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말그미 Mar 30. 2021

오전반 오후반의 부활

슬기로운 코로나 학교생활

올해 고등학생이 된 아들이 코로나로 인해 일주일씩 번갈아가며 오전반 오후반으로 학교를 등교중이다.

고3은 매일 등교이지만, 고1과 고2는 학교에서 서로 마주치지 않도록 이렇게 시간표를 짠 모양이다.
(난 이게 전국 고등학교에서 다 시행되고 있는 줄 알았는데, 학교설명회 가서 들어보니 대전에서는 아들 다니는 학교만 최초로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 단계에 맞춰 2/3 등교 조건을 맞추면서도 학생들이 매일 학교를 나올 수 있게 하기 위해 선생님들께서 머리를 맞대고 묘안을 짜내신 거라고.)

나 어릴 때나 학생수가 과밀한 도시지역에서 행해졌던 오전반 오후반을 학령인구가 줄어서 대학들이 벚꽃 빨리 피는 순서대로 폐교할 거라는 우울한 예상을 하는 시기에 다시 하게 되다니...

한 반에 60~70명이 예사였던 1970~80년대, 나는 시골에서 학교를 다녀서 그나마 오전반 오후반을 하지 않았지만 성남에서 초5까지 보냈던 남편은 직접 경험해봤다고 한다. 초4학년 때까지라던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꽤 컸을 때까지도 어느날은 오전반, 어느날은 오후반으로 학교를 갔더란다.

며칠 전 아침 식사중에 있었던 일이다.

오전반이면 7시에 따로 먼저 먹지만
오후반이라 아침을 가족들과 함께 먹는 아들을 보며 어머님께서 웃으시며 한 마디 하셨다.

"우리 강아지~ 오늘 학교 늦게 가는 날이라 같이 얼굴 보믄서 밥 먹네~^^"

마침 궁금한 게 있어서 어머님께 여쭈었다.

"어머님~ 아범 어릴 때도 오전반 오후반 했다면서요? 기억나세요?"

"그람 기억나재~ 셋 다 국민학생인디 학교 가는 시간이 제각각이라 아침에 학교 갈 놈 보내고, 오후에 갈 놈 챙기고 출근하려면 정신이 없었지야."

"학년별로 다 달랐을 텐데 셋씩이나 되서 진짜 정신 없으셨겠어요. 저는 한 놈도 매주 오전 오후 등교시간이 달라지니 정신 사나운데..."

"오전반 하느라 아침에 가믄 일이 없재, 오후반이 문제여. 학교 가기 전에 밥을 먹고 가야쓴께 동그란 양철밥상에다 밥이랑 반찬이랑 다 담아서 밥상보 씌워두고, 옆에다가는 입고갈 옷이랑 준비물 챙겨놓고 출근을 하거등. 근디 이 녀석들이 제 시간에 맞춰서 밥 먹고 학교를 갔는지, 자다가 시간을 놓친 것은 아닌지 알 수가 없으니 일을 하면서도 걱정스럽재. 지금처럼 핸드폰이 있어서 바로 전화를 해볼 수도 없고."

"그때 집에 전화 놓고 사시지 않았어요? 전화해보시면 되잖아요."

"집전화야 있지만 직장에서 맘대로 전화를 쓸 수가 있어야 말이재. 내 주머니에 폰 있으믄 그걸로 후딱 하겄지만"

"아~ 그러셨겠네요. 걱정 많이 하셨겠네요."

"지금이 좋은 시상이재~ 애들도 폰 하나씩 들고 다닝께 일하다가도 언제든지 애들 어디에 있나, 뭐하나 다 알 수 있자네. 옛날엔 차말로 깝깝시런 세상 살았지야."

어머님에 따르면 어떤 기준으로 오전반 오후반을 나눴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이걸 이용해서 학교를 빼먹고 딴짓을 하는 애들도 많았다고 한다.(우리 애들은 착해서 아무 탈 없이 잘 다녔다만~ 하고 어머님께서 부언하심.)

90년대 초반이었는데도 국민학교 때 오전반 오후반을 했다는 어떤 이의 고백에 따르면,(브런치 김성현 작가님의 '유실기억보관소 - 오전반과 오후반 아시는 분?' 중에서) 오전반일 때는 오후반이었다고 부모님께 거짓말을 하고 집에 바로 들어오지 않은 적도 많았다고 한다. 오락실, 친구네집으로  돌아다니며 놀다보면 시간이 가는 줄 몰랐고, 해가 떨어져서야 집에 들어오면 부모님은 이미 난리가 났다고. 당시엔 유괴사건이 많았을 때라 시간이 되도 안 들어오는 자식을 얼마나 걱정했을까.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에 부모 입장에서는 당연히 온갖 안좋은 상상을 하며 애를 태울 수밖에.

지금은 오전반을 해도 학교에서 급식을 하고 오고, 오후반도 학교 가서 급식부터 먹고 수업에 들어가니 집에서 점심을 챙겨줄 필요가 없어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그런데도 매주 달라지는 등교시간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는데, 출근하는 와중에 등교시간이 각각 다른 세 아이를 신경쓰셔야 했던 어머님은 오죽하셨을까? 휴대폰도 없는 세상에!!!

그땐 그랬지~ 하는 추억 한 자락으로 넘어갈 뻔한 오전반 오후반이 코로나로 되살아나 어머님의 젊은시절, 학부모로서 고된 일상을 되짚어보게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들첩은 봐도 딸첩은 못 본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