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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Nov 27. 2020

소갈비와 팔만이

나무하러 가세~

날이 건조하다 보니 전국 곳곳에서 산불 소식이 들려온다. 양양 산불처럼 규모가 큰 산불은 아니지만 가을 추수 뒤에 나온 부산물들을 태우는 농가들이 많다 보니, 불티가 무려 2km까지 날아가서 근처 산에 불씨를 옮겨 불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다행히 초동대처를 잘해서 큰 불로 번지진 않았지만 '방귀 자꾸 뀌면 똥 싼다'고 이렇게 작은 불들을 조심하지 않으면 결국 큰 불로 번지기 마련이다.

어제도 화재 소식을 티비 뉴스로 들으시며
어머님께서 한 마디 하신다.

"예전에는 산에 낙엽이 쌓이기 무섭게 나무들을 해서 저라고 불날 일도 없었는디~ 요즘엔 누가 나무를 하냐? 산에 나무가 천지삐까리여도~"

"전에도 산불이야 종종 났지만, 그땐 사람들이 하두 산에 가서 바닥에 깔린 낙엽이며, 나뭇가지에 있는 삭정이며 싹싹 긁어오니 불티 좀 날아간다고 불 날 일은 없었을 거 같아요. 게다가 옛날엔 추수 끝나고 나온 콩대 옥수수대 깻대 고춧대~ 다 나무청에 넣었다가 불 땔 때 썼잖아요. 지금처럼 따로 안 태우고."

"그랬재. 저라고 따로 태울 일이 없었니라. 추수 끝나면 고것들 싹 나무청에 갈무리해놓고, 산에 나무하러 댕기느라 바빴재."

나무하러 댕기는 것이라면 나도 할 말이 많다.
어릴 때 엄마가 밭농사를 많이 지으셔서, 봄부터 가을까진 밭일 도와드리느라 바빴고, 겨울엔 이 산 저 산 나무하러 댕기느라 바빴다.


갈퀴랑 낫이랑 새끼줄 한 동가리가 담긴 리어카를 엄마랑 사남매가 밀고 끌고 가까운 산으로 가서 나무를 했다. 우리 땐 나무한다고 쫓아오는 산주인이나 산지기가 있지는 않아서 주인한테 걸릴까 봐 조마조마하며 나무를 하지는 않았다. 다만 양심적으로 몽창 다 긁어오진 않았고, 이 산 저 산 가서 적당히 해오는 정도였다.


우선 갈퀴로 바닥에 깔린 소갈비(소나무에서 떨어진 갈색 솔잎, 소나무 갈비)를 싹싹 긁어서 모은다. 어지간히 갈비가 모아지면 이제 낫으로 삭정이가 된 나뭇가지들을 쳐내서 갈비와 함께 나무둥치를 원통형으로 만들어서 새끼줄로 꽁꽁 둘러 묶는다. 이렇게 나무둥치가 서너 개쯤 모이면 머리에 이거나 낑낑대며 동생들이랑 맞잡고서 산 아래 대어둔 리어카까지 걸어간다. 리어카에 가득 실리면 이제 또 끌고 밀고하며 집으로 간다.


아빠가 도와주셨으면 리어카없이 지게로 져서 날라주셨을지도 모르지만, 아빠는 한 번도 나무 하는 일을 도와주시지 않았다. 아마도 아빠가 출근하신 낮시간에 해야 했기 때문이었겠지만 지금 생각해도 미스테리다. 왜 안 도와주셨을까?

이 얘길 어머님께 해드렸더니,

"우리 아부지도 나무하는 거는 안 도와주셨어야. 내가 주로 했."

"온 식구 다 해도 힘든 일을 어머님 혼자서 다 하셨다구요? 위에 오빠도 계시고, 언니도 계시고, 아래로 동생들도 줄줄이 있으신데요?"

"그라믄 뭐하냐? 언니는 나랑 열 살 차이라 내가 열한 살 때 시집가셨고, 오빠는 중학교 졸업하고선 쭉 타지에서 학교 다니다 직장 다니셨고, 아래 동생들 가운데 영광 이모는 원래 집에서 꼼지락꼼찌락 하는 일만 하재 어디 밖에 나가서 하는 일은 못하고, 밑에 두 동생들은 너무 어렸응께."

"그럼 하루 종일 혼자 산에 가서 나무하신 거예요?"

"무슨? 동네에 나무하러 같이 댕기는 사람들이 있었재. 아침 묵고 나믄 아야~ 나무하러 가자~~ 하고 설밖에서 불러. 그람 후딱 갈쿠랑 낫이랑 챙겨가꼬 나가재. 오늘은 어디 산으로 가보자~ 함서 의논을 해가꼬 산에 가서 열씨미 나무 해설랑 머리에다 이고 오고 그랬재. 쩌그 월출산 바로 아래 있는 산까지도 가봤다."

"힘드셨겠어요?"

"일이야 심들었어도 같이 가는 사람들이랑 오고 가며 얘기하는 것이 재미지고, 산에서 해온 나무들이 나무청에 그득 쌓이면 부자 된 거 같고 그래서 오지더라. 참 아부지가 딱 하나 해주시는 것이 나무청에 나무 올리고 내리고 하는 거였다. 그거 하나는 해주시더라~."

"외할아버지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신 거예요?"

"아버지야 장구 치고 북 치면서 노는 게 일이셨재. 남들은 독립운동하러 만주에 가던 시절에도 장구랑 북이랑 어깨에 짊어지고서 팔도 유람하며 만주까지 놀러 가신 양반이었응께.

집에 계신 날이 별로 없었지만, 그나마 계실 때도 어무이는 하루 종일 허리도 못 펴고 일하시고 계셔도, 아부지는 방에 누워계시다가 앉아계시다가 밥상 들어오면 드시는 게 전부였어야. 하다못해 쇠꼴 비고, 쇠죽 끓이는 일도 내가 다 했재 한 번도 안 해주셨당께. 장에서 송아지 사 오시고, 송아지 다 크믄 내다 파시는 일만 아부지가 하셨재"

"와~ 진짜 너무 하셨네요. 그럼 그렇게 열심히 소 키워 팔아서 어디에다 쓰셨대요?"

"나야 모르재. 한 번은 소 판 돈을 산 아래 판잣집 짓고 살던 동네 사람이 빌려달라고 해서 앞뒤 안 재고 냉큼 빌려줬다가 며칠 뒤에 야반도주해서 홀랑 날린 일도 있었단다. 얼마나~ 한참 뒤에 아부지가 광주에서 그 사람을 딱 마주쳐서 돈 받을라고 집에까지 따라가 봤더니, 사는 꼴이 하두 엉망이길래 걍 나오셨다고 하드라. 그 사람 이름 아직도 기억한다. 성은 모르겄고 팔만이었재~"

우연의 일치런가!
그때 마침 '6시 내고향'에서 시골 사는 노부부의 사연이 흘러나오는데, 농사짓고 소 키우고 하는 모든 일은 할머니 혼자서 하시고, 할아버지는 평생 니나노~ 하며 노는 게 일이신데 그 할아버지 성함이 최팔만이더라는~ >.<

* 사진은 펌 사진

소나무 갈비. 줄여서 소갈비
땔감창고. 일명 나무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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