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친정엄마가 기겁을 하시며, 기본 셋트라도 사서 가라며 백화점에서 밥그릇, 국그릇, 반찬접시까지 있는 6인조 셋트와 코렐 면기까지 택배로 보내셨는데, 맘에는 하나도 안 들고 짐만 늘린다고 생각했단다.
이 정도의 그릇이면 충분, 아니 그 이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시어머님의 그릇까지 떠안는 일이 발생했다. 며느리 집에 오실 적마다 선반에 깔끔하게 정돈된 몇 안 되는 그릇들을 늘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시던 어머님이 집의 규모를 줄여 이사를 하시며 그릇들을 주신 것이다. 그땐 몰랐는데, 집에 놀러 온 친구들이 알려준 바에 의하면 일본, 프랑스, 이태리의 유명한 고급 브랜드 그릇들이더라고.
그렇게 두 어머님들 덕분에 많은 그릇을 집안으로 들였고, 생각보다 쓰이지 않는 그릇이 많다는 걸 눈치 챈 뒤로는 한 두 개씩 살금살금 버리기는 했지만, 안 쓰는 그릇의 무리를 한꺼번에 다 버릴 용기를 내지는 못했다고 한다. 혹여나 자기 집에 오셨다가 어머님이 주신 그릇들을 모조리 버린 것을 보시고 섭섭하실까 봐.
이렇게 감정이 얽혀 있는 경우에는 물건을 버리기가 어렵다. 특히나 어려운 사람... 시어머니 같은 분.
그런데 우리 집은 거꾸로인 게, 어머님이 내다 버리겠다고 내놓은 물건을 내가 아깝다고 못 버리게 막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도 어머님께서 간만에 주방 꼭대기 선반에서 뭘 찾는다고 문을 여셨다가 정작 찾으려는 물건은 못 찾으시고, 오랫동안 선반 꼭대기장에서 잠자던 27종 스뎅 그릇들을 대거 발견하셨다.
어머님께서 결혼하실 때 혼수로 밥그릇 국그릇 수저 세 벌을 해와서, 한 벌은 영암 시할머님과 시할아버님 드리고 두 벌만 갖고서 서울 올라와서 살림을 시작하셨더란다.
"옛날엔 계도 많이 하고, 뭔 잔치를 하면 다 집에서 하니까 한 번씩 사람들 모이면 최소 열댓은 온단마다. 그란디 집안에 그릇이랑 수저는 꼴랑 두 개씩이라 이집 저집 그릇이랑 수저 빌리러 다니는 게 일이었지야. 매번 그렇게 빌리러 다니기도 뭣하고 해서 하루는 그릇 좀 장만하자고 했더니, 장에 가서 밥그릇 국그릇 여섯 개씩만 사오시더라, 느이 시아버지 자리되시는 냥반이~ 그거 갖고 되냐?"
"아버님 손님이 대부분이셨을 텐데 눈대중이 참 없으셨네요. 계원이 열둘에 마나님이랑 애들 동원하면 아무리 적어도 열댓은 모이셨다면서 적어도 열다섯 벌은 사셔야 하는 거 아녜요?"
"그랑께 말이다, 내 말이~ 그래서 안 되겠다 하구선 내가 또 열심히 일해서 그릇을 샀지. 당시엔 27종 스뎅 그릇이 최고였단다. 요즘 같은 도자기 그릇이 나오기 전이었거든. 열 벌이 한 죽이라 열 벌을 사서는 깊이 넣어놓구선 아껴 쓴다고 하다가 까무룩 잊어불고 있다가 제일 밑에 꺼 하나 꺼내 써보고 안 썼네, 이게 다 새거란다."
"아니 그럼 한 번도 안 쓴 새거를 버리신다는 거예요? 어디 함 봐요~"
어머님께서 버리신다고 후줄근한 비닐봉지(적어도 30년 이상 두르고 있었을)에 싸두신 스뎅 그릇들을 꺼내어 보여주신다. 세상에 반짝반짝 깨끗한 빛이 영롱한 데다, 만져보니 꽤 묵직한 게 세상 좋아 보이는 스테인리스 그릇이다.
"이게 27종이라 절대 녹이 안 스는 스뎅이여. 최고 좋은 스뎅 그릇이지~ 아암~!"
"이 좋은 걸 버리긴.... 아까운데요?"
"그래도 어짜겄냐? 집에 그릇들이 천지삐까리에,
요즘 스뎅 그릇 쓰지도 않는데 모셔놓으면 뭐해~ 자리만 차지하지."
"집에 둘 데 없으면 해남에라도 갖다 드릴게요. 친정은 사람들 한 번씩 모이면 기본이 수십 명이라 늘 그릇이 부족한 것 같더라구요. 가끔 녹슨 스뎅 그릇까지 밥그릇으로 나온다니까요"
"해남에서 필요하실 거 같으면 잘 뒀다 가지고 가거라. 나도 버리기 아깝다만 쓰지도 않을 그릇, 정리하느라 버릴라구 했지~"
그때 옆에서 열심히 저녁밥 먹던 남편이 한 마디 한다.
"또 이상한 거 해남에 갖다 두는 거 아냐? 해남이 쓰레기 창고냐? "
"아니야~ 이거 봐. 그릇이 반짝반짝하잖아~ 어머님이 사놓으시곤 한 번도 안 쓰신 거래~ 요샌 이런 스뎅 그릇 구하기도 어려울 걸? 해남에서도 잘 쓰실 거야. 하다못해 개밥그릇으로라도 쓰시겄지~"
"개가 그렇게 작은 그릇에다 밥 먹어?"
"몰라~ 어떻게든 잘 쓰실 테니까 걱정 붙들어 매슈!"
"하여간 이상한 거 좀 해남에 갖다 놓지 마."
과거 나의 전적을 아는 남편이 의뭉스런 눈길을 한 번 던지곤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이리하여 재활용 쓰레기로 버려질 뻔한 27종 스뎅 그릇 열 벌을 사수했다는 이야기.^^
* 스테인레스 27종이란?
철성분에 크롬과 니켈의 함량이 각각 18%,
10% 함량 된 금속.
스테인리스(Stainless) 의 정확한 뜻은 Stain (얼룩,녹) + less (없는)의 합성어로 녹(얼룩)이 슬지 않는 금속이라는 의미. 크롬과 니켈의 성분이 소량 함유됨으로써 공기 중에 강한 산화피막을 형성하여서 더 이상 녹슬지 않는 금속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단어이다.
Stainless 의 정확한 발음 표기명은 '스테인리스'이며, 한국에서는 '스텐인레스' 라고 부르기도 한다.
스테인리스 = 스테인레스 = 스텐레스 = 스텐 (줄임말)
요즈음에는 18/10이라는 표기명을 많이 사용. 스텐인레스로 만들어진 식기나 용기의 앞면이나 뒷면을 보면, 18-10 이라는 표기명을 흔히 볼 수가 있다. 스텐 27종은 크롬 18%, 니켈 10%, 철 72% 로 구성된다.
스텐은 여러 가지 금속의 여러 가지 합금 비율로 만들어져 있으며, 스테인레스 (Stainless) 종류는 수십 가지가 넘는다. 그중에 하나가 18/10 스텐레스라고. 전문용어로는 sus304.
주로 조리도구(냄비, 팬 기타 식재료를 조리하거나 다루는 소품)의 재질로서 가장 적합한 스테인리스 스틸의 한 종류이다. 27종 스텐이라는 뜻은 18/10 (실비율은 18/8)이라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