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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글손 May 26. 2022

도서관 런웨이 - 윤고은 작가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이렇게 한다 


 마음도 보험이 될까요


  보험은 우리 삶의 불안을 잠재울까. 2014년, 학원을 운영하다 뜻한 바 있어 작은도서관을 열었다. 정말 작은 작은도서관, 시설은 후졌지만, 홀로 운영하면서 온갖 상상을 펼치곤 했다. 책을 보거나 읽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훔쳐 들을 수 있다면, 책 속의 주인공이 밤마다 살아나 서로의 삶을 공유한다면 어떨까 하는 그런 망상을 했다. 망상은 현실이 되기도 하는 법. 책 속의 주인공을 다시 주인공으로 삼아 서로가 자신이 살던 공간과 시간을 서로에게 설파하며 얼마나 나의 삶이 의미있고, 가치있는지 자랑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사람이 거의 찾지 않는 작은도서관에 앉아 시간을 죽이며 이런저런 상상으로 끊임없이 사람들이 찾아오는 그런 공간과 함께 하는 시간을 바랐다. 결코 쉽지 않았다. 바람은 바람으로 그치고 말았으니 말이다. 인근 지역에 두 학교를 통합하면서 거대한 도서관이 생기면서 의욕마저 잃어버렸다. 교육청에서 엄청나게 크고 화려한 도서관을 마련하면서 동네의 작은 도서관은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 2019년 <작은도서관 다미>는 기억 너머로 사라졌다. 여전히 내가 도서관을 하면 잘 될 것이라는 그 근거 없는 욕망은 살아있지만 말이다. 그때 도서관 문을 닫으면서 보험이라도 들 수 있었다면 개인적인 경제상황은 좀 나아졌을까? 아니면 코로나로 지원된 다양한 지원금이라도 좀 받을 수 있었을까?     

   『도서관 런웨이』가 내 눈길을 끌고 마음을 당긴 건 당연한 일이었다. 유명 패션쇼의 런웨이를 모델들이 당당하게 걷듯, 도서관의 런웨이를 구석구석을 걸으며, 각종 SNS에 나름 책 좀 읽는 사람이라 자랑을 하는 이들의 모습이 절로 궁금했다. 책을 집어 들었다. 낮익은 목소리가 귓전을 맴돌다 간다. 채널 고정된 차 안의 라디오에는 『윤고은의 ***북카페』 가 흘러나온다. 잔잔한 목소리가 매력적이기도 하지만, 젊은 작가들의 생동감 있는 철학적 이야기가 일상으로 쉽게 다가오니, 라디오를 듣는 내내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머릿속에는 작은 폭풍우가 몰아쳐 지나가기도 한다. 나의 경험과 익숙한 목소리 덕에 『도서관 런웨이』에 손이 가는 건 당연한 했다. 하지만 책을 펼치며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가 내 상상을 벗어나고 있었다. 도서관은 이야기가 시작되는 공간에 불과했다. 도서관에서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한 여성. 마치 도서관은 모델을 빛내는 화려한 공간으로 탈바꿈되었다. 늘상 도서관은 책이 주인공이고 사람이 객이 되는 공간이란 착각을 뒤집었다. 도서관은 사람이 주인공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충족시키는 책은 삶의 작은 소품에 불과하다. 하지만 반대로 책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엄청난 내공을 숨긴 한 사람의 인생을 담고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결혼안심보험 약관>. 사람 사이의 관계의 불안을 담보로 잡은 보험약관이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다는 엉뚱 발랄한 상상이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더군다나 한정판이라고 하니 이마저도 습자지 같은 인간의 마음을 여실히 드러내었다.


  내 삶도 불안했고, 여전히 불안하고, 앞으로도 불안할 것이다. 노모의 막내, 한 여자의 남편,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또 다른 가족 구성원으로 살아가면서 부닥치는 수많은 사연들을 어찌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다고 할까. 그렇기에 어쩌면 인생의 불안을 얼마간이라도 잠재울 수 있는 보험에 목을 매는 건지도 모른다. 결혼안심보험의 독특함은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이후 펼쳐질 수많은 변수들을 약관이라는 작은 글씨로 담보하고 있다. 잘 보이지 않기에 모든 것이 다 담겨져 있을 것이란 착각 속에 보험이라는 불완전한 든든함을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보험이 모든 것을 보장해 줄 것이란 헛된 믿음과 함께 말이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지 않으려 하는 이유가 단순한 경제적 문제이거나, 결혼을 한 이들도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하는 이유가 단순한 양육의 문제가 아닌, 인간 관계망을 단순화하려는 의도를 숨긴 현대인의 특징일지도 모른다. SNS 상에서 화려하고 행복한 자신의 삶을 뽐내고, 또는 화려하고 행복해하는 이들의 모습을 훔쳐보면서 만족감을 찾는 현대인의 특징을 보험이라는 자본주의 산물로 보상하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깨알 같은 글씨로 숨겨진 보험 약관의 비밀은 언제나 보상을 하지 않으려는 자본주의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보험이 우리의 불안을 잠재우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된다. 사람 사이의 따뜻한 믿음과 보살핌으로 불안이 잠식된다는 단순한 삶의 이치를 터득한다. 하지만, 미래란 불안이 아니라 불확실의 세계이다. 불확실은 불안과 걱정이 아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그 상황이 좋고 나쁨의 판단이 아니다. 상황의 대처 방식이자 우리 삶의 방식이다. 친구와 연인과 부부와 가족과 지역공동체가 살아가는 끊임없이 마주하는 문제 해결의 방식이다.      

  도서관 여행을 떠나는 한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되어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의 태도를 잘 드러낸 글에서 삶의 의미를 되새김질 해본다. 평소 즐겨 듣는 EBS 라디오의 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작가가 자신의 목소리로 소설을 읽어주는 듯 빠르게 읽어나갔다. 평소 듣는 목소리다보니 내가 윤고은 작가를 잘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넌 00을 아니?”, “그럼, 잘 알지.” 하지만 정작 ‘나’조차도 잘 모르는 우리가 누군가를 안다고 생각하는 착각이 서로의 사이를 비트는 건 아닐까. 사랑해서 만나지만 살다보면 정으로 산다는 옛말이 있듯, 결혼이란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살아야하는 의무로 생각하던 구닥다리 세대인 내게도 결혼안심보험이라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현실의 문제를 가볍지만 묵직하게 풀어낸 글을 대한민국 소설독서대전이라는 핑계로 읽을 수 있어 좋은 기회가 되었다. 아내와 함께 결혼식장의 런웨이를 걸었던 기억이 스쳤다. 나와 아내의 삶은 순탄치는 않았지만, 평범함에 속에서도 남들과는 다른 수많은 위기와 수많은 행복의 순간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아내에게 우리끼리의 결혼안심보험을 하나 만들어서 두 아들이 결혼할 때 전해주면 어떻겠냐는 농담반 진담반의 제안으로 우리의 삶이 아닌, 자식의 삶을 걱정하는 부모라는 존재에 대한 고민을 하기도 했다. 우리 부모들이 그러했듯, 지금 부모인 우리도 그러하단 것을 보면 생명을 가진 존재는 유전자를 전하는 것이 최초 최고의 본능이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생명의 본능조차 이겨야하는 아픈 현실에 있는 것 같다.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는 ‘돈’이라는 아주 유명한 존재로 인해 삶의 일부를 포기하거나, 생명의 본능을 참아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에게 온전한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 얼마나 될까. 내가 나를 꾸며내는 주인공처럼의 모습이 아닌, 모두가 나만을 바라봐주는 주인공다운 모습이 얼마나 될까. 살짝 돌아보니 엄마 뱃속에서 세상으로 나왔을 때는 온전히 내가 주인공이었다. 결혼식장 런웨이를 걸을 때 오롯이 나만이 삶의 주인공이었다. 살짝 앞을 내다보니 장례식장의 런웨이에서 들려 나갈 때 오롯이 나만의 삶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내 삶의 멋진 런웨이가 오늘은 어디에서 펼쳐질지 꿈을 꾸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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