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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Nov 30. 2020

나도 왕년엔 이발사!

마늘 까며 두런두런

가을 문턱에 들어서면 하루 날 잡아서 하는 연례행사가 여름에 해남에서 주신 마늘을 몽창 다 까는 것이다.

적어도 서너 접은 될 엄청난 양의 마늘을 하루 전에 일일이 다 쪼개서 물에 담가 불린 다음, 껍질 까고, 씻어서, 물기 빼고, 전용믹서에 갈아서 봉지봉지마다 넣어서 냉동고에 쟁여두고 1년을 먹는다.

마늘까기를 할 때마다 온 식구 동원되서 하곤 했는데 올해는 어쩌다보니 온라인수업중인 둘째만 이 집안일에 참여했다. 하루 수업 후딱 해치워놓고 게임하길래 옳다구나! 하고 도와달라 했던 것이다. 옆에서 한자리 차지하고 마늘 껍질을 까면서도 궁시렁대는 아들.

"이걸 꼭 이렇게 다 한꺼번에 해야 하는 거예요, 굳이?"

"옛날에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정지간에다 마늘 매달아두고, 음식할 때마다 필요한 만큼 꺼내다가 그때 그때 껍질 까서 도마에 콩콩콩 쪼사서 썼는디 ~ 이렇게 해놓고 씅께 세상 편하지야."

어머님께서 예전일을 떠올리며 한 마디 하시니
바로 토를 단다.

"마늘 안 먹으면 되잖아요~"

"하이구야~ 니 좋아하는 김치도, 고기도
마늘 없으면 무슨 맛으로 먹을 건데?"

내가 옆에서 아들에게 퉁을 주는 소리를 들으시더니 어머님께서 그러신다.

"마늘 없으믄 그 맛이 안 나~ 우리야 해남에서 농사 지어서 주시면 편하게 받아서 이렇게 껍질만 까고 말지만 이걸 밭에서 키우고 거둘라면 얼마나 애를 쓰는지 아냐? 일년 내 농사 짓는 거에 비하면 이거는 암껏도 아니다. 그저 감사합니다~ 생각하고 해라."

"네~네~ 알았어요. 그냥 할게요."

댓발 나왔던 입을 거두고 마늘까기에 열중인 아들을 보고 있자니 다음 주에 졸업사진을 찍는다고 했던 게 생각났다. 그런데 머리가 뽀개진 밤송이처럼 어시부시하다. 동네 단골 남성전용미용실(이름하야 '태후사랑')에 가서 머리 좀 자르고 가야겠다고 했더니,

"지금 머리도 좋은데 굳이?"

"응~ 그래 굳이 해야 돼. 지금 머리 절대 안 좋아. 졸업사진이라 평생 남을 텐데 그런 머리로 찍으면 되겠냐?"

"졸업사진 찍어? 그람 이발해야재~ 우리 손주는 이발하믄 인물이 훤해진께 꼭 하거라잉~."

"아 귀찮아요~ 그냥 이 머리로 찍을래요~~~"

"뭐가 귀찮어야? 졸망졸망 걸어서 집앞 미용실 가서 머리 깎으믄 되는 것을! 나때는 동네 미용실이 어딨어? 집에서 한나절 걸어가야 나오는 성전(강진의 면소재지)까지 가야 이발소가 있응께 아침 일찍 밥 먹고 길 나서서 머리 자르러 가믄 저녁 때나 집에 돌아왔는디."

손주의 귀차니즘 발언에 어머님의 어릴 적 머리 자르던 기억이 휘리릭 소환되었다.

"무슨 머리를 하루종일 깎아요? 그리고 미장원이 아니라 이발소로 가신 거예요?"

"우리 어릴 때는 미장원이 없었재. 우리 어머니가 손재주가 좋아서 다른 거는 다 할 줄 아시는디 머리 자르는 재주는 없으셔가꼬 성전 이발소까지 가야 머리를 잘랐어야. 아침 먹고 부지런히 두어 시간 걸어서 이발소 가믄 사람들이 많어. 그람 기다려야재. 기다렸다가 순서가 되믄 키가 작응께 의자에다 네모난 통 하나를 받쳐두고 그 위에 올라앉아서 머리를 자르고 내려왔지야. 집까지 또 부지런히 걸어서 오면 저녁이 되드란마다."

"그럼 점심은 어떻게 하셨어요?"

"굶었재. 이발값만 겨우 들고 가는디 점심 사먹을 돈이 어딨겄냐?"

"배 엄청 고프셨겠다. 하루종일 걸으시고."

"그래서 나중에는 이발소에서 머리 자르는 걸 유심히 봐두었다가, 밑에 동생들이랑 동네 애들, 친구들 머리까지 내가 다 잘라줬당께."

"우와~ 진짜요? 따로 기술 안 배우시고도요?"

"내가 열다섯 살부터 한복 짓는 법을 배웠응께 가위질은 좀 할 줄 알지야. 동생들 머리 잘라놓은 게 봐줄만 했는지, 동네 애들이 다 나한테 줄서서 머리를 잘랐재. 돈도 안 받고 다 해줬지야."

"하긴 생각해보니 저도 어릴 때 우리 동네 애들 머리는 당숙이 다 잘라주셨네요. 어디서 기술을 배우셨나 몰라도 제법 잘 잘라주셔서 제 기억에 따르면 4학년때까진 마당에 의자 내놓고, 목에다 보재기 두르고 머리 자르곤 했어요. 미용실은 그 뒤로 갔던 거 같아요.

나중에 결혼하시구선 아범이랑 아가씨들 머리도 어머님께서 직접 다 잘라주셨겠네요?"

"국민학교 댕길 때까지는 그랬을 것이다. 참 니 시아부지도 애들 머리를 잘라줬단다."

"아버님두요? 언제 그런 기술을 배우셨대요?"

"모르겄다. 따로 배웠능가 어쨌능가~ 집에 머리 자를 때 쓰는 전용가위랑 머리 솎아내는 거랑 바리깡 같은 것도 있었응께. 그란디 애들 머리를 자를라믄 마당 한구석에서 하믄 되껏인디, 꼭 대문 밖으로 나가서 마을에 사람들 다니는 길목에다가 의자놓고 머리를 깎았단다."

"왜요? 그럼 좀 챙피했을 거 같은데..."

"자기가 이런 기술도 있다고 자랑하고 싶었는갑재~ 애들이야 부끄러워하거나 말거나."

옆에서 듣던 아들이 그런다.

"와~~ 쩐다. 우리집은 아빠가 머리 자를 줄 몰라서 천만다행이네요."

안 그래도 툭하면 아들이 자고일어나서 머리가 하늘로 치솟듯이, 태풍에 파도가 너울치듯 산발을 하고 있을 때면

"볼 만하다~ 아빠가 시원하게 확 밀어주까?"

하는 사람인데, 진짜 이용기술까지 있었음 어쩔 뻔!

미용실 안 간다고 뻐팅기던 아들은 할머니의 '라떼는 말이야'를 들은 이후 군소리 없이 머리 깎으러 갔다. 시원하니~ 이쁘게 잘 깎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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