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을 즐길 권리(밀린 일기도 쓰다)

밀린 일기와 더불어 고독한 중년의 꿈을 위해

by 말글손

태어나서 늘 엄마와 함께 있었다. 농사를 짓는 부모님 그늘에서 늘 그랬다는 말은 어느 정도 차이가 나겠지만 그래도 나는 늘 부모님과 함께였다고 믿고 싶다. 아침에 젖 먹이고 나면 논으로 밭으로 나가셨다고 하지만 나는 지금도 그렇게 믿고 싶다. 학교를 들어가면서 늘 친구들과 함께였다. 물론 제각각의 생각이 달랐겠지만, 여전히 나는 늘 친구들과 함께였다고 믿고 싶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늘 동료들과 함께였다고 믿었다. 물론 제각각의 이익을 위해 모여들었지만, 여전히 나는 그들과 함께였다고 믿었다. 연애를 하면 늘 연인과 함께였고, 결혼을 하고 나서는 늘 아내와 함께라고 믿었다.


나에게도 자식들이 태어났다. 상황이 변한 듯했다. 이제는 함께라기 보다는 늘 두 아들과 함께 해야했다. 아이들의 마음에 든든하고 좋은 아버지가 함께 한다는 사실을 믿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 아이들이 성장을 하면서, 그 사이 아내와 나는 세월이 흘러 어느덧 제 삶의 여유를 찾아가고 싶을 때 쯤. 어느 순간 혼자서 놀거리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이 밀려왔다. 고독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인생 선배들의 이야기가 되살아났다. 선배들이 늘 골프를 치러간다, 낚시를 간다, 어디 드라이브를 다녀왔다, 산을 자주 오른다라는 말을 들을 때면 도대체 왜 그럴까. 그 시간에 가족들과 좀 시간을 보내지 했다. 알고 보니 내가 틀렸다. 그들고 그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을 뿐이다. 아이들은 아이들의 시간이, 아내는 아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각자의 시간이 필요하니 이제 나도 나의 시간을 즐길 권리가 생긴 것이다. 고독을 즐길 권리가 생긴 것이다. 이렇게 사람은 또 한번의 성장통을 겪으면서 자신만의 성을 구축해간다. 나도 이제 나만의 성을 구축할 나이가 되었나 보다.


0725

일요일 : 무엇을 하고 시간을 보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이어리에도 아무런 기록이 없다. 아! 집에 에어컨 설치를 와서(이제서야 에어컨이라니!) 하루 종일 집 정리하고 청소를 했구나. 그래서 아무런 기억이 없어졌나 보다. 젠장! 살면서 집 청소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내가 사는 공간을 정리하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데. 이렇게 소중한 일을 의미없는 듯 잊어버리다니.


0726 월

오전엔 경남교육청 그린멘토연수 강의를 듣고, 함안교육지원청에 물품을 전해주고, 대학생 멘토단 연수를 했다. 대학생들의 똘망한 눈을 보니 왠지 기분이 좋았다. 마치 내가 뭐가 된냥 으쓱했다. 이 학생들이 함안형 캠퍼스형 방과후 학교를 멋지게 이끌어 갈 친구들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행정이지만, 마음에 드는 것은 젊은이들의 눈빛이다.


산청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아버지 연수가 있어 함안에서 일을 보고 천천히 출발했다. 시간은 넉넉했다. 배가 고파 가는 길에 냉면 한 그릇 했다. 국도를 달리는 기분이야 누가 아랴. 천천히 달려가는 길에 하늘의 구름, 그 아래 푸른 산의 호흡마저 느끼며 자연을 만끽했다. 기온이 자꾸 오르는게 영 걱정이 되지만, 그래도 인간은, 현명한 인간은 잘 극복하고 슬기롭게 대처해나갈 것이라 믿는다. 아버지 교육이 끝나고 나니, 아홉시가 훌쩍 넘었다.


0727 화

오전에 마을에서 있을 비헹분섞 연수를 위해 준비를 하고, 오후엔 주민을 모아 연수를 실시했다. 분리수거함을 선물로 드리지만, 그냥 선물이 아니다. 지구와 함께 살기 위한 우리의 행동철칙을 전해드린 것이다. 이어 주민총회 준비를 위한 영상 촬영도 해야했다. 내년도 사업 제안설명을 영상을 찍었다. 그리곤 창원시 문화도시를 위한 발표회 리허설 준비를 위해 창원시문화도시지원센터로 달렸다. 그리고 회의가 끝나고, 집에와서 영상 편집을 하니 자야할 시간이 되고야 말았다. 나의 의지와 무슨 상관이랴. 일이란 게 다 그런거지. 그런데 왜 일에 대한 댓가가 없는 걸까? 참 웃긴다. 그래도 다니는 나를 보면 나 자신이 우스울 뿐이다.


0728 수

아침에 청소년위카페 다온에 분리수거함을 전해드렸다. 청소년들은 더 잘하지만, 그래도 좀 더 널리 알리고 싶어 전달해드리니 센터장님이 너무 고맙다고 차도 한 잔 주신다. 다시 집으로 와서 디지털배움터 일정을 연구하고, 정훈이와 새마을금고 사진 공모전을 위해 동네 새마을금고에 들렀다. 직원분들이 친절하게 사진 촬영에 임해주고, 적극적으로 도와주셔 멋진 설정샷이 나왔다. 우리는 사진 기술이 아니라 함께 하는 컨셉으로 승부를 본다. 뭐! 매번 꼴찌 상 정도 받는 수준이지만, 이런 삶의 재미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번에도 기대한다.


참. 저넥 즈음, 훈서가 당근시장에서 산 중고 자전거를 동정동에서 타고 오는데 이래저래 이상. 수리점에 가서 만원주고 휠 고정. 브레이크 손 보기. 판매자에게 항의성 전화를 했으나, 엉뚱 소리. 아들 기운 빠질까 그냥 함구. 에헤라.


그리고 오후에 다시 주민총회 사업설명회 영상 촬영과 편집. 밤 12시가 되서야 대충 마무리가 되고, 하지 못하는 편집은 전문가 두 분에게 따로따로 맡겼다. 두 가지 버전이 나오면 더 좋다. 돈이 조금 들어가는 거야 뭐 어쩌겠나? 이왕이면 마을에 도움이 되면 좋지 않을까.


0729 목


정신이 없다. 멍하니 일어나니 큰 아들은 학교에 보충을 떠났다. 어영부영 뭔가를 하긴 했는데 표가 하나도 나지 않지만 그래도 틀림없이 뭔가를 했다. 시간이 금방 갔다. 갑자기 약속이 생각나서 강의결과서를 경남건가에 보내고, 윤씨 총각에게 아이스크림 선물도 쐈다. 직원분들과 시원하게 나눠 드시라고. 그리고 가활에 가서 결재. 책갈피 선물도 받고, 8월 11일 프로그램도 연구하고. 훈서가 거락숲에 놀러간다고 해서 태워주고 집에 오니 2시. 정훈이와 유정이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나니 졸린다. 이제 좀 자다가 나중에 다시 일기를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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