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말그미 May 24. 2022

남원 실상사 백장암에 국보 10호가 있답니다!

남원 여행

바야흐로 장미의 계절이다.

산과 들에는 장미과인 찔레꽃이 한창이고, 담장과 길가에는 붉은 넝쿨장미가 휘늘어지고, 잘 다듬어진 정원과 공원에는 주황 노랑 분홍 하양 빨강 다종다양한 장미가 눈길을 잡아끈다. 그중에서도 백장미는 순수, 순결, 존경이란 꽃말을 지니고 있다.


오늘 소개하려고 하는 곳은 백장미랑 이름이 비슷한 백장암이다. 뭐 억지스럽다 해도 상관없다.

내 맘이다^^


전북 남원시 산내면 수청산 중턱에 자리잡은 백장암은 실상사의 부속암자로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를 먹지 않는다)의 백장 청규를 만들고 실천한 백장 선사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통일신라 시기에 창건된 백장암은 실상사와 같은 시대인 9세기 초에 창건되었으며, 실상사가 선풍(禪風)을 떨칠 때에는 실상산파(實相山派)의 참선도량으로 이용되었다. 임진왜란으로 실상사가 폐허화되었을 때는 약 200년 동안 실상사 승려들이 이 절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현재의 당우로는 대웅전과 칠성각·산신각만 있어 절풍경이 한눈에 다 들어올만큼 단출해보인다. 그러나 남아 있는 당우지로 보아 상당히 규모가 컸음을 알 수 있고, 중요문화재로는 국보 제10호인 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과 보물 제40호인 실상사 백장암 석등, 보물 제420호인 백장암 청동은입사 향로가 있다.


2019년 전주에서 국보 제1호에서 100호까지를 사진으로 소개하는 전시회가 열렸는데, 전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진작가가 국보 사진을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남원 실상사 백장암에 갔다가 삼층석탑을 보고 반하여 국보 유물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후 전국을 돌아다니며 국보 유물 사진을 찍게 되었고 오늘 전시회를 열게 되었습니다”라고 했단다. 국보 제10호인 남원 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은 누군가의 삶을 바꾸어 놓을 만큼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남원시 블로그기자단 김왕중님 글 참고)

구불구불 산길을 오르며 주변 풍경을 감상하다 백장암 아래 주차장에 차를 대고 고개를 암자로 돌린 순간 너른 마당 한가운데 딱 서 있는 삼층석탑과 그 뒤에 다소곳이 붙어있는 석등을 본 순간 놀라게 된다. 이 작은 암자에 이렇게 큰 석탑이 있는 것도 신기하고, 석등과 석탑이 일렬종대로 있는 모습도 흔치 않기 때문이다.

백장암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말기에 세운 것으로, 탑의 구조와 장식이 일반적인 양식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높이 5m인 이 석탑은 받침부가 매우 낮은 반면 1층 몸체는 폭에 비해 높다. 탑이 올라가면서 너비가 별로 줄지 않는다. 탑의 장식 역시 독특하여, 층마다 탑의 몸체에 보살 선녀 천왕 등 다양한 인물상을 화려하고도 자유분방하게 새겨놓았다. 지붕 아래에는 다른 석탑과 달리 연꽃을 정교하게 조각해놓았다. 이처럼 일반적인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풍부한 예술성과 독창적 상상력을 담아 만든 석탑이라 마치 나무를 다루듯 돌을 섬세하게 조각한 모습이 시대를 뛰어넘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다만 기단석과 1층 옥개석 곳곳이 떨어져나가있어 긴 세월 겪었을 풍파를 짐작하게 한다.

백장암 석등은 각 부분을 팔각형으로 만든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비교적 완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받침부에 연꽃이나 난간을 새긴 기법이 옆에 있는 삼층석탑의 기법과 동일하여 서로 같은 시기인 9세기 경에 만들어졌으리라 여겨진다. 높이는 2.5m이며 팔각형 몸체에는 한 면씩 건너 네 면에 네모진 창을 내었다. 몸체와 받침기둥은 거의 장식을 하지 않았고, 지붕은 간결하면서도 평평하게 처리하였다. 다만 지붕석 한 편이 심하게 깨져있어 안타깝다. 이것만 아니라면 새로 만든 것처럼 보인다. 실상사 대웅전 앞에도 큰 석등이 있는데, 그것에 비해 간결하고 소박한 모습이다.

백장암 청동은입사향로는 높이 30㎝, 입지름 30㎝의 크기로서 몸체와 받침대를 따로 만들어 연결하였고, 전체에 은실을 이용하며 입사한 고려시대의 향완의 전통을 계승한 조선시대 작품이다. 입 주위 넓은 테인 전에는 가는 선으로 된 원이 9개가 있고, 그 안에 범자를 새기고 그 사이에 덩굴무늬를 가득차게 새겼다. 몸통의 표면 앞뒤로 이중의 가는 선으로 된 큰 원문을 은실로 새기고, 그 안에 5개의 작은 원을 만들어 내부에 다시 범자를 각각 새겨 넣었다. 원과 원 사이에는 덩굴무늬가 가득 차 있고, 몸통 아래쪽에 두 줄로 18개의 연꽃잎이 있다. 받침대는 2단으로 되어 있으며, 위에 길쭉한 연꽃잎 6장이 있고 그 아래로 덩굴무늬가 있다.


조선시대에 와서 원권의 범지문이 새롭게 바뀐 점을 볼 수 있으며 아직까지 문양은 유려하게 입사되었다. 입 주위 전 아랫부분에는 명문이 남아있어 조선 선조 17년(1584)에 만들었음을 알 수 있어 조선시대 전기까지 고려 향완의 모습이 계승된 점을 잘 보여준다.( 현재 김제시 금산사 성보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어 직접 보지 못하고, 문화재청에 올려진 자료 인용)


또한 백장암 소장 범종은 전북 유형문화재 제 211호로 1743년에 만들어졌으며 높이 64cm, 직경 42cm이다. 천판이 높게 솟아있는 봉긋한 형태와 음통 및 유곽과 보살상 등 전통적인 조선종의 형식을 띠고 있다.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며 유려한 연호당초문의 조각수법, 전형적인 포탄형의 종신 등이 특징적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범종도 스님들이 기거하시는 선원에 있어서 출입제한으로 볼 수가 없어서 절앞에 세워진 설명판을 참고했다.


석탑과 석등을 둘러본 뒤 눈에 들어온 게 법당 오른쪽의 산신각 옆에 길게 나무통을 잇대어 만든 물길을 따라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약숫물이다. 나무에 피어난 이끼와 고색창연한 나무빛이 석탑이나 석등 못지 않게 백장암이 지닌 오랜 내력을 말해주는 듯했다.

 백장암의 별미는 무엇보다 대웅전 앞 계단에 앉아서 바라보는 풍경이다. 바람이 불면 앞산 소나무숲의 송화가루가 노랗게 일어나 파도처럼 공기중으로 퍼져나가는 모습을 보며 멀리 지리산이 보이는 풍경이 고즈넉했다.

몇년 전 백무동계곡에 물놀이 다녀오는 길에 우연히 발견해서 들어온 백장암에서도 온 가족이 이렇게 앉아 시원한 바람을 쐬며 저물어가는 여름 오후를 보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도 좋았고, 이번에도 참 좋았다.

백장암은 따로 입장료를 받지 않으니 국보 한 점과 보물 한 점, 그리고 넓게 펼쳐진 지리산 풍경을 조망하고자 하는 분이라면 가볍게 들러보기 좋은 곳이다. 사람들이 그리 많이 찾지 않아 한가롭게 구경할 수 있는 점도 코로나시국에 추천할만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해 조망이 멋진 충청수영 해양경관전망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