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끝에 보이지 않는 희망도 희망이다
“아빠, 여기 와 봐요. 얼른, 얼른.”
경찰서 2층의 통로 유리문을 빠끔히 열어보던 여섯 살 둘째 아들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왔다. 초등학교 2학년인 첫째가 나보다 앞서 쏜살같이 달려갔다.
“아버지, 진짜로 신기해요. 빨리 와 보세요.”
맏아들의 외침도 나의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나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왜? 지금 간다.”
나는 아이들에게 느릿느릿 다가갔다. 내가 천천히 유리문으로 다가갈 때, 둘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보세요. 무지개에요.”
유리문의 좁은 단면을 통과한 빛은 직선의 아름다운 무지개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무지개. 비 온 뒤 많은 이들의 가슴에 알 수 없는 아련한 설렘을 전해주는 존재이다. ‘서쪽 무지개가 서면 소를 강가에 내 매지 마라.’라는 속담이 생각났다. 이는 아침나절에 서쪽에서 비가 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좋은 예이다. 어린 시절 소를 먹이며, 농사일을 돕던 나에겐 그렇게 낯설지 않은 속담이다. 어디 무지개가 날씨와만 관계된 말인가? ‘무지개는 빛이 공기 중의 물방울을 통과할 때 굴절로 생긴다.’라는 과학적인 논리는 차치하고서라도 비 온 뒤 하늘에 반원 모양의 무지개가 뜨면, 많은 이들은 희망이 저 무지개 끝에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 역시도 그랬다. 한낮에 소나기가 내린 후, 들판에서 북녘 하늘의 무지개를 한없이 바라보곤 했다. 언제나 무지개 끝에는 보물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런 순진함과 희망을 사라지는 무지개에 실어 떠나보냈다.
무지개가 주었던 소중한 희망과 꿈이 세월이 지나,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되고서야 다시 생각났다. 인근 경찰서에 아동 실종 예방프로그램에 사전가입을 하기 위해 들렀다. 두꺼운 유리문 틈 사이로 뚫고 들어온 빛이 통로 바닥에 무지개를 만들었다. 하늘의 반달모양의 무지개와는 다른 모양이었지만, 틀림없이 무지개였다. 나는 허리를 들어 일을 보러 나섰으나, 아이들은 그 무지개를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확실히, 세월이 흘러도 무지개는 아이들에게 희망과 환상을 심어주는 멋진 친구임에 틀림없었다.
그날은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아이들에게 무지개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옛날 하늘에는 서로 자기가 낫다고 우기는 일곱 남매들이 있었어. 바로 무지개 왕자와 공주들이지. 이들은 하늘나라의 임금님의 자식들이야. 첫째 빨강, 둘째 주황, 셋째 노랑, 넷째 초록은 남자였고, 다섯째 파랑, 여섯째 진파랑(남색), 그리고 막내 보라는 여자였지. 모두가 항상 서로가 옳다고 생각하며 서로의 의견을 들어주지 않았어. 자신의 주장만 펼치면서 말이야. 물론 자신만의 빛깔을 가진 남매들은 자신의 일을 척척 잘 해 내었지. 하지만 함께 힘을 합해서 이루어야 하는 일은 잘 안되었지. 각자의 개성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지.”
신 나게 이야기하는 도중에 첫째가 불쑥 끼어들었다. 나는 녀석의 말을 가만히 들었다.
“아버지, 자기가 맡은 일을 잘 해내면 좋은 것 아닌가요? 아버지도 항상 저희더러 우리 일이나 잘하라고 하시잖아요.” 큰 놈의 말에 아무런 대꾸를 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내가 그렇게 아이들에게 너만의 개성, 너만의 색깔을 찾으라고 무의식중으로 주입하고 있는 중이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래야 된다고 생각했다. 녀석들에게 뭔가 교훈을 주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하늘에 사는 일곱 남매는 말이야. 첫째, 빨강은 강한 정신력과 도전정신이 있지만, 급한 성미와 고집도 강했지. 둘째 주황은 정이 많고, 사교적이며 통찰력도 있지만, 사람들에게 상처를 잘 받기도 했어. 셋째 노랑은 낙천적이고 판단력도 좋지만, 경쟁의식이 남달리 강했어. 다섯째, 파랑은…….”
이때 둘째 녀석이 톡 말을 내뱉었다.
“아빠, 나는 빨간색이랑 파랑이 좋아요. 아빠는 무슨 색이 제일 좋아요?” 나는 계속 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도 빨간색.”하고 짧게 말을 끊었다.
“그럼 제가 좋아하는 색을 섞으면 무슨 색이 되요?”
“그건 잘 모르겠는데. 서로 다른 색을 섞으면 다양한 색이 나오겠지. 이야기 더 들어봐. 알았지?” 아이의 질문을 살짝 회피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래, 다섯째 파랑은 선하고 순수한 양심을 가졌지만, 혼자 있으면 많이 외로워했어. 여섯째 진파랑은 감각적이며 통찰력도 있어. 하지만 남을 통제하려고 하였지. 막내 보라는 긍정적이며 봉사정신이 강했지만, 정신적인 면만 중요시 해 정신적 고뇌에 빠지곤 했어. 무지개 남매들은 두 명씩, 세 명씩, 끼리끼리는 잘 지내기도 했어. 하지만 전체 형제가 마음을 모으는 것은 참으로 어려웠지. 이렇게 서로가 자신이 옳고 좋다고 우기니 어떻게 화합을 했겠어? 초록은 개성이 강한 다른 형제들이 부러웠어. 하지만 서로를 잘 다독여주고, 지친 마음을 안아주었단다.”
“맞아요. 서로 자기가 잘났다고 우기면 안되죠? 근데 형은 맨날 자기만 옳다고 나를 혼내요.” 배 위에 올라 탄 작은 놈이 또다시 말을 끊었다.
“그래 맞아. 정훈아. 아버지 이야기 다 듣고 말하면 안될까?" 나는 아이들의 마음보다는 내 말을 끝까지 들어야한다는 고집을 피우고 있었다.
“아버지, 그런데 모두가 잘하는 거랑 잘 못하는 게 다 있죠? 우리처럼. 달리기를 잘하는 아이, 피아노를 잘 치는 아이처럼 말이죠.” 큰 아들의 말에 학생들에게 공부 잘 하고, 시험 잘 치라고 항상 강조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랬다. 언제나 우리 사회는 모두가 천편일률적으로 한 곳으로 모든 것을 몰아가고 있었다. 나는 이야기를 이었다.
“한편, 지구에서도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자신이 잘 낫다며, 싸우는 일이 끊임없이 벌어졌어. 하늘나라 임금님은 좋은 생각이 났어. 먼저, 지구의 사람들을 혼내주기 위해 큰 비를 내렸지. 그 비는 아주 오래 내렸어. 지구에는 홍수가 나고, 많은 사람들이 살기 힘들어져 절망에 빠져 있었지. 그러니 서로 싸우는 일이 더 많아진 거야. 그때, 임금님은 일곱 남매에게 임무를 주었어. 바로 지구 사람들에게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과 희망을 전해주는 것이었지. 하늘에는 비가 그치자 사람들은 서로 자기들의 기도 때문이라고 우기기 시작했지. 그리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서 싸우기도 했어. 일곱 남매는 하늘에서 가만히 내려다보며 고민을 했어. 어떻게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까? 그나마 서로 잘 지내던 빨강, 주황, 노랑이 지구로 내려왔어. 자신들의 특기를 살려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했지만, 뭔가가 부족했지.”
“피, 힘든 일은 서로 힘을 합치면 되는데, 하늘나라 사람들은 잘 모르나 보다. 우리도 힘든 일은 같이 하면 잘 되는데.” 작은 놈이 또 끼어들었다. 아니, 녀석은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다음엔 파랑, 진파랑, 보라가 자신만의 빛깔로 다리를 만들어 내려왔어. 역시나 희망을 주는 것은 자신들의 뜻대로 되지 않았지. 그 다음엔 빨강, 주황, 파랑, 보라가 내려왔어. 역시나 결과는 꼭 같았지. 항상 중립을 지키던 초록은 어느 형제나 자매들 틈에도 낄 수가 없었어. 그 다음엔 초록을 뺀 나머지 형제가 다 내려왔어. 뭔가 일이 잘 풀리려고 했으나 역시 사람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서 서로 우겼어.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각자의 뛰어난 개성이 필요한 게 아니라 서로 화합하는 환한 희망의 빛이었어. 하지만 여섯 남매는 아무리 조합을 해도 환한 빛을 만들지 못했어. 그때 생각났어. 바로 늘 중립을 지키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초록이 말이야. 남매들은 하늘로 올라가 초록에게 함께 지구로 가자고 했어. 그렇게 무지개 남매는 하늘나라에서 지구로 내려왔어. 각자 색깔을 가진 다리를 타고 말이야.”
“우와, 무지개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면 정말 재미있겠다.” 큰 녀석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래, 엄청 재미있겠지. 하지만 무지개 끝에는 무엇이 있는 줄 아니?” 나는 아이들에게 질문을 살짝 던졌다.
“그야. 무지개가 닿는 땅이 있죠.” 역시 초등학생다웠다.
“아냐, 무지개 끝에는 아무것도 없어.” 작은 녀석의 말에 뜨끔했다. 무지개 끝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 너무도 자명했다고 생각했다.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잠시 머뭇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둘째 녀석이 웃으면서 말했다.
“아빠, 무지개 끝에는 환하게 빛이 나요. 색깔이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환해요. 아까 봤어요.” 맞았다. 무지개 끝에는 아무것도 없다. 무지개 끝에는 더 이상 빛이 나뉘지 않는 환한 태양빛, 바로 희망의 빛이 있을 뿐이었다. 미술 시간에 배웠던 내용이 생각났다. 모든 빛을 합하면 밝은 빛이 난다는 사실이. 나는 급하게 이야기를 마무리 했다.
“하늘에서 무지개다리가 생기자 사람들은 모두 하늘을 바라보았지. 빛나는 태양 저 건너편에 일곱 빛깔 무지개, 그리고 그 무지개 끝에 환희 빛나는 희망의 빛을 보게 된 거야. 결국 무지개 남매들과 지구 사람들은 깨닫게 된 거야. 나 자신이 옳다고, 나 자신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모두가 한데 어우러지고 모여야만 환한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부터 사람들은 무지개 그 끝에는 희망의 낙원이 있다고 믿게 된 거야.” 큰 놈은 가만히 있었지만, 작은 놈은 내 배를 누르고 앉아 또 한마디 날렸다.
“맞죠? 제 말이.” 어쩌면 아이들은 더 큰 세상의 이치를 잊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