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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Feb 09. 2021

그림처럼 아름다운 화본역

경북 군위 여행 2

내 어릴 적 로망 가운데 하나는 기차 타고 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 칙~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기차소리 요란해도 아기아기 잘도 잔~다~"는 노래를 부르며 자란 때문인지, 동화나 소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기차에 대한 설렘때문인지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픈 열망이 나의 키와 함께 자랐다. 집 주변에 기차역도, 기찻길도 없는 남도 바닷가 농촌에 살았던 내가 실제 기차를 처음으로 접한 것은 고등학교를 광주로 가고나서였다.

광주에 살면서도 기차를 탄 적은 학교에서 영산포로 소풍을 간다거나, 대학탐방을 위해 서울에 올라갔던 때가 전부였다. 본격적으로 기차를 타게 된 것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닐 때였다. 가평, 청평을 비롯한 경기도의 모꼬지 장소들과 춘천, 강릉, 장성, 광주 송정리, 목포, 부산 등지로 여행을 다니면서 눈뜬 게 잠시 스쳐가는 시골 간이역이 주는 정취였다. 남편과 나는 종종 간이역을 목적지로 정하고 여행을 하기도 하는데 전북 남원의 서도역, 충북 영동의 황간역과 심천역 등이 기억난다. 작년 가을 포스팅했던 경북 봉화 산타마을에 있는 분천역이나 춘천의 김유정역은 유명한 만큼 번화하고 세련된 느낌이라면 오늘 소개할 경북 군위의 화본역은 작고 소박하다.

리틀 포레스트 촬영지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화본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으로 꼽힌 곳이다. 화본역은 역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주변에 추억의 볼거리들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폐교된 산성중학교를 리모델링해서 1960~70년대의 '엄마아빠 어릴 적에'라는 테마로 만들어진 추억의 박물관이 맞은편에 있고, 화본역 앞의 거리는 삼국유사 내용을 주제로 한 벽화들이 아기자기 그려져있다. 군위는 일연이 삼국유사를 쓰며 머물던 곳이라 '삼국유사의 본고장'이란 타이틀을 내세우고 있다.(이 부분에 대해선 군위의 다음 포스팅에서 자세히 쓸 예정) 역과 마을을 찬찬히 둘러보노라면 기차역의 낭만과 시골의 정취를 함께 느낄 수 있다.

화본역에는 화물열차까지 포함해 하루 50회 가량 열차가 지나치는데, 역에 직접 서는 열차가 몇 편 없기는 해도 서울이든 경상도든 강원도든, 어디서 출발해도 하루 여행을 계획하기는 안성맞춤인 곳이라고 한다. 특히 이곳은 증기기관차 시절(1899~1967년) 기차에 물을 대던 급수탑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데, 멀리서도 한눈에 보이는 25m 높이의 급수탑은 아주 인상적이다. 화본역의 급수탑은 1930년대 말에 지어졌다고 하며, 현재 우리나라에 몇 개 남아있지 않은 근대문화유산이기도 하다.

화본역도 처음 갔던 날은 오후 느즈막히 도착해서 주변 지역과 급수탑을 제대로 둘러보지 못해 이번에 갔을 때 시간을 두고 천천히 둘러보았다. 급수탑까지 가려면 화본역에서 입장료 천 원을 내고 철길을 건너 생나무 울타리 사잇길을 지나서 가는 방법도 있지만, 우린 마을을 둘러보다 우연찮게 발견한 역 뒤편의 급수탑과 이어진 도로를 따라가서 구경했다. 이 뒤편 도로도 곳곳에 다양한 벤치를 만들어 놓아서 산책하며 걷기 좋다.

급수탑에서 마을을 바라보는 곳에 삼국유사를 읽는 소녀와 고양이 조각상이 네모난 창 가운데 자리하고 있고, 내부엔 하얀 용마 조각상이 있다. 하단 지름 5m의 정중앙에 위치해서 25m높이의 천정에서 쏟아지는 듯한 느낌의 별들 아래 서있는 용마는 꽤나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급수탑 내부 벽엔 오래전 이곳에서 일하던 인부들이 적어놓은 '석탄정돈, 석탄절약' 같은 글귀들이 여전히 남아 그 시절을 돌아보게 해준다. 급수탑 앞에 물을 저장하던 곳으로 쓰였던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에는 증기기관차의 작동원리와 급수 원리가 그림과 함께 자세히 설명되어 있어 공부도 된다.

화본역과 그 주변은 사람들이 좀 있는 편이었는데, 이곳까지 찾은 이들은 거의 없어서 사회적거리를 유지하며 아주 여유롭게 급수탑 내외부를 구경할 수 있었다. 구경하는 동안 시꺼먼 화물열차 한 대가 굉음을 내며 화본역을 지나쳐 달려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화본역 앞에는 꽈배기집과 추억의 분식집, 옛날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카페와 폭풍이 몰아쳐도 영업한다는 중국집과 사람들이 줄서서 먹는 국수집이 있어서 구경하며 출출해진 속을 따뜻하게 채울 수 있다. 국수집 옆 골목으로는 펜션으로 쓰이는 예전 철도관사도 있어서 일본풍의 가옥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작은 마을이지만 발걸음을 떼는 곳곳에 볼거리가 가득한 군위 화본역으로 추억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벽화거리
일연 스님 벽화 뒤에 추억박물관
특색있는 하수구 뚜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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