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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Oct 15. 2020

마음까지 청량해지는 청량사

청량하기 이를 데 없는 봉화 청량사

언젠가부터 청량사가 가고 싶었다.


6월 어느 더운 날 영화 '워낭소리' 촬영지를 찾아 경북 봉화를 찾았을 때, 내 머릿속엔 20년 전 대학 새내기시절 농활(농촌봉사활동)을 갔던 수비면의 한 산골동네가 계속 떠올랐다.


최원균 할아버지댁과 소무덤을 찾아보고난 뒤 그곳을 다시 찾아가볼까 싶어 아무리 지도를 살펴도 20년전 일주일가량 지냈던 그 곳이 도대체 어디쯤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봉화군 수비면이라고 알고 있었던 곳도 다시 찾아보니 영양군 수비면이었다. 농활이 끝나고 와서도 1년 넘게 그 동네 어린 학생과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수비면만 기억에 남고 봉화인지 영양인지도 헷갈린 모양이었다.


수비면을 찾느라 봉화 여행지도를 구석구석 살피다 눈에 들어온 것이 청량산 자락의 청량사였다. 날씨도 마음도 답답하던 그 날, 그곳을 찾아가면 왠지 마음이 트일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날은 영주로 발길을 돌리느라, 그렇게 처음 알게된 청량사를 마음에만 담아두었다.


그러다 우연히 보게된 청량사 풍경사진 한 장이 8월 초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다. 비가 지나간 자리에 운해가 살짝 걸린 산자락에 반가사유상이 있는 절의 풍경이.


안동시내를 거쳐 안동호반을 돌고돌아 드디어 도착한 청량산 입구에선 발열체크를 하고 있었다. 가느다란 비단올처럼 떨어지는 청량폭포를 지나 절입구에 마련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오르기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기나긴 고행이 시작되리라 생각도 못 했다. 청량산과 청량사 입구는 동일한데 입구에 등산안내와 함께 절대 차로 올라가지 말라고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어 안내문대로 했건만 그렇게 가파른 길을 걸을 줄이야!
미리 알았다면 아마 지레 포기했을지도 모를 만큼 멋드러진 일주문 뒤로 가파른 산길이 계속되었다.


마침 전날 비가 와서 불어난 계곡물이 마치 폭포수가 쏟아지는 것처럼 장쾌한 물소리를 내며 흘러내리고 있어, 깎아지른듯 경사가 높은 산길이 언제쯤 끝날까 생각하며 하염없이 걸어서 오르는 동안 눈과 귀가 즐겁고 시원한 산바람을 쐬며 오를 수 있어 다행이었다. 절 바로 입구의 계곡물은 어찌나 세찬지 그 앞에 있으니 에어컨바람을 마주한 듯 했다. 땀 흘리며 30분쯤 오르고 오르니 드디어 삐죽이 보이는 청량사! 이리 반가울 수가~^^


경북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에 있는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때인 663년에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창건했으며,

청량산 도립공원 내 연화봉 기슭 열두 암봉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청량산에는 원효대사가 우물을 파 즐겨마셨다는 원효정과 의상대사가 수도했다는 의상봉, 의상대라는 지명이 남아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청량사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암자 33개가 있어서 당시 신라 불교의 요람이라고 할 만큼 매우 큰 절이었으나 조선시대에 와서는 숭유억불 정책의 영향으로 유리보전(경북 유형문화재 47)과 응진전만 남은 채 피폐해졌다고 한다.


법당에는 동방의 정유리세계를 다스리는 약사여래불을 모셨다는 뜻으로 공민왕이 친필로 쓴 유리보전(琉璃寶殿)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에 머물렀던 인연때문이라 한다. 청량사의 주불전인 유리보전 안에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종이로 만든 지불(紙佛)인 건칠약사여래좌상(보물 제 1919호)이 있다.

건칠약사여래좌상은 흙으로 형태를 만든 뒤 그 위에 삼베를 입히고 칠을 바르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해서 일정한 두께를 얻은 후 조각하여 만든 건칠불상이다. 종이로 만들어 그 위에 금칠을 해서 만들 불상이라서 '지불'이라고 한다는데, 삼베로 만들어진 게 왜 '지불'일까? 설명을 읽으며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에 대한 이해를 도울만한 정보가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페친 한만교님에 따르면... 삼베가 왜 지불(종이부처)의 원료가 됐는가는.. 종이가 나무의 섬유로 만들어지고, 대마)도 종이의 원료중 하나이며, 삼베옷의 원료이기도 한 탓같은 원료(식물섬유)의 종이라는 공통점때문 아닐까 하신다는데 개인적 견해일 뿐이라고 한다. 나중에라도 정확히 알게 되면 내용에 첨부하려 한다.


이 불상은 오래전부터 청량사 유리보전의 주불로 봉안되어 온 것으로 추정되며, 엄숙한 상호, 당당하고 육감적인 양감, 균형 잡힌 신체, 탄력과 절제된 선묘 등에서 석굴암 본존불 계통의 통일신라 전성기 불상의 양식계통을 따르고 있다. 불상의 초창기 기록이 확인되지 않아 정확한 제작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두 차례에 걸쳐 실시한 바탕층 삼베에 대한 방사선탄소연대 측정 결과 770~945(1차 중간 층 : 900-945, 2차 마감 층 : 칠 제거 전 770년/칠 제거 후 780-870)으로 도출되었다. 이는 930년경으로 추정되는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과 더불어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건칠불상임을 알려주어, 우리나라 불교조각사에서 중요한 위치와 의미를 갖는 불상으로 평가된다.


약사여래불을 중심으로 좌측엔 문수보살, 우측엔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는데 현재 문수보살은 개금불사 보존처리중이라 자리를 비우셨다. 이곳에서 지극정성으로 기원하면 병이 치유되고, 소원이 성취되는 약사도량이라고 한다. 유리보전 아래 지장전에는 목조지장보살삼존상이 모셔져있는데, 이 또한 보물 제 1666호이다. 현존하는 16세기 불상 가운데 종교성과 조각적 완성도를 두루 갖추었다고 한다.


절이 있는 청량산에는 김생(金生)이 공부하던 김생굴과 공민왕당, 퇴계 이황이 즐겨 머물며 수학하던 정자 오산당이 있다. 지장전 아래에는 오래된 소나무가 한 그루가 서 있다. 특이하게도 가지가 세 갈래로 뻗어나가 '삼각우송'이라 불린다. 청량사를 지을 때 필요한 재목이며 물건들을 옮겨다준 뿔 셋 달린 소가 밤낮없이 일을 하다가 청량사 완성 하루 전에 생을 마쳤는데, 이 소는 지장보살의 화신이었다. 원효대사는 이 소를 지금의 소나무 자리 아래 묻어주었고, 그곳에서 가지가 셋인 소나무가 자라났다고 한다. 이 소나무와 오층탑이 어우러진 모습은 가히 청량사의 압권이라 할만큼 멋진 풍경이었다.


삼각우송 앞에 전망대처럼 뻗어나간 곳에 오층석탑이 마련되어 있고, 그 아래 부처님이 계셔서 불공을 드리게끔 되어 있는데 그곳에서 바라본 풍경은 그야말로 가슴이 뻥 트일만큼 시원스러웠다. 부처님 손바닥 위에 누군가 올려둔 시주쌀봉지가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유리보전을 중심으로 이 삼각우송의 대각선 방향에 나를 청량사로 이끌었던 반가사유상이 있다. 신라시대에 지어진 사찰이란 의미에서 후대에 마련한 게 아닐까 싶은데, 좁은 골짜기가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에 무연히 앉아서 삼매경에 빠진 반가사유상의 모습은 무척이나 이채로웠다.


그리고 청량사 곳곳에 심어서 잘 가꾸어진 채송화.
채송화는 마당의 한켠이나 담벼락 아래 주로 심는 여름꽃으로 고무신, 솥단지, 지게, 깨진 항아리, 다반 등 다종다양한 화분에 채송화를 심었는데, 이렇게 많은 채송화를 본 적이 없었다. 채송화의 꽃말은 청순가련, 순진, 천진난만이라고 하니 동자승이 떠오른다. 그래서 채송화꽃밭 한가운데 동자승 조각이 있었는지도~

청량사 바로 뒤에는 청량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보살봉이 있다. 청량사가 내청량이라면 응진전은 외청량이라고 한다. 금탑봉 아래 응진전은 의상대사가 683년에 지은 것으로 원효대사가 머물렀으며, 청량산에서 가장 경관이 수려한 곳이라고 하는데 이번엔 아쉽게도 가보지 못했다.


범종각과 전통다원인 안심당쪽으로 해서 내려오는 길엔 나무, 화강암, 기왓장을 활용한 다채로운 물받이가 있어서 기억에 남는다. 시원한 계곡바람을 맞으며 내려가는 길은 올라가며 흘린 땀과 함께 온갖 시름도 몸밖으로 빠져나간 듯 개운했다. 청량사에서 30분 가량 떨어진 곳이지만 장비를 갖춰야만 오를 수 있다는 하늘다리와 경관이 가장 아름답다는 응진전을 찾기 위해 다음에 한 번 더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록 청량산 꼭대기까지는 못 갔지만, 조선 중기 성리학자로 1543년 풍기 군수로 재직하며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 서원(현 영주 소수서원)을 세운 주세붕의 '등청량정'이란 한시를 떠올리며 길고 긴 내리막길을 내려왔다.


登淸凉頂(등청량정)/ 周世鵬(주세붕)


我登淸凉頂
아등청량정

兩手擎靑天
양수경청천

白日正臨頭
백일정임두

銀漢流耳邊
은한유이변

俯視大瀛海
부시대영해

有懷何綿綿
유회하면면

更思駕黃鶴
갱사가황학

遊向三山嶺
유향삼산령


< 청량산 정상에 올라 >


청량산 꼭대기에 올라
두 손으로 푸른 하늘을 떠받치니

햇빛은 머리 위에 비추고
별빛은 귓전에 흐르네.
아래로 구름바다를 굽어보니
감회가 끝이 없구나.
다시 황학을 타고
신선세계로 가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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