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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꾼 만남 언젠가 쓴 경남독서한마당 독후감

by 말글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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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도서명




삶을 바꾼 만남






『삶을 바꾼 만남』을 가슴에 묻다.

부제 : 황상은 ‘학질’을 앓았지만 나는 ‘망나니 병’을 앓았다.

장진석

운명처럼 만난 스승과 제자, 그리고 떨어져 있어도 함께 있는 그 인연. 터벅머리 꼬마 황상이 스승을 만나 그 가르침을 실천했다. 그리고 스승과의 만남을 끝까지 신의로 지킨 황상. 스승과 제자의 만남은 운명처럼 다가온 인연이었다. 하지만, 황상과 정약용의 만남만 그런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께선 일찍 간암으로 작고하시고 노모께서 힘들게 육남매를 키우셨다. 하지만 그럭저럭 착하고 순한 시골의 아이였다. 시골에서 도시로 유학을 나왔다. 그때는 대부분의 친구들이 그랬다. 학업성적도 좋았다. 친구도 많았다. 철없던 십대 시절, 나는 세상의 난관이라곤 찾아 볼 수 없었다. 내 앞을 가로막는 방해물이란 없었다. 그렇게 겁을 상실하고, 독불장군처럼 내가 사는 우물 안에서 폴짝대면서 뛰어 다녔다. 하지만 나는 천지를 모르고 날뛰었다. 틀림없이 철이 없었다. 확실했다. 형들이 어린 막내를 보살펴 주니 천방지축, 앞뒤 분간 없이 살았다. 시골 아이의 순수함을 벗고, 점차 도시의 마력에 빠져들고 있었다. 학창시절의 행복인 배움은 그렇게 점점 멀어져갔다.

고삐 풀린 송아지에게 코뚜레를 끼워 주신 분은 나의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이었다. 하지만 난 그 코뚜레마저도 한 손으로 살짝 뽑아버리곤 했었다. 그리고 전역을 하였다. 세상은 달라졌다. 노모는 기력은 더 떨어져 농사일도 힘에 겨웠다. 사업을 하던 형은 실패를 겪고, 집안의 기둥이던 큰 형은 세상을 등졌다. 철없이 소비한 십대의 세월이 아무런 준비도 없는 이십대의 방황으로 다가왔다.

이십대의 나는 그렇게 밤바다에 망연히 떠 있었다. 삶의 지표를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항해할 바다에는 등대가 없었다. 깜깜한 밤바다에서 그렇게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다. 그때 먼발치에서 한 줄기 희미한 불빛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 희미한 빛을 따라 키를 돌렸다. 비뚤어진 나를 집으로 데리고 가신 분. 과일 한 접시를 테이블에 놓고, 단 한 마디를 하신 그 분.

“진석아. 네 안을 봐야 한다. 밖을 보려 하지 마라. 답은 네 안에 있다.”

지나간 시절의 영사기를 다시 돌렸다. 너무도 긴 시간을, 수풀 속에서 우연히 찾은 작은 열매에 즐거워하고, 망망대해에서 어쩌다 배에 튀어 오른 물고기에 신이 났었다. 그런 행운이 나의 노력이라 까불었다. 삼십이 다 되어서야 나를 살필 수가 있었다. 내가 해 놓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살아야한다.’ 아니, 나에게 빛을 준 한 사람을 다시 만나야 했다. 그렇게 그 분을 다시 찾아갔다. 내 나이 서른이 되어서였다.

“선생님!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애물단지였지만, 이제라도 바로 해 보렵니다. 그저 깨침이 너무 늦어 죄송할 따름입니다.”

나는 흐르는 세월만을 한탄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서른이 되어 다시 책을 잡았다. 십여년 손을 떠난 책이 그리 반갑겠냐만, 오랜 친구를 만나듯 대화를 했다. 학창시절 좋아하던 영어를 시작으로, 다시 나의 붓은 책 속의 진언을 끝없이 초록하고, 가슴에 새겨 담았다. 하지만 늦은 배움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머리만 믿고 덤비던 그 시절이 그리웠다. 아니, 그 당시의 그나마 순수한 나의 감정이 그리웠다. 책을 읽어도 세상과 연관 짓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배움이란 그 순수한 즐거움을 깨달아야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찾아야 했다. 그렇게 다시 책을 잡은 지 십년이 되었다. 수많은 책을 읽었다. 책 속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나를 발견하는 초석이 됨을 느꼈다. 이제는 몇몇 곳에 기사도 투고하고, 잠시 여유의 시간에 즐겨 글쓰기를 한다. 그리고 나 역시 사람들에게 배움을 전하는 또 다른 한 사람이 되어 있다.

나는 행복하다. 스승의 가르침을 늦게 깨친 것이 아쉬우나 행복하다. 스승의 가르침을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을 바꾸는 소중한 만남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와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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