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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글손 Aug 06. 2023

흰머리 소녀

그녀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처음 세상에 왔을 때는 보송보송 솜털이 사랑스러웠다

실바람에도 한들거리는 솜털의 춤사위는 따뜻했다

엄마의 따뜻한 유방을 제 아무리 물어도 보드라웠다


돌담은 까치발을 들어도 한참이나 한참이나 높았다

아빠 어깨에 무등을 타고서야 담 너머 세상을 보았다

햇살이 돌담 사이를 스치듯 뚫고 나오면


가방을 메어본 적은 없지만 콩밭 고랑은 운동장이었다

모내기긴 끝난 논을 바라보며 직선의 의미를 깨달았다

논두렁을 따라 걷다보면 곡선의 미학이 마음에 남았다


길쌈을 하면서 돌린 물레는 무한한 시간을 뜻을 남겼다

다듬이 방망이질은 소리의 단아함을 세상에 퍼뜨렸다

초롱불 아래 바느질은 자연의 이치를 손끝에 전했다


그렇게 세상은 나와 나의 작은 세상을 만들어 갔다

건너 마을 낯선 사내와의 첫날밤은 설렘과 두려움이었다

생명이 다시 찾아왔던 그 순간은 미지의 사랑을 씨뿌렸다


솜털은 거칠어졌고 입은 악다구니로 손발은 굵어졌다

한 순간도 아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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