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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Oct 22. 2020

내력에 대하여

나의 아저씨

KBS, MBC, SBS, EBS.

우리집은 이렇게 지상파 채널만 나온다.

그러다보니 케이블에서 인기있는 드라마는 늘 뒷북이거나 아예 못 보고 지나친다.


지난 주에 일주일만에 정주행을 끝낸 tvN의 드라마 '나의 아저씨'도 무려 2018년작.

그런 드라마가 있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윤짱님의 드라마 리뷰를 보고서야 뒤늦게 보게 되었다.

가장 궁금했던 '외력/내력'의 이야기는 8화에서 나온다.    


"모든 건물은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야.

바람, 하중, 진동. 있을 수 있는 모든 외력을 계산하고 따져서 그거보다 세게 내력을 설계하는 거야. 항상 외력보다 내력이 세게.

인생도 어떻게 보면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세면 버티는 거야."


극중 이선균이 분한 박동훈의 대사이다. 동훈은 건축사가 설계한대로 건물이 나오게 하려면 어떤 재료로 어떻게 만들어야 안전한지 계산하는 일과 건물의 안전진단을 하는 구조기술사이다.


인생의 외력은 무엇일까?

흔히 말하는 다양한 스트레스일 것이다. 잔소리, 힘든 일, 빡빡한 일정, 뒷담화, 경제적 압박, 멸시, 비웃음, 갈굼, 폭력, 유혹, 비교 등등 우리를 힘들게 하는 외부의 힘들. 그 힘이 아무리 많고 커도 그에 맞서는 내면의 힘이 세면 어떤 일이 닥쳐도 버틸 수 있다는 것,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들 뭘 가져보겠다고 평생 노력하고, 내가 어떤 인간이란 걸 보여주기 위해 아등바등 사는 세상에서 '아무 것도 갖지 않은 인간이 되어보겠다'고 머리 깎고 스님이 된 친구를 이야기하며 동훈은 '내력이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던진다.


"뭘 갖는 건지도 모르겠고, 어쩌다 원하는 걸 갖는다고 해도 나를 안전하게 해준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나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 못 견디고 무너지는 사람들.

나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나를 지탱해주는 기둥이었다고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진정한 내 내력이 아닌 것 같아."


가족, 학력, 전문자격증, 회사, 사회적 지위와 평판 등이 나를 지탱해주는 기둥이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화려한 스펙을 자랑하는 후보들 틈에서 이력서  특기란에 딸랑 '달리기'만 쓴 지안이를 보며 내력이 센 아이라고 느낀 이유가 그것일 것이다. 그럼 진정한 내력은 무엇일까?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강해보인다고 말한다. 어떤 일이 닥쳐도 중심을 잡고 잘 해낼 것 같다고 한다. 나 스스로는 한없이 여리고, 감상적이고, 갈피를 못잡고 우왕좌왕할 때가 많은 사람이라 여기는데도 남들이 나를 그렇게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지닌 내력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것.

매일 글을 쓰는 것.

늘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것.

남을 쉽게 판단하지 않는 것.

타인에게 친절하려고 애쓰는 것

큰일 앞에서 당황하기보다 오히려 담대한 것.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붙잡고 있는 것.

여전히 꿈을 꾸고 이루려는 것.


어떤 일이 있어도 나를 붙잡아주는 내 안의 것들이다. 여기에 부모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좋은 추억들이 나를 지탱해주는 기둥이란 생각이 든다.


외부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나를 나일 수 있게 해주는 힘, 그것은 겉으로 보여지는 스펙이나 성공이 아닌 나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려는 노력과 신념일 것이다.


극중 이지안(아이유)은 일찍 돌아가신 아빠, 빚만 남기고 사라져버린 엄마 대신 청각장애에 거동까지 힘든 할머니를 봉양하며 소녀가장으로 살아왔다. 그러다 할머니를 마구 패는 사채업자를 보고는 참지 못해  어린 나이에 살인자가 되고 만다. 다행히 정당방위로 풀려나왔지만 겨우 여상을 졸업하고, 투잡 쓰리잡을 하면서 생계비를 벌고, 할머니를 모시고, 아버지의 대를 이어 사채업자가 된 어린 시절 좋은 친구였던 광일의 빚독촉과 폭력에 시달리며 산다. 그래서 21년을 살아오며 한 번도 산 것처럼 살아보지 못하다가 동훈을 만나 처음으로 살아보았다고 말한다.


반면 동훈은 겉으로는 실력있고 평판좋은 대기업 부장에, 아름다운 변호사 부인에, 미국에 유학 보낸 아들에, 아파트와 자동차, 삼형제와 오랜 지인들. 겉으로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잘 사는 것 같지만 속으론 죽지 못해 살아가다 지안이를 만나 제대로 살게 되었다고 말한다.  


각자가 지닌 내력으로 서로의 상처를 돌보고 치유한 덕분이다.

내력은 나자신뿐만 아니라, 이웃한 그 누군가를 돕기도 한다.


지안의 이름은 이를 지(至)에 편안할 안(安). '편안함에 이르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녀가 고단한 하루를 끝내기 전, 맥심 커피 세 봉지를 한꺼번에 뜯어서 팔팔 끓인 물에 타먹으며 자신을 다독인 것처럼 그런 찐한 믹스커피를 마시고 힘을 내고 싶은 새벽... 드라마 엔딩자막에 나온 멋진 말로 이 글을 끝내고 싶다. 자신만의 내력이 무엇일지 생각하는 하루 보내시며 모두 청안하시길~


* 여러분은 모두 괜찮은 사람입니다, 그것도 엄청.

  편안함에 이르기까지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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