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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글손 Jun 03. 2024

얼마나 빨리?

경남도민일보 아침을 열며 칼럼

얼마나 빨리?     

허술한 법이 청소년의 생명에 위협

경제 논리를 넘어선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회 


바쁘다. 빨리 하자. 빨리 가자. 빨리빨리. 아이들이 어릴 때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주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후회한다. 뭐가 그리 바빴을까? 옷을 갈아입힐 때도 바쁘다며 기다려주지 못했고, 신발을 신을 때도 바쁘다며 신발을 내밀었다. 눈코 뜰 새 없이 지나가는 시간을 보면서 왜 이리 바쁘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여유 있게 살거라며 TV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의 애청자를 자처하면서도, “나도 반드시 자연으로 돌아간다”를 공언하면서도, 지금도 서둘러야 한다고 채근하는 나를 본다. 세상 탓이라 여기고 만다.

  얼마나 바쁘게 살아야 할까?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PM이라 불리는 개인형 이동장치(전동킥보드)를 타다가 교통사고가 났다. 5월 16일, 창원에서 고등학생 2명이 함께 전동킥보드를 타다 차량과 부딪혀 1명이 숨졌다. 소식을 듣자마자 화가 치밀었다. 이건 엄연한 국가의 책임이다. 도로교통법에는 전동킥보드 등은 2종 원동기 장치 면허 포함한 운전면허증이 없으면 이용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다. 또한 안전 장비를 착용해야 하고, 2인이 탈 수도 없다. 

  그러나 공유형 PM은 면허가 있건 없건, 누구라도 돈만 결제하면 대여할 수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실제 청소년이 전동킥보드를 가장 많이 타고 있다. 안전 장비는 고사하고, 2~3명이 함께 타고, 중앙선을 넘나들며 곡예 운전을 하기도 한다. 사고가 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이다. 하지만 제약을 가하는 사람은 없다. “얘들아. 조심해라”하는 공허한 외침만이 지나간 아이들의 뒷모습에 스치고 만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시해야 한다. 경제 논리나 기업 이익에 국민의 안전이 밀려서도 안 된다. 출생률이 낮아 국가가 존폐조차 위기에 있다며 난리를 치면서 말이다. 더욱이 미래를 만들어갈 소중한 청소년들이 법의 허술함에 생명을 잃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PM은 복잡한 도시의 도로를 피해 조금은 빨리 목적지로 가기 위한 편리한 이동 수단으로 여겨졌다. ‘빨리빨리’에 익숙한 한국 문화에 걸맞은 이동장치였다. 청소년의 이동이 많은 거리 곳곳에는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듯 예쁘게 줄지어 선 전동킥보드를 쉽게 볼 수 있다. 대학교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학생이라도 모두 면허가 있는 것도 아니다. 걸어가거나 차를 타기에도 애매한 거리, 주차 등 여러 이유로도 전동킥보드가 인기다. 하지만 공유형 PM은 초창기부터 사회문제였다고 생각한다. 아무렇게나 목적지 인근에서 버려지듯 세워져 보행자의 안전을 위협하기도 했다. 본래 목적을 넘어 하나의 놀이 수단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대학생과 고등학생인 두 아들도 전동킥보드를 종종 탔었다. 타지 말라고 해도 아버지의 잔소리로 치부되고 말았다. 약속 시간 때문에, 재미가 있어서 탄다는 말에 기운이 빠졌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냈으면서, 이제부터 즐거운 인생을 살아야 할 너희들이 잠시의 편리함과 잠시의 빠름을 위해 생명을 담보로 할 필요는 없지 않냐?”, “면허가 없으면 불법이고, 사고가 나든 사고를 내든 책임을 질 수 있는 보험도 없다.”, “무엇보다 잠시의 빠름과 편리함이 너희들의 생명을 대신할 수 없다.” 하고 나면 잔소리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잔소리를 늘어놓을 뿐이다.

  바쁘지 않다면, 그렇게 빨리하지 않아도 된다면, 조금만 일찍 준비해서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누릴 수 있다면, 국가가 조금 더 촘촘한 규정을 정했다면 안타까운 죽음이 있었을까. 복잡한 도시를 사방으로 가로지르며 빠르게 살아가야 하는 요즘을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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