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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글손 Jul 26. 2022

장기와 바둑

일수불퇴

 장기와 바둑


말글손 장진석

한 수 물림의 여유와 배려가 있는 세상을 바라며

 

  장기가 재미있을까? 바둑이 재미있을까? 어렸을 때, 어른들이 나무를 잘라 알 수 없는 한자를 새겨 장기를 두면서 옥신각신했다.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한 장기알이 무척 좋았다. 장군부터 졸병까지 제각각의 크기로 다듬어진 장기알은 나름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초나라와 한나라의 두 장수가 싸우는 이야기 속에서 장군과 장군을 지키는 선비, 공격을 위한 차, 포, 마, 상과 졸의 길을 외우는 일도 예삿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한번 외워둔 길을 잘 활용하면 졸도 장을 잡을 수 있다. 졸이 치고 올라가 ‘장군’을 부를 때의 희열을 느껴본 이들은 알 것이다. 장기판의 매력은 약한 자도 강한 자를 먹을 수 있다는 묘한 쾌감과 밀리고 있더라도 장군만 잡으면 승리한다는 역전의 짜릿함에 있다. 장기가 지겨우면 알까기로 소일을 하기도 했다.

  두꺼운 장기판을 뒤집으면 수많은 정사각형의 모둠인 바둑판이 펼쳐졌다. 가로세로 19줄이 만나는 361개 교차점은 하나의 집이 된다. 어른들은 검지와 중지에 흑돌과 백돌을 희한하게 끼웠다. 상대의 수를 읽으며 '아다리(단수)'를 외치며 돌을 놓았다. 단수를 치면 여지없이 상대의 바둑돌을 들어내었다. 상대의 알이 떨어져 나갈수록 빈집은 늘어났다. 공간이 허전하게 보이지만 그곳은 이미 상대방의 땅이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상대의 바둑돌을 많이 따면 이기는 놀이인 줄 알았다. 따먹은 바둑돌의 개수가 아니라, 확보한 집(공간)을 센다는 사실을 알고 난 이후에는 바둑이 어려워졌다. 아니 복잡한 계산과 경우의 수에 머리가 질끈 했을지도 모르겠다. 추상적인 건 어려웠다. 바둑이 어려워지면 바둑돌로 오목을 두면서 소일을 하기도 했다.

  바둑보다는 확실히 장기를 많이 둔 듯하다. 추상적인 전략보다는 명확한 목표물을 노리는 놀이가 더 편했는지 모르겠다. 요즘은 바둑도 장기도 인기가 시들해졌지만, 온라인에서 장기와 바둑을 즐기는 이들이 꽤 많다. 무엇이 이들을 이끌까? 무엇이 우리 세상과 닮았을까? 장기는 각각의 계급과 역할이 있다. 또한 알마다 크기도 다르고 제 갈 길도 정해져 있다. 반면 바둑은 똑같은 크기의 돌 하나에 서열이 따로 없다. 장기는 제 목표 지점에 있는 적을 잡을 수 있지만, 가는 길목이 막히면 갈 수도 없다. 바둑은 어디에 두든 자리가 정해져 있지 않다. 장기는 장군만 잡으면 이기지만, 바둑은 얼마의 집을 확보했는가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 장기에서 수장인 장군은 공격도 못하고 좁은 칸 안에서 피하기만 하지만, 바둑은 모두가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 이어가면서 상대의 움직임을 막아 영토를 늘린다.

  우리는 침략과 전쟁, 농경과 산업사회, 정보와 자본주의의 역사를 살아간다. 그 과정에 자연스레 계급과 계층과 서열이 정해진다. 저마다 타고난 길과 역할이 정해진 장기판이 이 세상과 닮았나 싶다가도, 정해진 공간에서 조금 더 넓은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온갖 전략으로 전쟁도 불사하는 세상이 바둑판과 닮았다 싶기도 하다. 졸이 장군도 잡을 수 있는 장기판이 세상과 닮았다 싶다가도, 평등하게 한 번의 기회를 잘 살리면 대마도 살려내는 바둑판이 세상과 닮았다 싶기도 하다. 일수불퇴, 낙장불입. 장기판이든, 바둑판이든 우리 세상은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의 기쁨을 찾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래도 우리 사람 사는 세상은 한 수 물릴 수 있는 여유와 배려가 있으면 어떨까.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80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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