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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Dec 04. 2020

코로나 극성기 수능날 단상

수능도 나 몰라라 못돼먹은 코로나

매년 11월 중순이면 우리나라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가슴 졸이고, 혹시나 교통지체로 지각할까 봐 출근과 등교시간도 미루고, 하늘을 나는 비행기와 헬기도 멈추고, 공사장의 굴착기나 이사를 위한 사다리차 이용, 리모델링 등 큰 소리 나는 것은 무조건 조심하며 배려해주는 날이 있다. 바로 수능시험 보는 날.

올해는 코로나 사태로 고3 개학이 미뤄지며 온라인 수업을 하다가 5월 중순에야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어 현격하게 공부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이유로 2주 가량 미뤄져서 12월 초인 12월 3일에 치러졌다.

우리 집도 고3 딸이 수능을 보기에, 새벽 일찍 준비해 도시락을 싸고, 아침 먹여서 차로 수험장에 데려다주는 즈음엔 왠지 모를 긴장감이 느껴졌다. 내가 이 정도인데 수능점수로 당락을 결정지어야 하는 수험생을 둔 집안은 어떨까 싶기도 하고, 문득 30년 전 친정엄마는 어떠셨을까? 궁금했다.

집에 돌아와 안부인사 겸 전화를 드리니,
요새 몸에 기운이 영 없으셔서 병원에서 영양제를 맞고 계시던 중이라 목소리에 힘이 없으셨다.

"엄마, 나 학력고사 보던 날 어떠셨어요?"
(30년 전에는 학력고사였고, 12월 중순에 시험을 봤다. 그리고 지원한 학교에 가서 봤다.)

"잉~ 그날? 하루 종일 너 시험 보는 교실 근처를 맴돌았재."

"교문 안으로 들어오실 수 있었어요? 학부모들은 못 들어오게 했을 텐데?"

"보통은 그란디 그때는 그냥 들어가게 해 주더라."

"그럼 저 시험 끝날 때까지 계속 그렇게 밖에서 기다리신 거예요? 날도 추운데?"

"시골서 올라왔응께 어디 가도 못하고 그래서 너 시험 보는 곳 주변을 뱅뱅 돌면서 있었재.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차 타고 왔다가 돌아가고, 남아 있는 엄마들은 몇 안 됐어야."

"점심은 어떻게 하셨어요?"

"옆에 뭔 매점인가 식당이 있어서 거그서 먹고, 점심시간 때 화장실에서 너 만나서 교실까지 따라가 떡인가 빵인가를 줬재. 기억 안 나냐?"

"히익? 저를 시험 중간에 만나셨다구요? 도시락 싸주셨을 텐데 따로 빵도 주시고? 전혀 기억 안 나는디요. 시험 끝나고 나가보니 엄마가 바로 고사장 앞에 계셔서, 데리러 오신 작은아빠랑 식당 간 건 기억나는데..."

"그날 니 작은아빠가 사준 음식은 내가 태어나서 젤로 맛있게 먹은 거다. 거 뭐냐 칼로 써는 음식이었는디~"

"아마 돈까스였을 거예요. 어디 레스토랑 가서 사주셨던 거 같아요. 우리가 생전 외식이란 걸 안 해봐서 맛있게 드셨나 봐요."

"생전 그런 데 가본 것도 처음이다. 내가 그 날 있었던 일은 잊어불도 안 해야~"

오래전 기억을 떠올려 말씀하시며 점차 엄마 목소리에 힘이 붙는 듯해 전화를 끊을 즈음엔 엄마 상태에 다소 걱정을 덜었다. 영양제 약발을 좀 받으신 건가? 건강하시던 시절의 좋았던 추억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광주 고모댁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사실상 엄마는 고3 엄마로서 내 도시락을 싸주신 게 학력고사날이 유일했다.(대신 해남에서 광주로 보내시는 찬거리나 물건을 싼 보자기에 꼭 손편지를 써서 응원하는 마음을 찐하게 보내주셨다) 나의 도시락을 위해 멀미도 심하신 분이 해남에서 서울까지 반찬거리 싸들고 올라오셨던지라 힘드셨을 텐데, 시험 보는 날 하루 종일 추운 바깥에서 어디 앉아있지도 못하시고 계속 시험장 주변을 도시며 나를 기다리셨다니 새삼 죄송하고 마음속에서 뜨끈한 뭔가가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같은 날 다른 학교에서 남편을 시험장에 들여보낸 우리 어머님은 어떠셨을까? 궁금하여 저녁 먹는 자리에서 여쭈었다.

"아이고~ 그날 일 생각하면 지금도 기가 찬다. 아침에 학교 앞까지 따라가서 시험 보고 나오면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텐께 그때 보자~ 하고 들여보냈는디 교문 앞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나와야 말이재."


"어머님도 교문 앞에서 하루 종일 기다리셨어요?"

"나야 일하러 가야한께, 종일 있진 못하고 나중에 끝날 시간쯤 돼서 다시 갔재. 그란디 분명히 교문 밖으로 하나 둘 나오다가, 나중에 쏟아지게 나오고, 아무도 안 나올 때까지 기다려도 아범이 도통 보여야 말이재. 요즘같이 핸드폰이 있길 하냐 뭐가 있냐. 핸드폰 진짜 잘 나왔어야. 연락할 방법이 없응께 계속 기다리다가 수위아저씨한테 학생들 아직도 남았냐고 물어본께 다 나가고 교실 문들도 다 잠갔다고 하시지 뭐냐?"

"세상에~ 그 정도면 한참을 기다리셨네요. 도대체 아범은 어디로 사라진 거예요?"

옆에 있던 남편이 거든다.

"사라지긴 어디로 사라져? 시험 끝나고 바로 집에 갔지."

세상 쿨~하다.

"넌 엄마가 기다린다고 했으믄 교문 나와서 찾아보기라도 해야재 그냥 집에 가부렀냐?"

"아이고~ 엄마도 참. 아침에 수험생이 무슨 정신이 있어요. 엄마 하신 말씀 하나도 귀로 안 들어와요. 기다리신단 말씀 들은 기억도 전혀 안 나고. 그러니 그냥 집에 갔겠죠~"

"난 그란 줄도 모르고 내내 기다리다가, 늦게사 니 아버지 오시길래 잠시 교문 앞에 있어보라고 하고 공중전화로 가서 집에 전화해봤재. 혹시나~ 하고. 그랬더니 집에서 천연덕스럽게 전화를 받드랑께."

"어이가 없으셨겠네요? 학력고사 볼 땐 12월 한 중간이라 어김없이 추웠잖아요. 저랑 같은 날 시험 봤으니 저도 기억하는데 정말 추운 날이었어요."

"어짜겄냐, 이미 집에 들어갔다는디. 그래서 우리도 집에 가자고 아버지한테 말했더니 술 한 잔 하고 가자고 그라네? 안 간다고 그라믄 또 난리가 날 거라 따라갔재. 하루 종일 발 동동거리며 아들 학교 데려다주고, 일 부랴부랴 끝내고 와서 학교 앞에서 몇 시간을 기다린 것은 난디, 자기는 시험 끝나고 느지막이 와선 뭐 한 것이 있다고 술을 자시나 모르겄어. 지금이야 나도 가끔 술 한 잔씩 하지만 젊었을 땐 술이라곤 입에도 안 대고 살았는디... 근처 술집 들어가서 아버지 혼자 술 마시고, 난 그 앞에 가만히 앉아있다가 왔재.
거뿐이냐? 나중에 아범 합격했다고 한께 주변 사람들한테 좋은 대학 붙었다고 또 술을 거하게 얻어먹고 다녔재."

"원래는 아들 합격했으니 아버님이 사야 하는 술 아니에요? 근데 거꾸로 얻어드셨네요."

"ㅎㅎㅎ 그랑께 말이다. 술 얻어먹는 재주는 비상하신 분이었당께~"


딸은 예비소집하던 날 같이 간 친구랑 시험 끝나고 근처 카페에 놀러 간다고 해서, 난 데리러 갈 생각은 안 하고 집에서 스탠바이 상태로 딸의 연락을 기다렸다.

그러는 동안 사건이 터졌다. 수능날이라고 한국 국민들은 수험생을 위해 더욱 조심하고 배려했지만, 코로나 19에게 배려란 눈꼽만큼도 없었다. 오히려 더욱 기승을 부렸다.

유난히 긴급안내문자가 자주 날아오고, 교육청이랑 학교에서도 문자가 수시로 온다 싶더니만 수능 시험 보는 날 기준으로, 우리 동네 확진자들이 빵 터지는 바람에 잘 다니던 마트, 약국, 병원, 가게, 식당에 확진자 동선이 쭈욱 깔려 있었다. 시간대를 확인해보니 다행히 확진자가 머문 시간이나 날짜엔 우리 가족이 그곳에 가진 않았다.

그랬는데 뜻하지 않은 곳에 복병이 있었다. 아들이 매일 다니는 영어학원 선생님 한 분이 오늘 확진자가 되었다는 전화를 받은 것이다. 설마 아들도 선별진료소에 가야 하나 걱정했는데, 아들 담당 선생님이 아니신 데다 몸이 안 좋다며 화요일부턴 학원에 안 나오셔서, 월요일에 아들과는 잠시 인사하며 마주친 게 전부라 밀접접촉자는 아니라고 했다. 다행이긴 했지만 혹시 모르니 지켜보며 조심해야 할 상황이었다.

당분간 학교도 안 가고 학원도 안 가게 돼서 신이 난 아들은 입이 귀에 가 걸렸다. 자기는 이제부터 방에 콕 들어가 박혀있겠다며 폰 들고 희희낙락 자체칩거에 들어갔다. 그 와중에도 오늘 머리가 좀 아팠는데, 저도 코로나 걸린 게 아닐까요? 보건소에 가서 검사받아야 할 거 같은데~ 하며 허파 뒤집어지는 소리를 해서 일단 집에 있어보면서 상황을 보자고 해두었다.

가까이에서 코로나 확진자 나왔다며 세상 신나서 있다가, 혹시 자기도 걸린 게 아닌가 걱정하는 모습에 키만 컸지 속은 여전히 아이 같은 아들을 보며 웃음이 나왔다.

딸도 시험 끝난 뒤 폰을 통해 코로나소식을 접하곤 밖에서 놀기 어렵겠다 판단하곤 친구와 함께 버스 타고 집으로 와서 저녁을 먹었다. 알고보니 바로 이웃한 학교에서 수능시험 감독하실 선생님이 코로나에 걸린 것을 수능 전날 자정 무렵에야 알게 돼서, 그 학교는 한밤중에 부랴부랴 방역하고, 함께 근무하시던 선생님들 중 접촉한 수능감독 31분이 한꺼번에 자가격리 들어가시게 돼서 오늘 아침에 갑자기 수능시험 감독을 바꾸느라 난리가 났단다. 바로 옆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져 학교에선 안전문자를 계속 보내고, 다들 몸을 사리는 판이니 놀고 싶어도 놀 수 없는 상황. 코로나만 아니면 수능 끝난 기념으로 실컷 놀 텐데,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모든 게 예년 같지 않고, 모든 게 올 스톱! 이래저래 참 짠한 코로나 세대가 됐다.


시험은 수학 빼곤 풀만 했다고 하는데, 결과가 어찌 될런지... 큰 기대는 안 하지만 그래도 그런 말에 기대가 되는 건 또 뭐란 말인가. 시험문제 분석하는 뉴스를 보니, 올해 국어는 작년 수준, 영어는 좀 쉬웠고, 수학이 다소 어려워졌다고 한다.

수능날이지만 시험에 대한 염려와 긴장보단 코로나로 더 걱정을 했던 하루가 그렇게 저물었다. 3년 뒤 아들과 함께 겪어낼 수능날은 또 어떠할까. 어머님 아들의 교훈을 받잡아 난 그때도 교문 앞에서 시험 끝나길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구르지는 않을 것이다.^^


비말차단 칸막이때문에 좁아서 시험지 볼 때 불편 --;;
오른쪽. 자가격리나 확진자 수험생 시험감독관 복장이 저렇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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