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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Dec 03. 2020

빵꾸와 빠나나

세탁삥이란 게 있는디~

길 가던 중에 오백 원짜리 동전이 보이길래
'웬 횡재냐?' 하면서
속으로 희희낙락 좋아하던 김모씨.

얼씨구! 바지 뒷주머니에 구멍 났네?
알고 보니 자기 주머니에서 빠져나간 동전이었단다.

"바지 구멍 좀 어떻게 해줘~"

하며 남편이 며칠 전 내게 바지를 맡기고 출근했다.

아침 집안일을 마치고 거실에서 빵꾸난 바지를 붙들고

씨름 중인 어머님께서 나오셨다.
여차저차하여 지금 바지 주머니의 구멍을 기우고 있다고 말씀드리니,

"요즘엔 카드들을 씅께 눈 씻고 찾아봐도
십 원짜리 하나 안보이드라~
그란디 오백 원이면 횡재는 횡재네.
지 바지에서 나가서 탈이지~"


깔깔 웃으시며 한 마디 덧붙이신다.

"예전엔 빨래할라고 주머니를 뒤지다 보면 주머니에서 동전이랑 지폐가 나오기도 하거등.
그런 거는 '세탁삥'이라고 아무한테도 말 안 하고 혼자 꿀꺽했는디~ 그게 은근 쏠쏠했지야."

아버님께서 생활비를 잘 주시지 않아, 어떻게 하면 생활비를 타쓰나 고민하시던 어머님께 빨래 거리 속에서 나온 돈은 그야말로 횡재셨을 거다. 큰돈은 아니었겠지만 그런 돈이라도 수중에 들어올 수 있어 감지덕지하셨을 어머님의 표정을 떠올리면 빙그레 웃음이 나기도 하고, 다소 짠한 마음도 들고 그런다.

가장으로서의 역할은 나몰라라 하시면서,
가장으로 최고대우를 받고 싶으셨던 아버님.
세 아이를 키우기 위해 가장 역할을 자처하시며

생활을 꾸려가셨지만, 늘 아버님의 폭언과
폭력 속에 폭폭한 삶을 사셨던 어머님.

"내가 니 시아버지 자리되는 양반이랑 살면서 겪은 일을 한 자 한 자 글로 써서 그 종이를 이어 붙이면 쩌어기 63빌딩도 넘을 것이다."

남들에겐 인심 쓰기 좋아하고, 마을 일엔 그렇게 부지런히 나서셨다는 아버님은 정작 가정에는 소홀하셔서, 집에 수도가 들어오지 않아 물을 길어다 먹던 시절에 한 번도 물을 길어오신 적이 없었단다. 임신해서 배가 불렀을 때도, 애 낳고 아직 몸을 가누기 힘들 때도 어머님이 직접 물을 길어오셔야 했을 정도니... 옆집 아줌마가 보기 딱해서 자기 남편에게 부탁해 자기네 집 물 길어올 때 어머님댁으로도 한 통씩 물을 길어다 주시곤 했을 정도였는데, 그나마도 아버님이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니 얼마 가지 못했다고.

"세상에~ 해도 너무 하셨네요! 어떻게 임신한 아내한테 물지게를 지게 해요? 설마 하니 물통 져다나를 시간이 없으셨던 거예요?"

"없긴~ 남의 집 마누라가 마당에서 빨래 널고 있응께, 그 시절에 귀한 빠나나까지 사다 줌시롱 고생한다고 너스레 떨 만큼 남의 일 참견하기 바빴재."

"엥? 물도 길어다 먹던 시절에 빠나나요?"

"하이구~ 난 그 시절에 빠나나 귀경도 못해봤다. 내가 봤간? 빠나나 얻어먹은 마누래가 어느 날 찾아와서는 말 안 하고 있기가 미안해서 말한다고 귀띔해줘서 알았재."

허파가 뒤집어질 일을 어머님께선

"맛있게 드셨으면 됐지요~"

하고 마셨단다.
거그서 뭔 말을 더 하겠느냐고 하시면서.


몇 년 전부터 어머님의 뜻으로 설이랑 추석 때 차례를 안 지내기로 한 뒤로, 결혼 전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여전히 마음의 앙금이 남은 남편 종종 아버님 제사도 치르지 말자고 한다. 만 내가 나서서 워워~ 그건 아니지~ 하며 잘 지내고 있다. 남편이 하지 말자는 아버님 제사를 내가 해야 한다고 우기는 건,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뒤로 집안일이며 자식일이며 뒤늦게 돌보고 계신다는 느낌을 여러 번 받았기 때문이다.

한창 취업이 어려운 시기에 남편이
대기업에 취직한 것도, 15년 근속 뒤에
잠시 백수기를 거쳐 재취업에 성공한 것도,
세 자녀가 다 제 짝을 만나 결혼해서 사는 것도,
목돈이 필요할 때 오래전 꿍쳐놓으신 아버님 유산을 내가 우연히 발견해서 삼남매가 요긴하게 쓰게 된 것도, 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돌봐서라고 생각한다.

뭐,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어머님께서 정말 복 받으실 일들을 많이 하셨으니까

다 어머님 덕분이기도~)
기왕 지내는 제사, 감사한 마음으로 지내고 싶다.
친정에 비해 시댁 식구들의 왕래가 적은 편인데, 이렇게 제사라도 있어야 한 자리 모여 얼굴 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점도 좋다.

어머님 살아계신 덕분에 어머님 생신 때마다,
아버님 제사 때마다 삼남매가 한 자리에 모인다.
나름의 앙금과 안 좋은 추억들이 있어도, 오랜만에 모인 자리는 반갑고 즐겁다. 12월 말에 있을 아버님 제사도 코로나 잘 피해서 안전하게 치를 수 있기를 바란다.



* 사진은 오늘 수능날이니 수험생들 모두 잘 찍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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