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라서 내봅니다.
노자 언어에 길의 내다
노자철학의 핵심 키워드
1 도(道)
‘내 안에 존재하는 길’을 스스로 모르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사람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며 지켜야 하는 당연한 길을 ‘도’라는 규범으로 노자는 제시했다. 동서양의 사상가들이 제 나름의 규범으로 세상의 질서를 논했지만, 노자의 실제에서 시작하여 추상적 개념으로 나아가는 ‘도’를 제시하여 우리가 살아갈 도리를 알려줬다. 언어의 한계성을 넘어 현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를 더 깊이 생각하고 스스로 깨쳐가는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의 도리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노자의 ‘도’는 완전한 이름이 아닌 존재의 궁극, 만물의 근원에 다가가는 길로 도를 표현하였다.
2 무위(無爲)
‘행하지 않다.’라는 문자적 의미를 넘어 ‘무위’는 도의 행위 또는 이상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행하지 않는다는 말은 언제나 행위와 관련된다. 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반드시 행함을 담는다는 말이다. 도를 찾아가는 길은 날마다 덜어가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결국 덜어내고 덜어내어 무위에 이르게 된다는 말은 최상의 지극한 상태에 이른 상태를 의미한다. 우리가 ‘함’을 잘하기 위해서는 편견과 선입견을 덜어내고, 나 자신의 허영과 자만을 덜어내야 한다. 결국 무위는 덜어냄을 함으로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감을 의미한다. 노자는 진정한 성인은 사람들을 교화하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변화와 자기개발을 이어가는 사람이다라고 합니다. ‘불언’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 할 것이다.
3 자연(自然)
노자 철학의 핵심인 ‘자연’과 ‘무위’는 노자가 처음 만든 말이다. 단순한 자연물을 넘어 (만물의 일부로서의 우리가 모두 자기성품을 제대로 지니고 그에 맞게 생장하고 성장하고 성취해나가는 그 모든 활동)을 뜻한다. 자신의 한정된 인식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자연ㅇ르 본받아야 하며 이는 자기 중심적 인식을 깨고 다른 존재를 이해는 기반이다. 스스로 그러함을 본받아야 한다고 한 ‘도법자연’은 도가 삶의 최고 원리가 아니다란 사실을 강조한다. 자연이란 만물이 가진 자연스럽게 생성되고 변화하는 원리를 의미한다.
4 현(玄)
완전한 이름이 아닌 궁극적이며 만물의 근원인 '도'는 ‘유’, ‘무’, 그리고 ‘현’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다. 있음과 없음은 다르지 않다. 모든 것을 합치면 ‘현’이 되는 자연스러운 원리와 같다. 세상의 모든 것을 합치면 ‘현’이 된다.(우주를 보라.) ‘현’은 ‘유’와 ‘무’가 대립적인 개념을 넘어 도를 표현하기 위한 말이지만 결국 모두 ‘도’와 관련된 만물의 생성과 변화를 표현한다.
5 소국과민(小國寡民)
부국, 강국 등 큰 나라라고 좋은 나라라 할 수 있겠는가? 물론 좋은 나라가 큰 나라가 될 수는 있다. 남을 침입하여 힘을 과시하는 나라가 아닌 스스로 사람들이 모여드는 나라가 큰 나라이다. 수많은 국민을 적은 수의 백성처럼 귀하게 대하는 자세가 바로 ‘소국과민’이다. 부익부빈익빈이 없으며 남은 곳에서 모자란 곳으로 흐르는 자연의 이치가 닿는 사회가 사람사는 세상이다. 군주는 자신의 눈이 아닌 국민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소국과민은 부국하나 강병을 추구하지 않고, 자족으로 만족하며 사는 이상사회로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군주도 마땅히 그러해야할 것이다.
2번
노자철학의 중심 개념들 중 1개를 선택
‘무위’와 ‘자연’을 하나로 생각해 봅니다.
세상이 갈수록 복잡해진다고 한다. 상호간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나날이 복잡해짐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런 현상을 겪으면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늘 이런 말을 달고 산다.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다.’ 채우고자 하지만 덜어냄이 없는 사람. 그 속에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 그러함’을 넘어 ‘타인의 시선에 끌린 그러함’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얽혀 살며 ‘나’의 현실을 다시 돌아본다.
행함이 없으나 행함이 있는 무위, 스스로 그러함을 소리 없이 이어가는 자연물 모두가 나의 스승이자 궁극을 찾아가야할 지침임을 모르지는 않지만 말처럼 그리 쉽지 않다. 자녀를 키우는 아버지로 스스로 그러하게 내버려 둠을 지키지 못하는 현실, 쉬고 있는 아이들에게 뭔가를 하지 않으며 시간이 아깝다고 잔소리하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무위자연의 섭리를 놓치고 산다. 많은 이들이 무위자연의 마음이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자식의 문제는 그리 쉽지 않은가 보다.
아마도 도, 유, 무, 현 등 노자가 말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길을 알면서도 가지 못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것이며, 자연이란 인간이기에 가능한 근본이지만, 인간이기에 더욱 ‘자연’을 배척하는지도 모르겠다. 덜어내는 행위로 행함을 이루고, 행함이 없으나 행함을 이루는 과정, 그 과정에서 스스로 그러함을 추구하는 무위자연의 마음으로 삶을 꾸려야겠다. 이는 도를 이루는 궁극적인 길임을 다시 새겨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당면한 현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