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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Jun 27. 2022

당신의 일촌명은?

아무튼, 싸이월드 3편

우리가 학교 다니면서 배웠던 현대시 가운데

가장 다양한 변주로 패러디되는 시는

아마도 김춘수의 '꽃'이 아닐까 싶다.


책 '아무튼, 싸이월드'에서도

이 시를 변용하여 일촌명 짓기의 중요성을

상당히 길게 언급했다.

싸이월드에 관한 글을 올리니,

'감성의 싸이'를 오랫만에 느껴본다고들 답을 주셨다. 싸이월드 감성은 지난 번에 소개한 2편의 BGM이 갖는 위력도 있겠지만, 싸이월드를 하려면 꼭 거쳐야 할 관문인 일촌명 짓기도 한몫 하지 않았을까?


작가는 싸이월드에서 가장 골치 아픈 관문은 일촌명짓기였다고 토로한다. 새로 알게 된 누군가와 온라인에서 더 친밀하게 이어지려면 '일촌'을 맺어야 했는데, 그러려면 반드시 그 관계를 규정하는 이름을 지어야 했다. ‘나의119' '엔돌핀' '말이필요없는' '2gether'에서부터 '동네바보형' '1초원빈' '초록맥주병'에 이르기까지.

그러고 보면 싸이월드는 참으로 서정적인 플랫폼이었다. 그의 이름을 지어줘야만 비로소 그가 나에게 와서 일촌이 될 수 있었다. 당연히 그런 서정성에는 불편함이란 대가가 따랐다. 친구 신청이나 팔로잉을 하면 누구와도 즉시 관계 맺기가 가능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과 달리 싸이월드 세계에서 '인싸'가 되려면 창의력과 상상력, 문장력이 필요했다.


원래 친했던 사이라면 별 고민 없이 평소 부르던 별명이나 우스갯소리를 달면 됐다. '은정'이란 예쁜 이름을 가진 누군가의 일촌명이 '정팔이'라면 볼 것도 없이 그들은 오랜 친구였다. 하지만 그 밖의 대부분의 관계에서 일촌명이란 센스를 드러내는 척도가 됐다. 현재 그들 관계의 핵심은 '아는 선배' ‘과 동기' '교회 언니' '교양국어  조모임'이 전부인데도, 일촌명에서만큼은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그것 이상의 의미 부여를 하고 싶어 했다. 상대의 환심이나 호감을 사고 싶을 때 일촌명은 특히 중요했다. 잘 보이고 싶은 누군가가 있으면 그럴듯한 일촌명을 짓기 위해 고민했다.

내가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일촌명은 상대의 개성이나 특징에서 인상 깊은 점을 정확히 포착하면서 짧지만 위트 있고 미묘하게 미화한 것이었다. 이른바 '촌철살인형' 일촌명! 이것은 상대가 '역시 너만은 날 알아주는구나!'하고 감탄하게 하는 한편 실물보다 나은 인생 사진을 건졌을 때와 같은 만족감을 주는 일촌명이다.  


사적으로 친밀하지 않은 관계일 때에는 서로 부담스럽지 않은 정도의 거리감을 유지하면서도 상대에 대한 따뜻한 기대가 드러내는 작명이 좋았다. 앞으로 발전하는 관계에 대한 소망을 담은 이른바 '미래지향형' 일촌명이었다.


하지만 기표는 언제나 기의가닿지 않았다. 대부분 이런 시도는 예외없이 실패했고, 내 능력으로 도달할 수 없었던 야망의 민낯만 드러냈다. 고심 끝에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은 원츄원츄피카츄, 울트라나이스맨처럼 어딘지 B급 느낌이 나는, 하나같이 촌스러운 이름이었던 것이다. 일촌명을 지을 때 나라는 인간의 한계를 확인했다. 그래도 기발하게 짓고 싶다는 욕심은 끝끝내 버리지 못했기에 나중에는 의성어와 의태어 같은 무리수를 남발했다. '똑똑똑' '으쌰으쌰' '퐁당퐁당' 같은 몹쓸 일촌명들.


G가 보낸 일촌 신청이 도착한 건, 그런 번민에 차 있던 어느 날이었다. 오리엔테이션 날 내 맞은편에 앉아 있던 G는 실무 면접 때 이미 인사를 나눈 다른 동기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도 뉴페이스인 내게 먼저 말을 걸어주었다. '자, 난 이제 널 좀 알 아야겠어'라는 듯한 G의 부드러우면서도 호소력 있던 눈빛이 생각났다.


이렇게 또 한번 먼저 손을 내밀어준 게 반가우면서도 궁금했다. G는 과연 어떤 센스와 자신감으로 내게 일촌명을 지어서 내민 것일까. 창의력은 유감스러운 수준일지언정, 비평만은 전문가 못지않은 냉혹함을 갖춘 나였다. '어디 한번 보자는 마음으로 일촌 신청을 열어봤다.


'20년 동안'


순간 깨달았다.

'이런 일촌명이 실재할 수 있었구나!'

싸이월드에 빠져 있던 그 오랜 기간, 끊임없이 갈구하고 추구해왔으나 단 한 번도 찾아내지 못했던 '이상적인 일촌명'의 구체적 실례를 마침내 맞닥뜨린 순간이었다.

객관적이지만 다정했고, 그러나 지나치거나 부담스럽지 않았으며, 동시에 미래지향적이고 포용적이었는데 거기다 위트 있고 유머러스하기까지 했다. 그것은 입사 동기에게 지어줄 수 있는 가장 근사한 일촌명이었다. 내 싸이월드 역사를 통틀어 '원픽'이었다.


그때 우리는 스물넷이었다. 불확실한 시간을 견뎌낸 끝에 그렇게 되고 싶어 했던 저널리스트로 세상에 첫발을 내딛게 됐다. 기쁨과 기대, 설렘만큼이나 두려움, 긴장으로 범벅돼 있었다. 그때 동갑내기 동기였던 G는 어깨가 잔뜩 굳어 있는 내게 그 일촌명을 통해서 이렇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얘, 괜찮아. 우리가 있잖아. 우리는 이제 이 회사의 입사 동기라고. 서로에게 따뜻하고 다정한 친구가 되도록 우정 서약을 하자. 이 서약서의 유효 기간은 적어도 20년이야."


마치 초등학교 입학할 당시로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이 일촌명에 부제를 붙일 수 있다면 '새끼손가락'이라고 짓고 싶었다.


너하고 나는 친구 되어서 사이좋게 지내자

새끼손가락 고리 걸고 꼭꼭 약속해


G는 이 모든 부푼 감정과 신의의 결단을 다섯 글자 안에 완벽하게 담아냈다. '20년'이라는 길고 아득한 단어가 주는 안정감과 절대적 소속감은 대책없이 따스했다. 입사 당시만 해도 그 시간은 영원에 가깝게 길게 느껴졌다. G의 일촌명에서 위트를 느꼈던 것은, 우리 둘 다 이 회사를 20년씩이나 다닐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들 자기 멋에 한껏 취한 이십대 초반의 신입이었다. 몇 년 안에 몸값을 높여 훨씬 좋은 곳으로 이직하거나, 적당히 경력을 쌓은 뒤 정말 가치 있는 일을 하며 살 것이라 생각했다. 무턱대고 야심만 컸던 우리에 게 '20년 근속'이란 장난기 어린 과장이고 농담이었으며 따뜻한 약속이자 동화 같은 판타지였다. G가 달라 보였다. 이런 일촌명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은 절대로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스타벅스 커피 한 잔을 책상에 올려두고 단정한 자세로 일을 시작한 G에게 톡을 보냈다.


"혹시 입사할 때 나한테 지어준 일촌명 기억 나?"


G는 “설마 아직도 싸이월드란 걸 하냐"라며 잠시 경악하더니 '평생 한 회사에서 일할 사이'란 뜻이었던 것 같은데 최악인 것 같다고, 어쨌든 그런 끔찍한 일촌명을 지어서 미안했다고 했다.


발제, 취재, 마감의 끝나지 않는 쳇바퀴 속에서 '올해는 꼭 다른 일을 찾자'고 다짐했던 우리는 벌써 몇 년 전에 10년 근속 표창을 함께 받았다. 10년이 엊그제 하루처럼 지나간 이 시점에서 새삼 돌이켜보면, 그 일촌명은 또 다른 의미에서 ‘내 인생의 원픽'이었다.


세상은 우리의 예단보다 훨씬 복잡다단했으며 무엇보다 너무나 빨랐다. 울고 웃으며 함께 부대끼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한 회사의 신입을 지나 주니어를 거쳐 '얄짤없는' 중견 기자가 됐다. 철부지들의 낭만적 판타지에서 출발했던 '20년 동안'은 30년 근속조차 결코 멀다고만 할 수 없는 장기 근속자들의 리얼다큐멘터리로 진화했다. 우리가 된 것이 '취재의 달인'이 아니라 '사내 메신저의 달인' (실제로 우리가 나눈 대화의 70퍼센트는 사내 메신 저였다. 20퍼센트는 카톡)이란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이렇게 긴 회사 생활 끝에 남은 게 '사내 메신저의 달인'이라니, 결국은 호러인 건가?"


잠시 후, 모니터 하단에서 G가 보낸 답신이 깜빡였다.


"[달나라의 장난]이지." (김수영 전집 1)


역시, 이런 일촌명은 절대로 아무나 지을 수 없었다.


-  내가 그의 이름을 지어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일촌이 되었다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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