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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Dec 02. 2020

새비 잡아 젓갈 담고

토하젓 자급자족기

논산 강경은 젓갈로 유명하다.
가을 김장철을 앞두고 젓갈축제를 하곤 하는데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으로 축제를 한다고 했다. 축제기간 동안 20% 할인된 가격으로 젓갈을 판매한다니, 강경까지 가지 않고도 맛있는 젓갈을 싸고 편하게 먹을 수 있는 기회라 놓칠 수 없었다.

우리 집이야 김장은 안 한 지 오래돼서(김치냉장고가 고장 난 이후로 김장을 포기. 그때그때 사 먹거나 여기저기서 얻어먹은 지 몇 년 됐다) 김장용 젓갈은 필요 없고, 밥상에서 먹을 젓갈이 필요했다.

10월 14일부터 18일까지 행사기간 중 나는 15일에 축제 공식 유튜브 채널인 '강경맛깔젓TV'를 보고 주문전화를 했다. 바로 다음 날 해피콜이 와서 어떤 젓갈로 주문할지 자세한 설명과 함께 주문을 다시 받고, 입금했다. 강경의 젓갈 상가 가운데서 맛을 인증받은 명품 젓갈을 파는 가게만 선별하여 축제에 참여한다고 논산시청에서 안내를 해주었고, 혹시나 맛이 안 좋으면 환불 처리해준다고 하니 직접 가서 먹어보고 사진 않았지만 괜찮겠지~ 하는 믿음이 갔다.

드디어 주문한 네 가지 종류의 젓갈이 왔다.
낙지젓, 오징어젓, 조개젓, 씨앗낙지젓.
생소했지만 낙지를 잘게 다져서 씨앗과 함께 버무린 씨앗낙지젓이 가장 인기가 좋아 금방 동이 났고, 나머지 젓갈도 맛이 좋았다. 남편이 왜 명란젓은 안 시켰냐며 볼멘소리를 해서 나중에 명란젓은 따로 사서 먹었다.


그렇게 젓갈로 밥상이 풍요롭던 어느 날
연애시절 남편집에 놀러 가서 먹었던 토하젓이 생각나 어머님께 여쭈었다.

"저는 그때 처음 토하젓을 먹어봤어요. 오빠가 어머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젓갈이라고 하며 내놓더라구요."

"으응~ 새비젓? 내가 고향에서 살 때 직접 새비 잡아다 만들어 먹곤 했응께 좋아했지야."

"에에? 새우를 직접 잡으셨다구요?"

"그람~ 내가 그물로 한 올 한 올 손수 짠 조랭이랑 소쿠리 들고 개울에 나가서 잡았재. 어른들 말씀이 음력 6월까진 잡는 거 아니라 해서 7월 첫날 새벽 동트기 전에 일찌감치 나가서 잡았재. 누가 먼저 잡아갈깝시~ ㅎㅎ"

"6월엔 왜 못 잡게 했으까요?"

"아마도 그때가 새비들 알 배서 새끼 낳을 때라 그랬능갑다 짐작은 한디 잘은 모르고, 어른들이 그라고 말씀하신께 7월 될 때까지 참았재."
(찾아보니, 우리나라에 분포하는 민물새우류는 대부분 빠르면 4월부터 시작하여 7월까지 산란한다고 함)

"음력 7월이면 양력으론 8월쯤 되니까 동트기 전이면 새벽 4~5시쯤 되었을 텐데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부지런하셨네요."

"그랑께 말이다. 그때도 새비 잡을라고 음청 부지런을 떨었구만. 내가 새비 하나는 끝내주게 잡았재. 새비는 아무나 잡도 못해야. 새비가 물이 흐르는 방향이 아니라 거슬러서 올라온께 그걸 요령껏 잡아챌 수 있어야는디 그게 쉽질 않어.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 나 말고 새비 잡아본 사람이 없어야~ 나만 잡았재. 그라고 남들보다 일찍 나가야 더 많이 잡을 수 있응께 눈 뜨자마자 조랭이 들고나가서 소쿠리에 담아왔재.

집에 오믄 식구들은 아침밥 먹고 있응께 부리나케 숟갈 들고 밥상으로 갔재. 허벌나게 배가 고프거등. 할무니랑 어무이가 먼저 아침 자시곤 새비 든 소쿠리에서 자잘한 티 골라낸 다음에 소금에다 절이셨재. 개울물 바닥을 긁어서 잡는 거라 뭔 잡티가 많았걸랑."

"그렇게 소금에 절이면 얼마나 있다 먹을 수 있어요?"

"몇 달 둬야 먹재. 오래 묵을 것은 그렇게 절여서 두고, 금방 묵을 것은 고춧가루랑 양념 다해서 부뚜막에 놔두면 며칠만에 다 익거등. 그람 바로 먹을 수 있었재. 고모들이 집에 오시믄 오메~ 오메~ 맛난 거~ 함시롱 맛있게 드시고, 좀 싸드리면 무쟈게 좋아하셨재. 그게 얼마나 맛난 줄 아냐? 진짜 맛있어야~"

어머님은 그 시절 부뚜막에 두고 삭혔다가 먹던 새비젓을 떠올리시며 침을 꼴깍 삼키신다.

"그럼 새비는 언제까지 잡으셨어요?"

"음력 8월까진 잡았재. 9월 되면 물이 차가워서 잡기 힘들어진께. 여름 한 철 잡은 새비로 다음 해 봄까지 먹었응께 참 많이도 잡았다. 시집 오기 전까지 여름 되믄 새비 잡아다 젓갈 담아서 묵었는디, 서울 와서 봉께 토하젓이라고 함서 무쟈게 귀한 대접을 받드라. 애기 주먹만한 통에 든 게 어찌나 비싸던지... 5천원이었나? 그때 돈으로 5천원이면 엄청 비쌌재. 지금이야 5천원은 돈도 아니다만. 그라고 토하젓은 어디 파는 데도 잘 안 보여. 백화점 식품코너나 가야 있고, 고급한정식집이나 가야 반찬으로 나온다드라."

"그 시절에 어머님이 잡아다 만들어 파셨음 돈 좀 버셨겠네요?"

"그랬으까? 근디 서울에 어디 냇갈이 있어야 새비를 잡재. 그라고 요새는 냇갈에 가도 새비가 안 보이드라. 나 어릴 땐 새비가 쎄고 쎘었는디."

"환경이 오염되서 다 사라졌나부죠."

"그랑께 말이여. 다 농약치고 비료 뿌리고 그라니 살 수가 없재. 뭔 놈의 개발들은 그리 해싸는지 원. 나 살던 고향집도 지금 가서 보면 집 앞에 있던 그 넓은 개울이 다 사라지고 쬐그만 또랑이 되어 있더라. 주변에 뭐가 많이 생기면서 줄어들었나.

새벽에는 새비 잡고, 저녁에는 다슬기 잡고 하던 개울인디... 참, 다슬기는 저녁 밥할 때 슬금슬금 나오거등. 인자는 그런 게 어디 있냐?

알고보면 우리 어릴 때는 귀한 줄도 모르고 건강식으로만 잘 먹었어야. 그래서 그란가 요새 보믄 젊은이들보다 노인들 힘이 더 세당께. 요즘애들은 허우대만 멀쩡했지 심이 없어~ 짐 하나도 제대로 못 들고 비척비척. 우리 때는 머리에 임 이고 양손에 보따리 가득 들고도 십리길을 잘만 걸어댕겼는디. 다 먹는 게 건강치 못해서 그런 거여."

어머님 말씀도 일리가 있다.
건강한 먹을거리에서 건강한 몸이 자라나는 것인데 요즘은 자연에서 갓 캐고, 얻은 것들이 아니라 비닐하우스와 양식장과 공장에서 만들어진 먹을거리들을 먹고 자라니, 아무래도 건강한 기운이 깃들기 어려운 점이 있으리라. 양적으로는 엄청나게 늘었지만 질적으론 옛날보다 낫다고 할 수가 없다.


민물새우로 만든 토하젓 얘기하다보니 환경오염이랑 건강한 먹을거리 이야기까지 나온다. 세상은 이렇게 이어진다.

민물새우가 궁금해서 좀더 찾아보니, 토하젓의 원료가 되는 새우는 1급수 저수지나 또랑에서 잡히는 민물새우로 지방에 따라 새뱅이, 새비라고 불린다. 정식명칭은 새뱅이지만 흙냄새가 나는 새우라고 해서 '토하'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민물새우는 차가운 물속에 살지만 따뜻한 성미를 가지고 있어 대체로 무독하며, 심장 위장 신경에 작용을 한다. 영양적으로는 저칼로리 고단백 식품으로서 비타민, 칼슘, 무기질 등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지방분해효소인 리파아제는 육질을 빠르게 분해해주며, 단백질 속 아미노산은 풍부한 감칠맛을 내어준다. 또한 새우 껍질에 있는 키틴질 성분은 상처 치유, 항종양 활성 등의 기능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민물새우는 몸집이 작고 서식지가 제한적이다 보니 많이 잡아올리지 못하는데다 환경오염과 생태환경 변화로 수가 많이 줄었다. 삽교호에서 2대째 민물 새우를 잡는 조병만 어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토종 민물새우는 새뱅이(보리새우), 각시흰새우, 징거미새우 등이며 가을철에 잡은 토종 민물 새우는 살집이 통통하고, 바다 새우보다 달고 시원하다고 한다. 이곳도 어획량이 많이 줄어 토종 민물새우 몸값이 금값이라고 한다. 그래서 요즘엔 바다새우 양식처럼 민물새우도 양식을 해서 토하젓 원료를 대는 경우가 많다. 토하젓을 인터넷 쇼핑으로 알아보니 300g에 만 원으로 나와서 '뭐가 이리 싸지?' 했더니 양식 민물새우로 만든 거라 재료값이 싸져서 가격도 내린 모양이었다.

토하젓 만드는 법은 민물 새우를 항아리에 먼저 담고 그 위에 새우 양만큼 굵은 소금을 하얗게 얹는다. 소금이 녹을 정도의 물을 뿌려 그늘진 곳에서 한 달간 숙성시킨 다음, 발효된 새우와 같은 양의 찹쌀 풀로 만든 죽을 넣고 분마기에 갈아서 일주일쯤 그늘에서 숙성시키면 민물 새우의 비린 맛은 없어지고 단맛이 나며 젓갈 특유의 맛이 깊어진다. 민물 새우 젓갈에 고운 고춧가루와 다진 생강, 다진 마늘, 다진 실파, 참깨 참기름 등으로 양념하여 반찬으로 먹으면 된다. 조만간 토하젓을 주문해서 먹어봐야겠다. 어머님께서 참 좋아하시겠군~^^


* 토종 민물 새우를 연구하는 국립수산과학원 김정년 박사의 논문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십각갑각류(새우와 게류가 속하는 분류군)는 현재까지 4백21종이 보고됐으며, 민물에서 서식하는 새우는 크게 16종으로 구분한다. 흔히 민물 새우 하면 새뱅이(토하)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흰새우류에 속하는 각시흰새우와 징거미류의 징거미새우는 모두 일생을 염분이 있는 하구 또는 하천의 하류 등 민물에서 살아가는 비회유형(육봉형)이다. 낮에는 수심이 얕고 수초나 돌 등이 많은 곳에서 숨어 지내다 밤에 나와 먹이 활동을 한다. 낚시인들 사이에서 히라수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각시흰새우는 살아 있을 때 몸 색깔이 매우 투명하며 죽으면 하얗게 변해버린다. 몸길이는 약 3cm로, 최대 6cm 가까이 자라기도 한다. 아미노산과 무기질이 풍부해 식용으로 먹어도 무리가 없다. 반면 징거미새우는 우리나라 민물 새우 중 몸집이 가장 크다. 최근 개체 수가 급격히 감소해 찾아보기가 힘든 귀한 종이다. 몸길이가 최대 5~10cm로 자라며 암녹색 또는 암회색을 띤다. 앞으로 쭉 뻗은 집게발이 있어 비교적 눈으로 구분하기 쉬우며, 맛도 좋아 탕이나 구이, 튀김용으로도 인기가 높다.

박사에 따르면 최근 양식에 성공한 큰징거미새우를 제외하고는 민물에서 발견되는 대부분의 새우를 토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한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11월호 글에서 인용)

위는 각시흰새우 아래는 징거미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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