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심이라는 어두운 그림자, '인지상정'을 외면할 때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닐 '보통의 마음'. 우리는 이를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 부른다. 누군가의 슬픔에 공감하고, 기쁨을 나누며, 어려운 이웃을 보면 기꺼이 손을 내미는 행위. 이는 오랜 세월 인간 사회를 지탱해 온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정서다. 우리 내면에 새겨진 기본적인 도리이자,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인간에게 필연적인 상호 작용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마치 공기처럼 너무나 당연해서 그 존재감마저 잊고 살 때가 있지만, 사실 이는 인간다운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가치다.
그런데 여기, 익숙한 상식의 틀을 깨고 인지상정(仁知相情)을 다른 깊이로 해석하는 시도가 있다. 어짊(仁)을 아는 것이 곧 서로 마음을 나누는 것이라는 통찰이다. 이는 단순히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수동적 공감을 넘어, '인(仁)'이라는 깨달음과 실천을 통해 능동적으로 타인과 교류하는 고차원적인 윤리 의식을 일깨운다. 유교 철학 속 '인(仁)'은 맹자의 측은지심에서 출발해, 주자가 '사랑의 이치'라 했듯 이치에 맞게 사랑을 실천하는 적극적 의지를 포함한다. 명도(程颢)가 '사물과 더불어 한 몸이 되는 것'이 인(仁)의 본질이라 했듯, 이는 내 울타리를 넘어 세상 모든 존재와 깊이 연결되려는 의지를 뜻한다.
결국, 전통적인 인지상정(人之常情)이 사람이라면 마땅히 품어야 할 '마음의 최소한'이라면, 이 새로운 인지상정(仁知相情)은 이성적 성찰과 윤리적 의지에 기반한 '마음의 최대치'를 지향한다. 보편적인 공감대를 자연스럽게 느끼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짊'이라는 고귀한 가치를 깨닫고 이를 바탕으로 능동적으로 '마음을 나누는' 경지로 확장되는 것이다.
문제는 현대 사회 곳곳에 만연한 '이기심'에 있다. 자신의 이익과 편리만을 좇는 이들은 이 두 가지 '인지상정' 모두를 외면한다. 타인의 고통 앞에서 눈감고, 공동체의 문제에 팔짱을 낀 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치부하는 그들의 시선은 전통적인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는 인간 사회의 기본적인 약속조차 저버린 행위다. 그들은 마치 자기 마음의 창문에 두터운 커튼을 친 것처럼, 빛 한 줄기 들어올 틈 없는 어둠 속에서 오직 자신만을 위한 삶에 몰두하는 듯 보인다.
더 나아가, 이기적인 이들은 '어짊을 아는 것이 마음을 나누는 것'이라는 고차원적인 인지상정(仁知相情)의 개념 자체를 이해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그들의 마음속 사전에는 '나눔', '공감', '연대' 같은 단어들이 삭제된 지 오래인지도 모른다. '인(仁)'이라는 덕목이 주는 따뜻한 포용력과 관계의 충만함이 얼마나 삶을 풍요롭게 하는지 알지 못한 채, 오직 물질적 소유와 개인적 성취만이 최고 가치인 양 착각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한 사람의 마음이 다른 마음과 연결되지 못하고 뚝섬처럼 고립되어 있다면, 그 삶이 과연 얼마나 깊이 있고 의미 있을까? 일시적인 성공이나 물질적 풍요는 가져다줄지언정, 진정한 인간적인 행복과 충족감은 결국 타인과의 유대와 나눔 속에서 피어나는 법이다.
결론적으로, 이기적인 사람들은 두 가지 '인지상정'이 가리키는 삶의 진정한 방향을 놓친 채 표류하고 있는 이들이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녀야 할 보통의 마음을 저버리고, 나아가 인간이 지향해야 할 어짊의 가치마저 모른 척하며 살아가니 말이다. 언젠가는 분명, 차갑게 얼어붙은 그 마음이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진정한 외로움과 공허함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통적인 '인지상정(人之常情)'의 바탕 위에서 새로운 '인지상정(仁知相情)'을 끊임없이 되새기며, 나 아닌 타인의 존재에 대한 깊은 이해와 어짊을 실천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이 험한 세상살이 속에서도 따뜻한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진정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며, 우리 사회는 더 밝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