 인간이 구경을 하곤 했다. 요즘은 실내로만 파고 드는 사람이 느니 그 반대가 되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자연의 역습을 인간이 자초하고 있다. 우스운 꼴이다. 그리 잘 났다는 인간이 말이다.


시골로 가는 길에 눈부신 하늘이 시리다. 겨울을 이겨낸 저 푸름이 대단하다. 아버지 산소에 들러 인사를 했다. 벌써 35년이 넘어버렸다. 이별은 금새 잊혀지지만 기억은 변질되어 영원히 남는다. 큰 형님 산소에도 들렀다. 아쉬움과 후회가 이리저리 몰렸다. 두릅을 조금 땄다. 제각각 다른 속도로 자랐다. 그렇다. 만물은 이러한데 우리는 학생들에게 똑 같이 성장하고 더 빨리 이루라고만 재촉한다. 참 미친 세상이다.

-엄마. 저 왔어요.

-누고? 머할라꼬 오노? 일은 안 하나?

-쉬는 날입니다. 그냥 밥 먹거로.

-오이라.

언제나 같은 말로 인사하고 같은 말로 헤어진다. 고향 떠나 도시에서 살아봐도 별 재미는 없는 세상인데, 왜 그리 자식들을 도시로 도시로 유학을 보냈는지 모르겠다. 못 배운 한, 가난을 죄로 여긴 부모들의 속죄 의식을 이렇게 풀어 냈으니 인간이 인간다움의 격식을 갖추지 못했으리라.

양은 상에 조촐한 밥상을 차렸다.

-식사 합시다.

-그래. 묵자.

숟가락을 들자,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아침잠을 깨운 목소리였다. 그새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머리가 하얘졌다.

-네.

-오늘 시간 되세요?

-시골에 와 있는데요.

-언제쯤 오세요?

-저녁이나 되면 가겠죠.

-몇 시쯤요?

- 한 다섯시나?

-그럼 여섯시에 어제 만난데서 뵐 수 있나요?

-어디요?

-새벽에 처음 만난 그 가게 앞요.

-네. 그러죠.

전화를 끊고 어떻게 내 전화번호를 알았는지 묻지 않은 걸 잘했다 싶었다.

-누고?

-아. 아닙니다. 밥 먹어요.

설거지를 서둘러 끝내고 집을 둘러 봤다. 엄마만큼 집도 아파 보였다. 엄마는 그냠두라지만 보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엄마도 떠나면 이제 추억과 사랑이 자라던 이 집도 수풀이 우거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밀렸다. 나도 그러해지겠지. 거의 모든 사람에게.


씻고 옷을 갈아 입었다. 오랜만에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렸다. 청바지에 흰 티를 꺼내입었다. 어젠 축 늘어진 체육복에 부시시했는데 오늘은 좀 멀금해 보였다.

새벽녘 거리와 저녁의 거리가 닮아 있었다. 다만 새벽거리는 흐느적거리며 지쳐있었고, 저녁거리는 활기로 흥청거리고 있었다.

그녀가 먼저 나와 있었다. 청바지에 하얀 티. 젠장. 이러면 곤란한데.

-안녕하세요.

-네. 반가워요. 잘 들어 가셨나요?

-네. 덕분에. 차 한 잔 괜찮나요?

-그래요. 아뇨. 그냥 좀 걷죠.

카페에 들어가면 서로 뻘쭘한 듯했다. 천천히 길을 걸었다. 젊음은 코로나19 따위를 잊은 듯했다.

-아침엔 운동 나오셨나 봐요.

-아, 아뇨. 잠이 안와서 뒤척이나 무작점 걷다보니.

-그런데 전화번호는 어찌?

침묵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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