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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글손 Sep 09. 2024

하루를 정리하며 방 안에 앉아서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른다고 하는 사람도 많지만 하루를 정리하면서 돌아보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어서 이틀째 이렇게 자리에 앉았는데 며칠이나 버티려나 자신은 없다

고등학교 1학년이자 자유로움에 애를 먹이는 아들과 함께 길을 나섰다 아들은 학교로 갔다

창원의 모 초등학교에 표준화심리검사지를 배달을 갔다 창원대로에 벚나무 잎이 지고 있었다 낙엽이다

가을이다 벌써 더위가 갔나 싶었다 그렇다고 덮지 않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배달 후에는 아는 형님 사무실에 들렀다

문은 활짝 열어놓고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조금은 허전한 마음에 차를 돌렸다

친구 사무실에 가보려다 이런저런 시간을 낭비해서 되겠나 싶어서 급히 다음 약속으로 이동했다

가을에 출간될 책도 계약하고 몇몇 우편물을 보내려고 서둘렀다 서두르긴 했는데 서두를 필요가 없어졌다

구청장이 동마산시장에 온다고 했는데 일정이 변경되어 오지 않는단다 출판사에서 수다를 조금 떨었다

다시 차를 돌려 동네로 왔다 동네에 오니 동네 형님들이 모여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나도 동참했다

수다가 주는 재미는 꽤나 흥미롭지만 가끔은 수다로 보내는 시간이 아깝기도 했다 밀린 일이 걱정이었다

오후 강의가 있어 상인회장 형님과 점심을 급히 먹었다 속이 좋지 않아 순두부를 시키고는 물에 밥을 말았다

대충 한 끼 떼우고 나서 인근 교도소에 인성교육을 갔다 재소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두 시간을 보냈다

한 달에 한 번 재소자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나의 삶을 다시 돌아본다 잘잘못의 기준과 사람에 대한 평가 고민이다 물론 나의 권리와 책임은 언제나 너의 책임과 권리와 동시에 간다는 사실만 기억하면 되겠다

우리는 적절한 거리가 필요하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적절한 거리가 중요하다 나와의 적절한 거리가 제일 중요하다

밀린 서류와 글 정리와 제안서와 수많은 카톡과 전화로 하루를 잘 다지고 나니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대구찜으로 저녁을 먹고 다시 전통시장 지원을 위해 제안서를 적고 형님들 표창 추천 공적서를 적고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활동 원고를 정리하다 머리가 아파 잠시 쉬었다

고1 아들은 또 신경을 쓰이게 한다 그렇게 커나 싶다가도 나는 더 그랬나 싶다가도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다 아버지 마음이겠지 내 아버지도 내 어머니도 그랬을 것이고 내 형님도 누나도 그랬을 것이다 나에게 바라는 것이

아들이 올 때쯤 냉장고를 뒤졌다 라면에 넣어 먹을 목이버섯을 꺼내려다 오래전 사다둔 비름나물과 깨순과 방아잎과 파를 꺼내들면서 또 혼자 궁시렁 거렸다 궁시렁 궁시렁 냉장고 관리는 누구의 몫일까 

아들과 완전한 채소 라면 한 그릇 후루룩 하고 '나는 자연인이다' 보다가 아이쿠. 오늘 오후에 자동차 블랙박스를 꺼둔게 생각나서 다시 켜고 와서 다시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는데 어머님이 일기를 쓰셨다

나도 일기를 쓰야지. 겨우 어제 하루 썼는데.

참고로 이건 내가 쓰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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