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눈이 잦다. 작년엔 눈이 귀해서 그렇게도 눈을 바랐지만 눈이 자주 오니 이제 슬슬 눈이 오는 게 겁날 정도다. 어제 저녁 9시 전만 해도 말끔했던 하늘이 뉴스를 보는 30분 동안 후다닥 내린 눈으로 세상을 하얗게 만들더니 밤새 쉬지 않고 눈이 내렸나 보다. 창틀 위에 소복이 쌓인 눈이 그 사실을 알려준다. 동네도서관에 오늘까지 반납할 책이 있어서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도 걸을 겸 새벽 산책에 나섰다. 부지런한 경비아저씨들이 아파트 곳곳의 눈을 치우시는 소리가 들려온다. 평소같으면 5시까지는 쉬는 시간이실 텐데, 눈이 더 쌓이기 전에 치우시느라 새벽 4시에도 일을 하시는 듯하다. 감사한 마음으로 도서관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반납해야 할 책의 무게가 꽤 나가서 어깨가 묵직한데다, 날이 정말 추웠다. 날씨앱으론 영하 9.9도이지만 눈보라까지 휘날리면 체감온도는 영하 20도. 큰 도로는 차들이 왕왕 다녀서 눈위에 길이 나 있고, 아마 구청에서 제설을 위한 염화칼슘도 뿌려놓아서인지 눈이 좀 녹아있었지만 도로 옆의 인도나 공원 산책로엔 완전무결의 깨끗한 새 눈이 소담스럽게 쌓여있었다. 뒤돌아보면 내 발자욱뿐. 도서관 반납함에 책을 넣은 뒤 홀가분해진 몸으로 본격적인 사진찍기에 돌입했는데, 장갑을 벗고 사진을 찍는 잠깐 사이에도 어찌나 추운지 손이 깨질 것만 같았다. 이 추위를 밖에서 지내야 하는 분들은 어떻게 방한을 하실런지 걱정이 됐다. 코로나로 움츠러든 세상이 추위로 더욱 움츠러들 텐데... 글을 쓰기 위해 노숙자센터에 계신다는 한 작가님을 떠올렸다. 그 분의 글이 노숙자들에 대한 사회의 시선을 좀더 따스하게 만들어주기를 소망해 본다. 소망을 담은 하얀 달이 하늘 가운데 두둥실 뜬 채 눈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복에 기모바지, 점퍼도 두 개를 겹쳐입었는데도 온 몸을 달달 떨게 만드는 추위를 이겨내며 30여분간 동네 이곳저곳의 설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드디어 집 앞 도착. 현관을 들어서니 나랑 비슷한 시각에 잠이 깬 딸이 기다리고 있다가 따뜻한 차를 끓여주었다. 디저트아일랜드 티의 향기로움이 차가운 새벽을 녹인다. 추위에서 나를 지켜줄 따스한 집이 있다는 사실이, 엄마를 위해 차를 끓여주는 딸이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감사한 새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