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모호를 명료하게 하는 법
가족과 새해 계획을 세웠다. 올해는 자신의 계획은 각자 세우는 대신 서로에게 바라는 게 무엇인지 이야기했다. 지키기 쉽지 않은 요구들이 쏟아졌다. 각자 핑계를 대며, 자신의 입장을 대변했고, 과도한 요구는 지킬 수 없다며 불만을 쏟아냈다. 누구도 자신의 바람과 일치하지 않았다. 난감한 표정이란. 볼만했다. 둘째가 나에게 말했다. “공모전 시키지 않기” 순간 멍해졌다. ‘뭐지?’ 나는 평소 공모전을 즐겨한다. 표어, 아이디어 제안, 기획안, 사진, 영상, 수기 등 되는대로 도전했고, 꽤 선정되었다. 덕분에 몇 번의 심사를 하는 행운도 얻었다.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수기를 시작으로 수많은 공모전을 하면서 성장의 기회를 얻었다. 주어진 주제를 골몰히 생각하다보면 문득(聞得)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EBS의 한 프로그램에서 한근태 경영컨설턴트는 글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조선시대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신언서판(身言書判 : 외형과 말과 글과 판단력)이다. 여기서 말과 글의 중요성을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피아제는 생각이란 RePresentation(다시 표현하기)로 정의했다. 그만큼 말과 글은 우리에게 중요하다”라고 했다. 좋은 생각은 좋은 경험에서 나온다. 하지만 경험은 재료에 불과할 뿐 완제품이 아니다. 된장국을 끓인다고 하면 경험은 된장, 호박, 미더덕이고 이를 잘 배합하여 끓여내야 된장국이 된다. 물론 재료가 좋아야하고 끊여내는 정성이 있어야 맛있는 된장국이 된다. 좋은 경험은 좋은 재료가 된다. 이를 머릿속으로 잘 정리하는 과정과 말로 뱉어보는 과정을 통해서 틈을 찾고, 글쓰기를 통해 좋은 생각을 만들면 한층 성숙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가끔 글을 쓰다보면 생각 외로 울적하거나 화가 나는 경우가 많다. 뭔가 좋은 일은 늘 손에 들고 다니는 카메라로 그 순간을 후딱 해치우고 SNS에 자랑하기 바쁜 반면, 분하거나 억울하면 차분히 앉아 글을 쓴다. 시간이 없다고 핑계를 대지만, 어딘가에 낙서라는 명목으로 글을 긁적이고 있다. 억울함, 화, 슬픔, 절망과 분노로 마구잡이로 내뱉어지는 말이 정제된 글로 다시 태어난다. 그 사이 마음은 치유되고 안정을 찾는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삶을 풀어내는 글은 중요해진다. 글을 쓰면 불투명한 유리창을 통해 바라보던 흐릿한 세상을 보다 선명하게 볼 수 있다. 괴테가 말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가질 수 없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또한 글쓰기는 약간의 시간과 최소한의 비용으로 할 수 있는 최고의 공부이다. 종이와 펜만 있으면 된다. 요즘은 언제어디서든 글을 쓰고 공유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글이 쏟아져 나오는 것도 아니다. 『글쓰기는 쉽다: 백지를 응시하고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 이마에 핏방울이 맺힐 때까지.-미국 저널리스트 진 파울러』. 늘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살펴보아야 하는 명백한 이유인지 모른다.
글쓰기는 방법이야 무궁무진하지만, 혼자보다는 함께 쓰고 함께 읽고 함께 나누면 훨씬 더 즐겁고 유익한 글쓰기가 될 것이다. 돈을 써본 사람이 돈 관리를 잘 하듯, 글을 쓰는 사람은 애매모호함을 명료함으로 바꾸는 힘을 가진다. 글은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삶의 문제를 푸는 힘을 가진다. 학창시절 ‘컨닝페이퍼’에 열심히 적은 내용은 저절로 기억이 나듯이 말이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이 말을 명심하자. 『가장 좋은 스타일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스타일이다.-영국 작가 서머싯 몸』 각자의 ‘커닝페이퍼’가 있지 않은가.
“아들아, 공모전을 하기 싫으면, 일기를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