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줌의 물, 한 모금의 물

물 한 방울이 귀한 이유는

by 말글손

한 줌의 물, 한 모금의 물

“아버지, 집에 연기가 나요.” 아홉 살 아들의 목소리.

“어, 집에 아무도 안 계시나?” 나는 짐짓 놀랐지만,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네, 아무도 안 계신 것 같아요.” 아들의 목소리도 그렇게 다급하진 않았다. “그럼 부엌에 가 봐라. 가서 가스레인지를 잠그면 되겠다.”

집에 아무도 없다는 말에 걱정이 되어 장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장 서방인가? 나 지금 병원에서 집에 가고 있네.” 장모님은 아무것도 모른 체, 태연히 전화를 받으셨다. 이렇다 저렇다 사정 이야기를 할 틈이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급하게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갑자기 가슴 한 구석이 어두워졌다. 다시 집으로 전화를 했다.

“훈서야. 불은 껐나?” 갑자기 수화기 너머로 여섯 살 작은 아들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아앙, 아빠, 빨리 와. 어떻게? 아아아앙.” 작은 녀석의 그 울음은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했다.

“우리 할배, 어떡해요?” 작은 아들의 외마디 외침이 전화를 날카롭게 뚫고 날아들었다. 바위가 가슴을 눌렀다. 매캐한 연기가 머릿속을 누볐다. “불은 껐니?”

“네. 가스레인지는. 하지만 연기가……, 할아버지가…….” 아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럼 빨리 밖에 나가서 동네 어른들을 찾아라. 현관문을 열고, 집 밖에 있어.” 나는 급하게 소리쳤다.

반사적으로 몸을 날려 차로 달렸다. 차를 향해 달려가는 길이 왜 그리도 멀게 느껴지는지. 허둥지둥 자동차의 문을 열었다. 차에 비상등을 켜고 달렸다. ‘119 신고는? 아니, 내가 더 빠르다. 집까지 소요시간 3분.’ 정말 다행이다. 사무실과 집이 가깝다는 사실만으로도 지금 이 순간이 더 다행스럽게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집으로 가는 그 찰나의 몇 분이 내가 살아온 사십 년 보다 길게 느껴졌다.

아내와 나는 장애 2급 진단을 받으신 장인어른과 몸이 편찮으신 장인과 함께 살고 있다. 물론 나도 일을 하고 아내는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다. 나는 아침에 아이들과 함께 나와 집에 오면 자정이 넘는다. 삼 교대 근무로 시간이 일정치 않은 집사람을 대신해 늘 애들과 노부모님이 집을 지키고 계신다. 장인은 파킨슨병과 치매로 의식도 없이 누워 계신다. 8년 전에 처음 진단을 받았지만, 나름대로 몸을 가눌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병은 심해졌다. 몇 해 전부터는 잦은 입원, 퇴원이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대소변도 직접 손으로 받아 내어야 할 정도로 몸을 가누지 못하셨다. 얼마 전 저혈압과 심장쇼크, 폐렴으로 한 달여를 입원해 계시다 퇴원한 지 일주일이 되었다. 장모님도 중풍을 아버님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중풍을 진단받으셨다. 하지만 장모님은 끊임없는 재활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거동은 가능하셨다. 하지만 몸이 온전치 못하고, 장인어른이 그렇게 누워계시니, 요양보호사 선생님 - 이런 면은 정부의 복지 정책이 참으로 마음에 든다. - 이 집으로 오셔, 어르신들 일을 도우신다. 강사인 나는 낮에 짬을 내어 아내 대신에 둘째를 데리러 병설유치원으로 가야만 했다. 큰 녀석은 태권도 도장과 피아노를 다녔다. 두 아들이 함께 집에 오는 시간은 거의 다섯 시가 되어야 했다. 작은 아들을 유치원에서 데리고 오는 길에 큰 녀석을 피아노 학원에서 데리고 오는 일이 일상이 된 지 오래였다. 하지만 그날은 아주 이상했다. 큰 놈이 배가 아프다고 태권도 도장과 피아노 학원을 못 가겠다고 했다. 꾀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누구나 한 번쯤은 만사가 귀찮은 경우가 있지 않은가? - 나도 왔다 갔다 하는 것보다는 한 번에 집에 데려다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놈 하교 시간에 작은 녀석도 함께 데리고 집으로 갔다.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계시고, 장모님은 집에 계시지 않았다.

“어머니는 어디 가셨나요?”

“네, 병원에 다니러 가셨어요.” 요양보호사 선생님은 집안 정리를 하고 계셨다.

“네, 알겠습니다. 전 일하러 갑니다.” 아이들과 선생님을 뒤로하고 학원으로 왔다. 그리고 학원 사무실에서 수업 준비와 마무리 못한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그때 전화가 온 것이다. 얼마나 행운인가?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녀석들마저 집에 없었다면 일이 어찌 될지는 투명한 유리 속을 보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주택가 빽빽한 소방도로에 우연히 내가 주차할 곳이 있었다. 차를 던지듯 아무렇게나 도로에 세워두고 집으로 달렸다. 골목으로 들어서자 뿌연 연기가 집에서 뿜어져 나왔다. 집안으로 돌진 - 지금까지 달리기 꼴찌만 하던 나였지만, 그 날은 참으로 빨랐다. - 했다. 두 아들은 현관문 앞 계단에 앉아 까만 얼굴에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다.

“괜찮아?” 아이들을 안을 틈이 없었다. 아니, 아이들의 대답을 들을 시간이 없었다. 그대로 방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방안은 매캐한 연기로 가득 찼다. 먼저 아버님의 숨을 살폈다. 연기가 미처 아버님이 누워있는 침대까지는 많이 내려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휴, 정말 다행이다.’ 아버님은 조용히 숨을 쉬고 계셨다. 창문을 열고 급하게 환기를 시켰다. 오래된 주택이라 천장은 높았지만, 그 높은 천장에 연기가 가득했다. 그때부터였다. 연기는 안개처럼 내려앉기 시작했다. 창문을 연 것만으로는 환기를 시키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연기를 빼내야 했다. 가끔씩 집안 먼지를 털어 낼 때 선풍기를 창으로 향해서 신나게 먼지를 털곤 했던 기억이 났다. 선풍기로 연기를 밖으로 빼내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선풍기! 선풍기가 어디 있더라?’ 이층으로 달렸다. 없었다. ‘다락.’ 다락으로 가 선풍기를 있는 대로 꺼냈다. 그리고 선풍기를 돌렸다. 선풍기 바람에 밀려나는 연기는 꾸역꾸역 집 틈과 창문 사이로 밀려 나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연기를 마신 사람의 폐가 어떻게 되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특히 아버님은 폐가 좋지 않아 입원도 하시지 않았던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 하지? 아버지를 업고 나가야 하나?’ 하지만 혼자서 아버님을 쉬이 업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누우신 지 오래라 몸은 딱딱하게 굳어 있어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온갖 생각이 머리에 얽힌 실타래처럼 굴러다녔다.

‘물수건. 물수건이 필요하다.’ 아이들의 손수건에 물을 적셔 아버님의 코와 입을 막았다. 그리고 잠시 밖으로 나왔다. 아이들을 달래주어야만 했다.

“괜찮니? 아들들. 놀랬지? 그래도 침착히 잘 처리했다. 정말 잘했어.” 가까스로 가슴을 쓸어내린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아빠, 할아버지 죽었어?” 작은 녀석이 겨우 울음을 멈추고, 울먹였다.

“아니, 괜찮으시다.” 아들의 말이 짐짓 가슴을 눌렀다.

“너희들이 잘 방문도 열고, 불도 빨리 꺼서 다행이야. 할아버지 괜찮으셔.” 두 아들은 아직도 울음 가시지 않은 얼굴로 문 안만 들여다보았다.

“너희들도 물로 입 좀 가시고, 한잔 마셔라.” 아직도 연기로 가득한 거실로 들어가 물 한잔을 가져와 아이들에게 주었다.

“아, 시원하다. 이제야 살겠다.” 아이들의 말에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때 이웃집 아저씨가 왔다.

“연기도 나고 애들이 고함을 질러 왔습니다. 어떠세요? 괜찮으세요?”

“아, 네. 정말 감사합니다. 괜찮습니다.”

“장 서방, 무슨 일인가?” 때마침 장모님이 놀라며 들어오셨다.

“아, 냄비가 좀 탔나 봅니다. 좀 있다가 들어오세요. 연기가 독합니다.” 놀라면 안 되는 장모를 겨우 달랬다. 요양보호사님이 음식을 데우다 불을 깜빡하고 퇴근을 하신 모양이었다. 집을 대충 정리했다. 온 집에는 음식 탄 비릿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선풍기 두 세대가 돌아도 냄새는 쉬이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수업을 하러 왔다. 목도 아프고 머리도 아팠다.

‘시원한 물 한 잔 마셔야겠다.’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정말 천상의 맛이었다. 갑갑한 마음을 일순간 쓸어내려주었다. 쉬는 시간이 되자, 집이 걱정이 되어 다시 전화를 걸었다. 마침 아내가 전화를 받았다.

“오늘 어찌 된 거예요? 일단 내 정리 좀 하고 전화할게요.” 아내는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얼마 후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아버지는 어떠시노? 괜찮으시나?”

“아버진 괜찮으시고, 애들도 괜찮아요. 오늘 놀랐겠네요.” 아내는 별일 없었다는 듯 차분히 말했다.

“오늘 장난 아니었다. 집에 연기 가득하고. 완전 큰 일 날 뻔했다. 오늘 애들 고생했고, 정말 잘했어. 물 좀 많이 마시게 하고, 밥 잘 먹여. 환기는 계속 시키고. 참, 아버님도 물을 자주 드려.” 미처 마무리를 못한 부분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밤 열두 시, 수업을 마치고 쾌쾌한 냄새가 지독히 나는 집으로 가 누웠다. 그 순간을 돌아보았다. 아이들의 침착한 행동이 무척이나 고마웠다. 아찔한 순간이 한번 지나갔다. 장인의 코와 입을 막아준 손수건을 적셔줄 한 줌의 물! 쓰라린 목을 적셔주는 한 모금의 물도 너무도 소중했다. 다시 물 한잔을 벌컥 들이켜고는 자리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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