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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글손 Jul 24. 2023

아기 길고양이와 아기동박새

길고양이와 아기 동박새

야생동물보다 존중받지 못하는 도시의 생명

생명의 존귀함을 알아야 빛나는 사람의 존재 가치

 

  너무도 처참한 아기 길고양이를 만났다. 비가 억수같이 내린 7월의 어느 토요일. 마을일 관계로 회의를 마치고 털래털래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길가에 늘어선 자동차 사이에 너무도 처참한 모습의 고양이. 네 발은 흙투성이에 앉아 있는 모습조차 쓰러질 듯, 황갈색 털은 푹 젖어 늘어지고, 털 아래로 다 드러나는 앙상한 뼈, 꼬리는 말라비틀어졌고, 두 눈은 차라지 마주치지 말았으면 할 정도로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길고양이라 하지만 보기조차 힘든 처참한 모습에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바라보았다. 유기동물보호소에 전화를 하니 주말이라 근무가 아닌 듯했다. 너무도 많은 길고양이의 그러한 모습을 생각하니 도대체 어디서부터가 잘못 끼워진 단추일까 생각이 들었다. 길 가던 한 분도 어찌 방법을 찾아보라 하는데, 어찌할 바를 모르긴 다름없었다. 죄책감만 안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라 하기에 너무도 무책임한 그런 나의 모습이었다.

  나름의 뜻이 있어 사설 공공 작은도서관을 운영한 적이 있었다. 당시 도서관 옆 도로를 걷다 가로수(은행나무)에서 힘 없이 툭 떨어진 아기새를 만났다. 날개짓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힘없는 모습에 이래저래 알아보니 야생동물보호단체가 있었다. 전화를 하니 데리러 온다고 했다. 기다리는 동안, 손 안의 열기에 행여나 싶어 도서관으로 데리고 갔다. 책 위에 올려두니 두 눈을 감고 힘없이 도움만 기다렸다. 도서관에 온 아이들은 귀엽다고 난리였다. 눈길도 떼지 않았다. 똥도 쌌다. 아무도 더럽다고 생각지 않았다. 모두가 귀여운 아기새가 다시 힘을 내기를 바랐다. 그때만 해도 새의 이름을 몰랐다. 야생동물보호단체에서 연락이 와 새를 전달했다. 동박새. 아마 둥지에서 떨어졌을 것이라며, 잘 돌봐주겠다며 떠났다. 나 역시 아기 동박새가 힘을 내어 힘차게 날개짓 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인간의 품을 떠난 고양이는 길고양이가 되고, 인간의 품을 벗어난 개는 유기견이 되기도 한다. 각기 불리는 이름은 다르지만, 생명의 가치가 달라지는 현실. 개도 고양이도 야생에서 살아오다 인간의 품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말이다. 이제는 반려견으로, 반려묘로, 반려동물로 인간의 삶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동물. 아니 가족으로 여겨지는 동시에 가족에게 버려지는 생명. 인간의 품에서 온갖 사랑을 받다가 처참히 버려지는 생명이 얼마나 많은지. 이 모든 생명을 다 돌볼 수 있는 사회 여건이 마련되지 못하는 상황. 차라리 야생동물이라야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동물들의 삶이 역설로 다가온다. 도로 곳곳에, 숲 곳곳에 설치된 ‘야생동물보호’ 안내판이 눈길을 잡는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고 자신들만의 삶을 살아가는 동물의 권리를 지켜주는 사람들의 배려. 하지만 정작 도시의 현실은 이와 다르니 말이다. 인간의 욕심이 낳은 결말이라 치부할 수 없을 것이다.   

  ‘생존의 법칙’에 따라 살기 위해 생명을 취하는 행위를 누가 나무랄 것인가. 육식이든, 채식이든 모든 생명은 살아가기 위해 다른 생명을 취한다. 하지만 모든 생명은 존귀하다. 그렇기에 어떠한 연유로든 생명을 살핀다는 일 자체에는 엄청난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반려라는 미명하에 생명에 대한 경외심 없다면, 그저 순간의 만족만을 추구한다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위치조차 위태로울 것이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아기 고양이가 자꾸 떠오른다.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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