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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글손 May 15. 2022

어제의 나를 돌아보며 지금의 나를 살피고 내일의 나를


     

  우연이었을까. 지금은 인연의 끈이 거의 닳을 대로 닳아서 몇 가닥 남지 않지도 않은 형수가 집을 찾은 지가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가는 것 같다. 형수는 형님이 돌아가시고 10여년이 훌쩍 지나서야 어머니를 처음 찾았지. 형님의 제사를 가지고 가겠다면서. 그리고 남은 형제들에게 건넨 몇 장의 사진들. 각자의 추억이 조금씩 남아있는 사진 몇 장이 그렇게 애절할 수가 없었지. 그 사진 몇 장이 다시 너의 심장을 뛰게 했다는 그 기막힌 우연 말이야.  

  사진을 보면서 잠시 생각에 빠진 네 모습 기억나니? 꼬마시절 행복과 슬픔이 교차하는 순간들을 떠올렸고, 청년이 되어 스스로 불행하길 자초하며 세상을 회피하고 살던 네 모습을 돌아보던 잠시의 그때가 말이야. 두 아들의 아버지가 돼서야 겨우 세상에 눈을 뜬 널 떠올릴 수 있었지. 아무도 없는 도서관( 당시 나는 공공 사설도서관을 운영 중이었다)에 앉아 눈물 반 콧물 반으로 얼굴을 훔치며 너의 시간을 돌아보며 웃고 울었던 그 모습 말이야.

    시간은 원하지 않아도 흐르게 마련인데 굳이 흘러가는 시간만 탓하며 제발 빨리 ‘오늘’도 달아나길 바라던 그때도 이미 ‘어제’가 되었다는 사실을 지금에야 알게 되었다는 건 참 아쉬운 일이지. ‘가난한 농부의 아들도 태어나……’라는 문구가 자기소개서의 첫줄을 장식했듯, 네 삶도 딱 그러했지. 성실한 아버지와 악착같던 어머니 덕분에 가난했기보다는 일이 많았던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추억이라곤 모내기를 하고, 타작을 하고, 소꼴을 베고, 나무를 하던 기억이 전부였지만, 그래도 행복이란 말을 쉽게 할 수 있었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말이야.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논두렁에 앉아 낫으로 감을 깎아 먹으며 지는 노을을 한참 바라보았지. “아버지가 계시면 참 좋을 텐데……”하시던 어머니의 넋두리를 들으면서. 그렇게 아버지를 대신한 큰형님 가족과 함께 지낸 시간은 뭐랄까? 낯선 어울림 속에서 형님의 과분한 사랑으로 지탱했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막내 동생에 대한 형님의 애정이 깊었기에 그럭저럭 불편하지 않게 성장한 건 참 고마운 일이지. 너도 공감하고 동의하지. 그럴 거야. 우리는 나름 나쁘지 않은 행복을 누리는 6남매였지.

  시골 촌놈이 도시로 유학을 온 게 잘한 건진 모르겠다만, 다들 도시로, 도시로 나오던 시절이었으니 너도 당연한 결정이었겠지. 빨리 돈 벌어서 엄마 농사일 그만하게 하겠다고 상업고를 가려던 널 큰형은 책임감으로 인문계를 보냈어. 그때 형에게 제대로 대들지도 못한 게 후회된다고 가끔 그랬잖아. 그래도 괜찮아. 인문계고를 왔다고 그리 나쁘진 않았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역시 너 자신이었어. 모래성 위에 쌓은 자만심은 스스로 널 힘들게 했지. 그리곤 세상을 조금씩 탓했고. 그랬지. 아니 안 그랬을 수도 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랬을 거야. 나약한 네 모습을 그땐 인정하기 싫었겠지. 그래서 네 주변에 기대고 의지했었지. 그건 모두 너의 선택이었지. 제대 후 네 모습 기억나니? 네 인생을 네 스스로 갉아먹던 시절이었어. 누구의 권유도, 강압도 없었어. 그냥 네 스스로 주변을 탓하고, 과거를 추억만하면서 네 스스로를 그렇게 어망 속에 넣어두고 가두었어. 그 어망을 벗어나려 하지도 않으면서 그냥 그물이 있어 내가 세상으로 나가지 못한다고 핑계를 대면서 말이야.

  그래도 세상에는 희망이 존재하는 걸 느꼈지. 그런 널 믿고 따라주는 소중한 여인을 만났으니까. 그리고 쥐뿔도 없는 형편에 결혼도 했지. ‘뭐 하냐?’고 묻는 처가 식구들에게 ‘학원을 합니다’라고 뻥을 치고, 그 뻥을 사실로 바꾸려고 학원을 덥석 시작했지. 아무것도 준비 안 된 너에게 학원 운영이 그리 만만치는 않았지. 참, 멍청한 학원 운영이었지만, 나름 재미도 있었어. 그치? 훌륭한 제자를 만났고, 좋은 선생님들과 좋은 인연도 맺었어. 하지만 학원도 사업인데 네 성격엔 잘 맞지 않았지. 이해는 하지만, 지금 같으면 용납이 되지 않는데 당시에는 왜 내가 널 이해했는지 몰라. 보증금을 빼고, 은행 대출이 안 돼서 사채도 빌려 선생님들 급여를 주었지. 너와 날 이해해준 아내가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너도 없었겠지. 이번 기회를 빌려 너와 나의 아내에게 정말로 고맙고 사랑하고 존경한다고 인사라도 한번 해야겠지. 그렇게 힘들었던 우리에게도 희망이 생겼어. 아들이 태어났잖아. 여전히 ‘사람 좋은 사람’으로 세상에서 받아들여지길 원했던 너와 내게도 새롭게 삶을 살아가야할 이유가 생겼어. 팔삭둥이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인큐베이트에서 한 달이나 살다가 우리에게 온 아들이지만, 세상의 전부가 또 우리에게 온 거야. 어쩌면 우리 인생은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되었는지도 몰라. 그래. 그랬어. 그렇게 조금씩 빚도 갚아가며, 10원부터 차곡차곡 계단을 쌓았지. 수고했어. 부자는 아니라도 따뜻한 밥 한 끼 나눌 수 있는 지금이 얼마나 행복한지 참 고마운 일이지.

  참, 그때부터였나 보다. 네가 그렇게 책을 파고, 공부를 하면서 스스로 버렸던 10여년의 시절을 되찾고 싶었던 것이. 하나씩 하나씩 쌓여가는 네 삶의 흔적들이 조금씩 먼지에 묻혀갈 때, 네가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세상의 별별 일에 관심을 가지고 ‘이거 하면 재미 있겠다’, ‘저거 하면 의미 있겠다’ 했지. 그리곤 되든 안 되든 꼭 해보는 실천행동은 높이 살만해. 그러게 가끔 내가 그러잖아. 좀 더 일찍 그랬어야지. 그래! 보채는 건 아니야. 아프신 장인, 장모 그리고 시골 어머님께 착한 아들이 되느라 수고 많았어. 주변 어른들께도 잘 해왔으니 그 점도 높이 사지. 덕분에 넌 형제들 사이에서, 사회에서도 착한 아들로 꽤 인정받았으니 그 정도면 네 공에 비해 사치란 생각도 들지만 말이야. 두 아들에게 잘한다고 세상에 어떻게 보였는지 좋은 아버지도 얻고 살고 있으니, 그 정도면 넌 참 운 좋은 사람이야. 나름 잘 해왔다고 하지만, 100점짜리 남편이자 아버지는 아니야. 점수를 준다면 한 60점정도? 어쩌면 이 점수도 꽤나 후하게 줬다는 거 알아둬. 아내 속을 꽤나 썩였으니 이제부터는 자식이나 아버지 역할보다는 남편 역할을 더 잘해야 할 거야. 자식들이야 떠나면 그만이지만, 너와 함께 세상 끝까지 갈 사람은 아내밖에 없잖아.  

  이랬든 저랬든 네 인생의 5분의 1은 아쉽다고 쳐도 꽤 많은 나머진 그럭저럭 괜찮은 시간을 보냈으니 이젠 네가 받은 과분한 복을 세상과 나눌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렇다고 뭐 돈을 척척 낸다거나 세상에 나서서 ‘내가 이랬는데 그대들도 이렇게 사시오’하고 까불 필요는 없어. 나서지 않고도 얼마든지 세상의 빛이 될 수 있어. 조그만 노력과 약간의 희생, 그리고 나서지 않을 용기.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지금의 널 한번 더 살펴볼 필요가 있을 거야. 오만하거나 방자하지 않은지 살피고, 거만하지 않은 지 살피고, 나대지 않는 지 살피고, 교만하지 않은 지 살피고 또 살펴야 할 것이야. 자승자강이라 했다. 스스로를 이기지 못하면 결코 누구도 이기지 못하는 법. 어제의 널 돌아보고, 지금의 널 두루두루 자세히 볼 수 있어야 해. 지금의 넌 어제의 너에게 후회가 남기에 존재하는 거야. 지금의 네 모습에 한 줌 아쉬움이 없다면 내일의 너는 단 하나의 가치도 찾기 힘들지도 몰라. 네가 그랬지. 네 삶의 목적은 “참 괜찮은 사람이 이승에서 저승으로 갔으니, 저승도 나름은 살만한 곳인지 몰라”라는 말을 듣는 것이라고. 그래. 여전히 네 삶은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중간에 있어. 어제를 돌아보며 지금을 살피듯, 지금을 살피며 내일을 내다봐. 내일은 그냥 저절로 다가오는 그런 시간이 아니지. 우리 인생에 보물 지도가 있다면 그건 재물을 찾아가는 그런 寶物地圖가 아니라 우리 人生知道일거야. 人生知道는 시간 위에 새기는 것일 거야.          

2021년 9월 6일

어제의 나를 돌아보며 지금의 나를 살피고 내일의 나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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