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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Sep 27. 2021

누군가를 살린다는 것

한강대교 자살소동

요즘은 마포대교가 자살률이 가장 높기로 악명높은 한강의 다리가 되었나보다. 내가 서울 살던 1990년대엔 한강대교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직접 뛰어내리는 분은 본 적 없지만, 뛰어내리려고 시도하고 전담경찰관이 설득하느라 다리 위아래서 실갱이하는 장면은 많이 보았다.

난 한강대교 남쪽에 살고, 학교는 한강대교 북쪽에 있다보니 등하교길 버스 타고 가면서 한 달에 한 번쯤은 봤던 것 같다. 그래서 처음엔 놀라고 무서워서 바라보던 그 광경을 언젠가부턴, 뭐 그러려니~ '이번엔 뭐가 억울해서 알아달라고 저기 올라가 있는 거냐?' 하면서 자살시도자의 사연을 궁금해하기에 이르렀다.

더부살이겸 식모와 아이돌보미가 나의 주된 역할이었던 작은집이 흑석동에서 본동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새벽마다 뜀박질하는 코스가 바로 집 앞 한강대교를 한 바퀴 돌고 오는 것이었다. 매일매일 뛰댕기다보니 마치 우리집 앞마당처럼 친숙해진 공간이 또 한강대교이기도 했다.

어느 더운 여름날 저녁, 지하철을 타고 노량진역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는데 한 아주머니께서 이사람 저사람에게 길을 묻고 있었다. 약간 반미치광이같은 옷차림(사람 많은 곳에서 절대 입고 다니기 힘든 패션. 추레하고 헐렁하고 분명 냄새도 많이 날 것 같은 목이 늘어난 셔츠와 몸빼바지)에 촛점이 풀린 불안한 눈동자 때문에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피해가기 바빴다. 난 왠지 눈이 가서 일부러 그 분 앞으로 써억 나섰다.

"어디 찾으세요?"

"아이구~ 이제야 좀 찾겠네. 한강대교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해?"

한강대교라고?

바로 직감이 왔다. 이 분 뭔가 수상하다!

"이 늦은 시각에 거긴 왜요?"

"귀신이... 귀신이 자꾸 날 죽일라고 해서

너무 무서워서 한강에 빠져 죽을라고~"

허거걱!

그냥 냅두면 안 되겠구나!

"아... 네... ^^;;

제가 가는 방향이 그쪽인데

알려드릴 테니 따라오세요~"

하곤 일단 아주머니를 안심시킨 뒤 모시고 한강대교로 향했다. 가는 길에 파출소 하나가 있으니 거기에 아주머니를 스리슬쩍 인계하면 되겠구나 여기며.

이런저런 밑도 끝도 없는 귀신이야기와 자기 말을 도통 안 믿어주는 야속한 가족 이야기들을 하면서 파출소에 점점 가까워지자 아주머니의 한 마디!

"나 저기에 보내려들면 지금 당장 도로로 뛰어들 거야!"

히익-

눈치도 빠르셔라.

그래서 일단 파출소는 통과.

아쉽고 안타까운 눈초리를 파출소에 보내며

파출소앞을 지나, 지하통로를 지나, 본동 앞을 지나

쭐래쭐래 한강대교로 걸어갔다.

오늘따라 길바닥에 사람도 없네. 다른 땐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많던만, 다들 어디 간겨~?

속으로 툴툴대며 어느 시점에서 이 아줌마를 안전하게 떼어놓을 수 있을지 가늠하며 한강대교에 도착했다.

그때부터 아무 말도 없어진 아주머니가 한강대교 위에 서자 다리가 후들거리시는 게 느껴졌다.

멀리 부천에서부터 오셨다는 그 아주머니는 작정한 죽음을 앞두고, 정작 죽음의 장소로 지정한 곳에 오자 다리에 힘이 풀리셨나보다.

"제가 업어드릴까요?"

이 한 마디에 전혀 사양도 하지 않으시고

아주머니는 대뜸 내 등에 업히셨다.

으잉? 꽤 무거우시네, 보기보다.

아주머니를 업고 한강대교 가운데쯤 왔을 때 잠시 내려달라고 하셨다. 무겁기도하고(전라도 말로 제법 뻐쳤다. 힘들다는 말임) 아줌마가 하란대로 안하면 또 뭐라고 으름장을 놓으실지 몰라 일단 내려드렸다.

업고있던 아주머니를 내려드리고 보니

한강대교 최다 자살포인트였다.--;;

죽겠다고 한강대교 올라가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발견되는 바로 그 지점이었다.


아주머니는 천천히 난간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난간을 붙잡고....

한참동안 아래를 내려다보셨다.

나도 옆에서 같이 내려다보았다.

꽤 높았다. 높은 데를 좋아하는 나로서도

왠지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한강대교를 밝히는 가로등불빛도 삼켜버린

검푸른 한강이 준비됐으면 언제든 뛰어들라며

큰 아가리를 쩌억 벌리고 있었다.

이 무슨 오지랖인지~

걍 냅둘 걸 내가 뭐라고 끼어들어선

여기까지 저 아줌마를 모시고 왔단 말인가!

속으로 나 자신의 머리를 쥐어 박으며

이제 어떻게 해야 이 위험한 순간을 넘길지

퉁박을 굴렸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

하지만 기발한 생각은 전혀 나지 않았고

그저 아주머니가 한강에 뛰어들지 못하도록

말려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이러구러 조바심치다 순간 내뱉은 말.

"저기... 여기 난간이 꽤 높지 않아요?

여기보단 저짝 가면 한강이랑 더 가까운 데가

있거든요. 거기에서 뛰어들면 덜 힘들 거 같은데..."

도대체 이게 무슨 논리인지~

어차피 뛰어들 건데 높이를 따지고 자시고 할 게 뭐람!

하지만 나로선 아무 말이나 일단 던져볼 밖에.

망연히 한강물을 내려다보시던 아주머니가

스르르 고개를 돌리시더니... 조용히 대답하신다.

"그러까? 여기 좀 무섭네~ 너무 높고."

오마낫!

그냥 던져본 말이 먹혔어!

그래서 또 낼름 아주머니를 업고

남은 한강대교 반을 건너서 용산쪽을 향해 걸었다.

그땐 막 힘든 줄도 모르고 온힘을 다해

건너편 한강둔치를 목표지점으로 해서 업고 갔다.

그렇게 반쯤 갔을 때 아주머니가 문득...

업히기 위해 내 목 주위에 둘렀던 두 손으로

내 목을 바짝 조이며 그러신다.

"귀신이 이렇게 내 목을 졸라...

그러니 내가 어떻게 살겠어?"

순간 잠시 아뜩했다.

목이 졸리는 느낌을 그때 처음 경험했다.

어느 정도 조였는지 그땐 무척 당황스러워서 몰랐는데

나중에 거울을 보니 손자국이 남을 정도였다.

잠시 날 당황시키던 아주머니는

이내 손을 풀어 원래의 위치로 손을 가져다놓더니

그 뒤로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나도 묵묵히 아주머니를 업고 한강을 건넜다. 그리고 한강대교 아래로 내려가 한강둔치에 다다랐다. 드디어 목적지다!

내가 여기를 목적지로 삼은 이유는 이곳에 늘 한강을 순찰하는 경찰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분들에게 이 아주머니를 안전하게 인계하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다행히 저쪽 멀리에 제복을 입은 경찰이 보였다.

난 경찰이 안 보이는 곳에 아주머니를 내려두고, 잠시 화장실 다녀오겠다고 한 뒤 부리나케 경찰에게 뛰어갔다.

"아저씨, 저기 한강에 뛰어들겠다고 하시는

아주머니가 계셔요. 부천에서부터 오셨다는데

어떻게든 말려주세요~"

하고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 반대방향으로 뛰었다. 그야말로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면서. 바톤터치 완료!

한참 뛰어서 한강대교 위로 올라가

아주머니 내려준 곳을 살피니

경찰관이 아주머니 옆에서 뭐라고

말을 거는 모습이 보였다. 다행이다.

그 일이 있고 한동안

목주변이 뻐근하게 아프곤 했다.

그날 아주머니가 내 목을 졸랐던 흔적이

오랫동안 남아 그 날의 기억을 반추하게 했다.

아주머니는 무사히 부천으로 돌아가셨겠지?

귀신은 계속 나타나서 괴롭힐까?

한강대교에서 뛰어내린다고 또 오시진 않았을까?

그러다저러다 목의 아픔이 가시면서

그 일을 기억하는 일도 가뭇해질 무렵

그러니까 한참의 세월이 흐른 뒤

생각지못했던 세상의 파도에 휩쓸려

상처받고 힘들어 할 때,

아,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을지도 몰라~

이런 생각이 나를 지배할 때면

문득 다시 목주변이 뻐근해지면서

그 아주머니가 떠오르곤 했다.


그때 그 아주머니도 이런 심정이었을까?

세상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고통에 몸부림치다

스스로 죽음으로 뛰어들고 싶으셨던 걸까?

뒤늦게 아주머니의 고통에 동감하며

내 고통을 견주다보면 어느새

죽겠다는 생각이 쏙 들어갔다.

그래, 그까짓 게 뭐라고!

다시 힘내서 살아야지!!

나 잘 할 수 있을 거야.

다시 일어설 수 있어, 암!!!

이런 생각이 들면서

다시 꿋꿋하게

내게 주어진 삶에 응했다.

그리고 무사히 20대, 30대, 40대를 거쳐

50대를 바라보고 있다.

내 앞에 또 어떤 삶의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동안의 파도보다 훨씬 더 어마어마하게 큰

해일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나 스스로 내 생을 끝내진 않으리란 사실을.

어쩌면 누군가를 살린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를 살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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