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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글손 Feb 28. 2022

사라진 동전

경남아동문학회 연간집

사라진 동전

            장진석     

  도대체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나의 재산목록 1호인 저금통이 텅 비고 말았다. 아무리 저금통을 살펴보아도 어디에도 뜯겨진 흔적은 없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초등학교 입학 기념으로 아빠가 사준 열쇠 모양의 저금통이었다. 일 년 365일이 네 번 지나고도 열흘이나 지났다. 동전이 생길 때마다 꼬박꼬박 넣어두던 저금통이었다. 언제 다 채울 수 있을지도 몰랐다. 저금통이 너무 커다면서 울었던 기억도 되살아났다. 아버지는 저금통이 크면 클수록 내 꿈도 크게 이룰 수 있을 거라고 했다. 2학년이 되면서 저 큼직한 열쇠가 가득 차면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다고 믿었다. 저 저금통만 가득차면 백만 원도 넘을 거라며 혼자 배시시 웃곤 했다. 그런데 그 저금통이 사라지고 말았다.

아침부터 난리를 쳤다. 학교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자고 있는 아버지를 흔들어 깨웠다. 아버지는 비몽사몽간에 놀라면서도 그대로 몸을 돌리고 말았다. 

“엄마한테 얘기해라. 아버지 어제 밤 샜다.”

“아빠. 내 저금통 못 봤어? 어디 치웠어?”

“원래 있던 데 있겠지.”

“아빠. 없단 말이야.”

“모르겠다. 일단 밥은 대충 차려놨으니, 먹고 학교 가라.”     

  아버진 아무런 반응도 없이 시큰둥 중얼거리곤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엄마는 일찍 출근을 한 모양이다. 형도 벌써 학교에 가고 없었다. 짜증이 났다. 아니 화가 났다. 밤새 집에 도둑이 든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가 밤을 샜다고 했다. 그러니까 집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만약 누군가 들어왔다면 난리가 났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도대체가 어디로 사라진 걸까? 

‘혹시 엄마가?’  

불안한 마음에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고양이 세수를 하고, 바지를 입었다. 

‘어? 어제 틀림없이 주머니에 넣어뒀는데?

어제 친구들과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사고 남은 돈 이천칠백 원을 바지에 넣어뒀다. 두 장의 천 원짜리와 오백 원 동전 하나와 백 원 동전 두개. 천 원짜리는 그대로인데 동전만 사라지고 말았다. 바지에 구멍이 난 건 아닌 지 아무리 손을 넣어 확인을 해도 바지는 멀쩡했다. 

‘어디에 흘렸나?’

하지만 어제는 친구들과 놀지도 않았고, 뛰어나지도 않았다. 친구들과 음료수를 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걸어왔다. 그런데 도대체가 내 돈이 어디로 갔는지 아리송했다.

“어이, 정훈아. 어제 내가 돈 흘리는 거 봤나?”

학교 가는 길에 만난 준혁이가 내게 뜬금없이 물었다. 

“무슨 돈?”

“어제 편의점에서 음료수 마시고 남은 돈. 주머니에 넣어 뒀는데 없어졌어.”

“어? 너도 그래? 나도. 나도 어제 이천 칠백 원 남았는데, 동전만 없더라고.”

“너도? 동전만 없지? 이상하네. 어디 흘렸나?”

우리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학교로 갔다. 교실은 시끌벅적했다. 모두 자기가 갖고 있던 동전이 다 사라졌다고 난리법석이었다. 그때, 폰을 보던 건우가 소리쳤다.

“애들아. 지금 전국에서 갑자기 모든 동전이 사라졌다고 난리야. 난리.”

“그게 무슨 소리야? 동전이 사라지다니?”

“몰라. 전국에 동전이 다 사라지고 말았데.”

아이들은 우르르 건우에게 몰려들었다. 저마다 소리치며 작은 폰 화면에 눈을 고정시켰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전국에 동전이 다 사라지다니.’     

  그때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선생님은 모두를 자리에 앉히고 조용히 텔레비전을 켰다. 

“지금 전국이 대혼란에 빠졌습니다. 전국의 동전이 모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동전은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요. 왜 한국의 동전만 모두 사라지고 말았을까요?  지금 각 가정이나 개인이 보관하던 동전뿐만 아니라 시중에 유통되던 모든 동전이 사라졌습니다. 도대체 그 많은 동전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지금부터 시민들의 이야기를…….”

아나운서도 놀란 토끼 눈으로 뉴스를 진행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어떻게 일어나지? 그렇다면 전국의 동전이 다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아마도 우주인이 모든 동전을 순간이동 같은 방식으로 가지고 갔을 지도 몰라. 무기를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니까.”

“야, 무슨 엉뚱한 소리냐? 그럼 어떻게 동전을 가져갔는데?”

뜬금없는 내 말에 지훈이는 금세 윽박을 지른다.

“정훈이 말이 맞는지도 모르지. 순간이동 같은 거. 우주인들은 그런 게 가능하지 않을까?”

서희가 한 마디 거들자 나는 괜히 어깨가 올라갔다. 다들 서희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동전은 품질이 좋다고 들었다. 아마 그 품질 좋은 동전이 지구를 침공하기 위해 무기를 만들려면 꼭 필요한 금속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수업시간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하룻밤 사이에 우리나라의 모든 동전이 사라지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날 수는 없으니까. 혼자서 이런저런 망상에 사로잡혀 하루 종일 학교일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4년 넘게 열심히 모아온 내 동전이 다 사라지고 말았다. 내 미래를 열어 줄 열쇠가 될 그 동전들. 친구들도 하루 종일 동전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다. 사라진 동전이 어디로 갔는지에 대한 무성한 추측만 내놓았다.      

  집에 돌아오니 온 가족이 텔레비전을 보면서 사라진 동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얼마가 없어졌는지 서로 왈가왈부했다. 내 저금통의 동전이 제일 많았다는 사실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결국 사람은 제 것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나의 사라진 꿈, 나의 미래를 열어줄 종자돈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텔레비전에서는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나와  난상토론을 하고 있었다. 

“혹시 우리나라 동전에는 말 못할 비밀이 있는 건 아닐까요?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동전 속에 희귀금속이 포함됐을 수도 있습니다. 다른 나라의 동전은 그대로인데, 한국의 동전만 사라진 이유는 아마 동전 속의 희귀금속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니죠. 그렇다고 해서 어떻게 전국의 모든 동전이 하룻밤 사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단 말입니까? 이건 우리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일일지도 모릅니다.”

아나운서가 마이크를 넘기자 머리가 많이 벗겨진 아저씨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답도 없는 이야기에 서로 자기가 옳다고 우기는 어른들을 보면 참 어이가 없었다. 그렇다고 사라진 동전에 대한 의문이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아마 내 말이 틀림없을지도 모른다. 우주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외계인이 우리나라의 좋은 동전을 가져갔을 것이다.

“전국의 동전이 어디론가 사라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전국의 동전이 사라지는 일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앞으로 더 치밀하게 조사를 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상으로……” 아나운서는 말이 끝나자 엄마가 한마디 거들었다. 

"동전이 사라졌으니 이제 어떻게 하지?"

"동전이 사라지면 어떻게 되는데요?"

정훈인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종자돈이 사라진 것에만 관심이 있던 정훈이는 사실 동전이 있고, 없고의 차이를 알 수는 없었다. 

"동전이 사라지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아버지는 인터넷을 뒤지면서 정훈이를 불렀다.

"여기 많은 정보가 인터넷에 있네. 한번 볼까?"

‘쳇, 동전이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게 아니고 내 동전이 사라진 게 중요한 거지.’

인터넷에는 여러 이야기가 나와 있었다. 정훈이는 심각하게 인터넷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동전이 사라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국은행이 '동전 없는 사회'를 추진한다. 동전은 사용하기도 불편하고, 사실 사용도 얼마 되지 않는다. 그리고 동전을 만드는 비용이 동전의 가치보다 더 비싸다. ICT(정보통신기술)로 신용카드도 스마트 폰 안으로 들어갔고, 모바일 결제시스템이 현금 결제를 대체하고 있다. 또한 가상화폐도 새로운 결재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한국은행에서도 '동전 없는 사회에 대한 가능성 연구'를 하고 있다. 앞으로 동전 사용은 줄어들 수밖에 없고, 결국 동전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동전 없는 사회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이락 한국은행 금융결제국장은 4일 "동전 없는 사회에 대한 가능성 연구를 올해 안에 끝낼 예정"이라며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면 내년부터라도 동전 사용을 줄이는 시스템 구축 작업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동전이 없어지면 어떤 사회가 펼쳐질까? 

  동전이 없다면 짤랑거리는 주머니는 없어질 것이다. '거스름돈'이 사라진다는 말이다. 만원을 내고 9천 3백 원짜리 물건을 샀다면 거스름돈이 없으니 그냥 만원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것이다. 물론 잔액을 모바일이나 계좌로 보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절차를 귀찮아하는 이들도 있게 마련이다. 자연스럽게 현금이라는 개념도 사라질 것이다. 한국은행은 '충전식 선불카드'를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동전이 사라지면 물가가 올라간다. 다양한 결재 수단이 증가하고 있지만, 많은 이들이 여전히 현금을 좋아한다. 현금이란 눈에 보이지만, 다른 결재 수단은 눈에 보이지 않는 숫자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지금도 눈에 모이는 현물을 좋아한다. 동전이 사라지면, 물건 가격을 지폐 수준에 맞추게 되고, 자연스럽게 물건의 가격이 오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오히려 물가 하락을 이끌 것이라고 한다. 백 단위를 없애면 생산자나 판매자가 물건의 가격을 내리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가격을 깎아주는 전통시장이나 예전의 거래 현장에서나 가능했지만, 이제는 정가대로 물건을 판매하는 현실에서 물가가 내리기는 힘들 것 같다.

일상의 작은 행복이 사라진다. 누구나 어린 시절의 추억인 돼지저금통을 기억할 것이다. 열심히 모아둔 돼지저금통을 깼지만, 그 동전들을 쓸 곳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추억이 사라진다. 그리고 작은 행복이 사라지게 된다. 그 외에도 분수대에 동전을 던지는 재미, 앞뒷면으로 순서를 정하는 동전 던지기나 동전 돌리기도 사라지게 된다.』           

“이런 이야기 말고도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을까?”

아버지의 질문에 정훈이는 눈만 끔벅거렸다.

“모르죠. 그런데 확실한 건 지금 우리나라의 동전이 다 사라졌다는 사실이고, 그 중에서도 내가 열심히 모은 동전이 없어져서 제 꿈도 사라졌단 거예요.”

정훈이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동전이 네 꿈은 아닐 거야. 하지만 돈이란 것이 네 꿈을 이루어 가는데 굉장히 중요한 도구가 된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지.”

아버지는 힘없이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갔어요." 

‘그런데 도대체 동전은 어디 갔지? 정말로 우주인이 순간이동 같은 능력을 이용해서 우리나라 동전을 다 가져가버린 건 아닐까? 지구를 공격하려고.’

“정말 이상한 일이지만, 이제 그만 자야겠다. 학교에 가려면.”

시간이 늦어지자, 엄마는 자라고 재촉입니다. 

“네. 그런데 잠이 올지 모르겠어요.”

방문을 열자, 책상 위에 놓여있던 열쇠저금통의 배가 다시 불러 있었습니다. 

“엥? 엄마. 아빠. 동전! 열쇠가 다시 가득 찼어.”

정훈이가 고함을 치며 방문을 다시 열었습니다. 하지만 집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혹시 엄마, 아버지도 외계인이 데려갔나 하고 정훈인 덜컥 겁이 났습니다.     

“학교 가야겠다. 벌써 7시야. 장정훈!”               

경남 고성 출생 

2013년 서정문학 등단

하루 48시간, 시시콜콜 잡다한 이야기, 감도둑 잡아라, 꿈보다 해몽

2020년 마산예술공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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