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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Oct 15. 2020

워낭소리 그후...

경북 봉화 워낭소리 공원과 소무덤

영화 개봉된 지 11년이나 지나서야 어머님과 함께 영화를 보며 다 늙은 소한테 해도 너무 한다며, 저건 명백한 동물학대라고 마구마구 성토를 하는 고부간을 보다못해 남편이 한 소리 했다.


"아, 할아버지 할머니도 다 돌아가시고 감독도 저 영화 찍은 뒤로 안 좋은 일만 생기다 병까지 걸려서 만사가 다 꼬였구만 왜 이제서야 난리람~"


그러더니 급기야 일요일에 경북 봉화 워낭소리 공원에 데리고 갔다. 봉화군 상운면 하눌리.

영화 속 최원균 할아버지의 집앞에 널찌막하게 조성된 워낭소리 공원은 영화내용을 간단히 추려내서 꾸민 화강암재질의 벽화가 맨 위쪽에,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가는 할아버지의 조형물이 중앙에 마련되어 있었다.

공원에서 마을길을 따라 200m쯤 위로 올라가면 할아버지댁이 있는데, 할아버지는 2013년에, 할머니는 2019년에 별세하셨고, 현재 남아있는 집은 아들로 추정되는 사람이 그림 그리는 곳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소의 무덤은 공원에서 600m가량 떨어진 반대편 산 아래 있었는데, 그곳에 두 분의 묘소도 나란히 함께 있었다. 소를 기념해 만든 비석에 소의 생몰연대가 1967~2008년으로 나와있고 할아버지와 30년을 함께 했다는 기록을 보고, 소가 나보다 먼저 태어났다는 사실과 할아버지가 이 소를 이미 한창 때가 지난 열 살 무렵에 사셨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소의 평균 수명은 15년) 영화에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산비탈 밭에서 감자를 캐는 분들이 몇 분 보일 뿐 일요일 오전의 하눌리는 조용하기 이를 데 없는 평범한 농촌마을이었다.


평생 농사를 지어왔던 여든 넘은 촌로와 삼십 년간  동고동락한 마흔 살 소의 인연과 이별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는 2009년 1월 개봉해 293만4700여명의 관객을 모으며 독립영화로는 기적같은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워낭소리’의 기적은 쇠락한 고향의 산하와 아버지의 삶을 다루고 싶다는 이충렬감독의 열망에서 출발해 10여년간 자신의 영혼을 다바쳐 이룬 결과였다고 한다. 이 감독에겐 영화 속 할아버지처럼 전남 영암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자식들을 뒷바라지한 아버지가 계셨다. 독립 방송 PD로서 한번도 자랑스러운 아들인 적이 없던 이 감독은 ‘워낭소리’로 뒤늦게 성공을 맛보았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영화는 숱한 사람들에게 눈물어린 감동을 선사하며 커다란 성공을 가져왔지만 예기치 않았던 성공이 가져다준 행복은 너무도 짧았고, 기나긴 고통이 시작되었다.


흥행수익을 둘러싼 제작자와 감독의 갈등이 커져 소송까지 벌어졌고, 영화의 주인공인 할아버지에겐 돈을 달라는 재소자의 협박편지가 날아오는가 하면, 끊임없는 사생활침해가 이어졌다. 영화 촬영지와 소무덤이 명소로 떠오르고 할아버지가 유명인사가 된 이후, 봉화군청이 나서서 추진한 무리한 관광상품화가 사생활을 무분별하게 침해하는 문제를 낳았던 것이다. 거기다 영화로 인해 자식들이 마치 불효자처럼 오해받은 것이 노부부에겐 마음 속 큰 응어리로 남고 말았다.


"너무 잘 돼서 모두가 쓸데없는 욕심이 생기고, 나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차라리 영화로 상영되지 않았더라면 지금과 같은 고통과 불행은 없었을 겁니다. ‘워낭소리’ 만든 것을 후회합니다. 친구와 지인에게 돈 다 뺏기고 지금 집도 월세에요. 정말로 원치 않게 봉화군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 삶을 건드려서 피해를 줬고 그들의 자식들에겐 불효자 소리를 듣게 했습니다.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제가 평생 지고 갈 짐이죠. ”


영화 개봉 뒤 2년 동안 스트레스와 울화병으로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다가 뇌종양 판정을 받고 투병중이던 이 감독을 2011년 8월에 인터뷰한 내용이다. 뇌종양 판정 전에 만들기 시작했던 새 영화 '매미소리'는 제작이 중단되었다가, 워낭소리 개봉 10년만인 2019년 9월에 크랭크인에 들어갔다.


영화 '매미소리'는 전라남도 진도 지방에 전승되어 오던 상여놀이를 하는 다시래기꾼 무형문화재 전수자가 되고자 가족까지 외면하는 고집스러운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엄마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로 가득 찬 딸을 주인공으로 해서 삶과 죽음을 사이에 두고 비로소 서로를 마주하게 되는 가족간의 깊은 상처와 치유의 이야기를 그릴 거라고 한다.


이번엔 등장인물들이 모두 전문배우들이어서, 영화가 또 대박흥행을 한다해도 최할아버지가 겪었던 사생활 침해와 오해, 협박들은 벌어지지 않을 거라 다행이다 싶다. 동물이 등장하지 않아서 더욱 다행이고. 뇌종양을 이겨내고 10년간 꾸준히 준비해온 이충렬 감독의 차기작이 전작의 굴레를 벗고 끝까지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란다.


워낭소리 흥행 이후 관련인물들이 겪었던 고통은 참으로 안타까웠다. 그러나 한편으론 말 못하는 소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정작 감독도 할아버지, 할머니도 미처 깨닫지 못한 동물학대에 대한 벌이었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비약이 심할까? 싶기도 했다.


죽기 전까지 죽어라 일만 했던 누렁이의 평안을 다시금 빌어본다. 그 옆에 잠드신 노부부도 부디 저세상에서 평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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