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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Dec 08. 2020

나야 모르재~

장마철 속담

*  지난 여름 7월 말일에 썼던 글입니다.


2020년 7월 30일 새벽의 비는 정말이지 대단했다. 대전은 어지간해서 자연재해가 거의 없는 편인데 7월 30일 안팎으로 내린 비로 비피해가 엄청 났다.

대전 서구 정림동의 한 아파트에서는 장대처럼 쏟아지는 비에 아파트가 고립되어 주민 10여명이 보트를 타고 온 소방대원들에 의해 구조되기도 했다. 대전에서는 2명이 숨지고, 아파트 28세대·주택 85세대·차량 55대가 침수되는 피해가 났다. 많은 비로 하천 수위가 상승하면서 금강홍수통제소는 대전 갑천 원촌교·만년교 지점에 홍수 경보를 발령했고, 선로가 침수되거나 선로에 토사가 유입되면서 대전 일대를 지나는 열차 운행이 최대 1시간 지연되었다.

아침이 되자 다소 기세가 꺾인다 싶더니, 7시 무렵
학교 가고 회사 갈 시간에 다시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의 기세가 심상치 않은데다 개울 하나를 넘어가야 하는 딸이 걱정되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학교까지 딸을 태워다줘야했고, 남편은 평소같으면 하천 옆 굴다리 아래 지름길로 10분이면 갈 회사를 물로 넘쳐나는 도로를 피해 우회해서 가느라 30분 정도 더 빨리 나서야 했다.

6월 말에 장마가 시작되어 예년보다 이른 장마였음에도 그동안 비다운 비가 안 내리다 7월 말에 이렇게 왕창 비가 쏟아지니 새삼 장마에 대한 정보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러다 눈에 띈 장마 관련 속담들이 재밌었다.

- 오뉴월 장마는 개똥장마다.

오뉴월 장마는 피해를 입히기도 하지만, 동시에 약간의 쓸모도 있다는 뜻이다. 속담이 만들어진 시기를 따져보면 음력을 쓰던 조상들의 생활습속에 따라 여기에서 말하는 오뉴월은 음력이고, 따라서 양력으로 따지면 육칠월이다.

이때는 장마철이니 비가 흔하다. 또 장마인 까닭에 대개는 수해를 가져오므로 오뉴월 장마는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오뉴월 장마가 시작되기 직전, 농촌은 가뭄에 시달리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가뭄 속에 쏟아지는 장맛비는 가뭄이 든 들판에 아주 좋은 해갈이 된다. 그런 점에서 오뉴월 장마는 언제나 수해를 일으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 농사에 아주 요긴하게 쓰이기도 한다. 이처럼 하잘 것 없고 종종 피해를 입히는 것일지라도, 때로 약간의 도움이 되기도 하는 사물이나 사람을 이르는 말로 쓰이는 속담이다.


​- 유월 장마는 쌀 창고, 칠월 장마는 죽 창고

음력 유월에 지는 장마는 쌀농사에 필요하지만, 음력 칠월에 지는 장마는 해롭다는 뜻이다.
유월에 드는 장맛비는 늦은 모심기나 논에 물을 대기 위해 필요하지만, 벼이삭이 필 무렵인 칠월에 드는 장마는 벼에 크게 해롭다는 것을 ‘육칠월’과 ‘쌀죽’의 대조법을 사용해 간명하게 표현하였다. 실제로 입추 넘어서 비가 자주 오면 벼가 단단하게 익지 않고 푸석푸석해진다고 한다.

- 칠월 장마는 꾸어서 해도 한다.

칠월에는 으레 장마가 있게 마련이라는 의미의 속담이다. 그러므로 장마를 두려워하지도 말고 피하려고도 하지 말며 장마가 올 것을 대비하라는 말이다. 이 말을 우리의 일상생활에 비유한다면, 어려운 여건만 탓하지 말고 으레 닥칠 일에 각오를 다짐하라는 것이다. 일년 중 상반기를 보내고 하반기를 맞이하면서, 머지않아 곡식이 무르익는 팔월이 올 테니 희망을 가지고 칠월 장마를 무사히 이겨내라는 말로 받아들이면 되겠다.

오~ 이런 뜻이구나 하면서 읽다가 딱 꽂힌 속담!

'장마 도깨비 여울 건너는 소리한다.'

잘 알아듣지 못하게 뭐라뭐라 궁시렁대는 것을 핀잔 줄 때 하는 말이라고 한다. 표현이 재밌어서 식탁에 마주 앉은 어머님께 이 속담에 대해 여쭤보았다.

"어머니~ 장마 도깨비 여울 건너는 소리한다는 속담 들어보셨어요?"

"아니~ 잘 모르겄다. 그런 속담도 있대?"

"찾아보니 있더라구요. 도깨비가 장마철에 물이 불어난 여울을 건너면서 궁시렁궁시렁 알아먹도 못할 말을 하나봐요. 도깨비가 물을 싫어할까요?"

"글쎄다. 도깨비가 물을 싫어하나?"

"우리가 자주 하는 말 중에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있잖아요. 그거랑 비슷한 속담 같아요. 쓸 데 없는 소리 하고 있으면 핀잔주면서 이 말 하잖아요. 그런데 왜 귀신이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할까요?"

"생각해 봐라~ 나락을 손으로 까먹을라믄 무쟈게 귀찮고 나쁘겄지야? 그랑께
오죽 구시렁구시렁댐시롱 먹겄냐?"

"하긴 그렇기도 하겠네요. 근데 왜 그냥 나락도 아니고 씨나락을 까먹는다고 했으까요?"

"나야 모르재~"

"옛날엔 곡식 추수하면 씨앗으로 쓸 옥수수, 감자, 마늘 같은 거 따로 두었잖아요. 그럼 씨옥수수, 씨감자, 씨마늘이 들어간 속담도 있어요?"

한알 한알 옥수수를 손가락으로 뜯어서 드시던 어머님께서 곰곰 생각하시더니 말씀하신다.

"모르겄다..."

어쩌다보니 어머님 어휘력 검사를 하고 앉았는 며느리꼴이 되었다. 어머님이 겉으로 말씀은 안 하셨지만, 속으로는

'벨란거를 다 물어싼다! 내가 속담 만든 사람도 아닌디, 어찌께 다 알겄냐?'

하시지 않았으려나~^^

딸이 등교후 교실에서 찍은 천변풍경
오후 7시 물이 빠진 뒤의 천변
수초투성이가 되어버린 학교 앞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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