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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Feb 08. 2021

내 마음의 작은 숲, 리틀 포레스트

경북 군위 여행 1

같은 장소를 그것도 3주 간격으로 두 번이나 찾은 곳은 이곳이 처음이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촬영지인 경북 군위군 우보면 미성 1리(미성 5길 58-1)

3주 전 남편이 갑자기 돌담길과 군위댐을 보러가자며 처음 군위를 찾았던 날, 군위 곳을 들른 뒤 마지막에 간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해가 지고 어두워진 저녁에서야 도착해 아무래도 영화에서 봤던 장면들을 제대로 눈에 담지 못해 아쉬운 점이 없진 않았지만 다시 가게 될 줄 몰랐다. 남편이 뒤늦게 영화를 본 덕이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2018년 2월 개봉당시 역주행 흥행성적으로 기사를 타기도 했지만, 같은 해 여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미스터 선샤인'의 주인공 고애신 역의 김태리가 주연을 맡은 덕분에 그 뒤로도 꾸준히 사람들이 찾는 영화가 됐다. 요즘엔 배우 류준열의 인기도 한몫 거드는 듯하다.

나는 군위에 가기 전에 영화를 두 번 봤고, 처음 군위 다녀온 뒤 남편과 또 한 번 봐서 도합 세 번을 봤다. 남편은 내가 왜 그곳에 가자고 했는지도 모른 채 갔다가, 이번에 영화를 보고난 뒤에야 갑자기 제대로 보고 싶다며 지난 주말에 다시 가게 된 것이다. (영화 보는 내내 저 꽃이 뭐냐, 저 음식 맛있겠다 언제 만들어 줄 꼬얌, 저건 왜 저렇게 만드냐 등등 어찌나 말이 많은지... 세 번째 보는 영화였으니 망정이지 귀에 피날 뻔)

이 영화는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해서 일본에서는 이미 1, 2편으로 나뉘어져 영화화가 되었으며 국내에선 임순례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임용고시 준비를 하며 틈틈이 알바를 하면서 제대로 된 밥 한 끼 먹지 못한 채 살던 혜원은 고단한 도시의 삶에 지쳐 고향으로 내려온다. 이유는 너무 배가 고파서. 혜원은 텃밭과 집 주변의 사계절 자연 속에서 얻은 제철 재료로 자신만을 위한 요리를 만들어 먹으면서, 오랜 친구인 재하와 은숙을 만나 몸과 마음의 허기를 채워간다. 그렇게 1년이 흐르면서 오래 전 수능 끝난 겨울, 편지 한 장 달랑 남겨두고 자신을 떠난 엄마에 대한 기억을 되짚어보며 차츰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병든 아빠의 요양차 내려왔던 이곳에 아빠가 돌아가신 뒤에도 서울로 가지 않고 남은 이유가 혜원이 살아가면서 힘들 때마다 떠올리며 위로가 되고, 힘이 되줄 곳을 만들어주기 위해서였음을, 엄마의 상처를 치유하던 작은 숲이 혜원에게도 필요할 것을 엄마는 오래전 알았던 것이다.

영화를 보는 동안 영화속 아름다운 자연과 맛있는 음식들에 몰입되어 마음 속 근심걱정이 사라져버리는 힐링드라마이기에 그런 감동을 선사한 장소를 사람들이 꾸준히 찾는 게 아닌가 싶다.

노란 산수유꽃과 연분홍 사과꽃이 피는 봄, 싱싱한 초록잎들이 물결치는 너른 논과 별이 쏟아지는 개울에서 다슬기를 잡는 여름, 황금빛 들판을 자전거로 가로지르다 알록달록 물들어가는 단풍 든 숲에서 밤을 줍는 가을, 눈이 소복하게 내려서 오구가 컹컹 짖는 눈부시게 하얀 겨울. 계절별로 모두 아름다운 곳인데 우리가 찾은 때는 겨울, 눈이 내리지 않은 볕 좋은 날이라 근처를 둘러보며 산책하기엔 좋았지만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이 아쉬움 때문에 앞으로 이곳을 몇 번 더 찾게 될 것 같다.
'미스터 선샤인'에서 고애신(김태리 분)이 머무른 곳으로 나온 예천 초간정을 계절별로 모두 찾아가보고, 근처 갈 때마다 찾는 것처럼.

한적한 시골마을의 중심지인 미성리마을회관에서 좀 비껴나서 작은 산 아래 위치한 혜원의 집은 촬영당시 쓰였던 소품들까지 그대로 자리를 지킨 채 정갈하게 관리가 되어 있고, 방문객들이 무료로 탈 수 있는 몇 대의 자전거가 대문 옆 오구가 머물던 헛간 안에 비치되어 있다. 2인용 자전거도 있어, 연인끼리 가족끼리 함께 타고 미성리 마을의 잘 닦여진 시골길을 달리며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다. 심지어 공공와이파이도 된다. 집 들어가는 초입에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고, 화장실은 헛간 바로 뒤에 재래식 화장실이 있긴 하나 문이 없어서 미성리마을회관 옆으로 돌아가면 달려있는 화장실을 추천한다.
마을회관 앞의 길동교를 건너서 오른쪽으로 30m쯤 가면 오구 조형물이 놓인 벤치가 있다. 처음 이곳을 찾았던 날은 저녁이어서 이 벤치를 둘러싼 노란 빛이 참 인상적이었다. 노란 빛은 벼모양의 조명등에서 나온 불빛이었다. 저녁에 보면 따스한 불빛이 참 근사하다.

보통은 이곳을 둘러본 뒤 바로 영화 촬영지 중 하나인 '화본역'으로 바로 가는데, 들판 한 가운데 350년 된 왕버드나무도 꼭 들러보길 바란다. 영화에서 봤을 때나, 멀리서 봤을 땐 느티나무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왕버들이었다. 이렇게 오래된 버드나무는 진짜 보기 어렵다. 수백 년 세월을 버티며 용틀임하듯 비틀리며 자라난 줄기에서 쭉쭉 뻗어나간 가지들이 멋졌는데, 한 군데도 상한 데 없이 건강한 나무였다.

한 가지 안타까웠던 점은 마을 한복판에 있어서 정자수 역할을 하고 있다보니 나무 바로 아래 주민들 쉼터와 간이화장실을 만들어놨는데, 그게 일반적으로 흔히 보는 정자가 아니라 판넬로 만들어진 네모난 사무실 같은 형태였다. 보호수로 지정된 이 귀한 나무 아래 이렇게 볼썽사나운 건물을 지었어야 했나 싶었다. 게다가 냄새나는 화장실까지... 주민들의 감성이 좀 안타까운 현장었다.


* 3주 전 저녁에 찍은 사진은 맨 아래 올렸습니다.

#리틀포레스트 #군위여행 #김태리 #왕버들 #류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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