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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Oct 29. 2020

죽을 때까지 섹시하고 싶다면

지혜롭게 나이 들기

평소 단아한 외모와 품위 있는 글로 좋은 이미지를 지닌  페친께서 몇 달 전 '북커버 챌린지' 수행 중에 책 한 권을 슬쩍 담벼락에 올리셨다. 1년여간 요가를 함께 다니신 비구니 스님이 선물해주신 책이라고 하면서.
< 죽을 때까지 섹시하기 >

'섹시하다'란 말은 왠지 멋진 외모를 떠올리게 하는 단어여서, 비구니 스님이 그런 책을 선물하셨다는 게 좀 안 어울린다 여겨져 더욱 궁금했던 책. 그런데 2009년에 나온 이 책을 이제야 구해 읽어보니 왜 선물하셨는지 이해가 갔다.

인생을 보다 맛있게 요리하는 25가지 레시피를 담고 있는 이 책은 눈부터 위로는 잘려서 제대로 가늠되지 않으나 아름다워 보이는 한 여인이 책을 무릎에 펼쳐두고 어딘가를 보는 듯한 표지 그림이 독특하다.

김희재 작가는 추계예술대학교 영상문화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이자, 시나리오 창작 회사 '올댓스토리'의 대표이사이다. 2004년 영화 <실미도>로 제41회 대종상영화제 각색상을 수상했으며 <누구나 비밀은 있다>, <공공의 적2>, <한반도>, <국화꽃 향기>의 시나리오 작가로도 활동했다.

저자가 책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 섹시함은 신체적이고 외형적인 섹시함만이 아닌 언어와 태도, 인생철학에서 풍기는 삶의 체취를 포함한 완숙한 인생이 보여주는 섹시함을 뜻한다. 섹시함이란 근본적으로 '어떤 상대에게 증명되는 나의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그 어떤 상대가 소중할수록, 그 상대와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을수록 그 사람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이유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을 때까지 섹시하기'라는 것이 '죽을 때까지 불특정 다수가 인정하는 관능적 이미지 구축하기'는 아니다. '죽을 때까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 매력적인 사람, 다시 보고 싶은 사람, 오래 기억될 사람 되기'라 할 수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로 인해 행복해지도록 그래서 결국 내가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죽을 때까지 섹시하기'이다.

​‘섹시한 인생’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공감을 제시한 작가는 본인의 의지와 약간의 노력만 보태진다면 누구나 섹시한 인생을 즐길 수 있다고 말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섹시하게 살아간 당신의 모습을 보고 당신의 자녀가, 당신의 후배들이 어떻게 사는 것이 최고의 실버 시기를 만드는 것인지 배우고 싶도록 그렇게 만들고 싶어 책을 쓴 작가의 의도대로 작가가 제시한 '인생을 섹시하게 사는 법' 몇 가지는 꼭 따라 해보고 싶은 것들이었다. 그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세 종류의 거울을 세 곳에 걸어두기

사랑에 빠진 처녀는 골목길 전봇대도 알아볼 만큼 예뻐진다고 하는 말이 있다. 호르몬의 신비가 풀리면서 그 말이 일리가 있음이 밝혀졌다. 배우가 '카메라 샤워'를 받으면서 점점 예뻐지듯이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시선의 힘이 자세를 바꾸고 표정을 변하게 만든다. 누군가의 시선 속에 기대의 대상이 되어 내가 계속 머무르려면 거울 속의 나를 향해 스스로 웃으며 바라봐줘야 한다. 마치 멋진 누군가를 바라보듯 그렇게 거울 속의 나를 보며 깔끔하고 단정하게 자신을 가꾸어주면, 기분도 좋아질 수밖에 없다. 섹시함은 이렇게 개발되기 시작한다. 나를 향한 나의 시선이 바뀌면, 남을 향한 나의 시선이 바뀌고, 마침내 나를 향한 남의 시선이 바뀐다.

2. 젊음을 유지시켜주는 명약, 욕망

인생에서 느낌표가 사라지고 말줄임표가 그 자리를 대신해가면 생기와 웃음을 잃고, 젊음도 잃어간다. 돈과 권력을 좇거나 마음이 사라진 섹스를 찾아 헤매는 욕망이 아닌 진정 추구해야 할 건강한 욕망을 정해서 그 욕망을 갖고 살아야 한다. 욕망을 품은 가슴은 섹시하고, 그것은 세상을 유혹한다. 평균 연령 81세의 'YOUNG & HEART' 합창단처럼.(198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 결성된 합창단으로 73세부터 93세까지의 노인들로 구성됨)

3. 주고, 주고 또 주기

돈으로 살 수 없는 많은 것이 있다. 사랑, 공기, 우정 등등. 참 중요한 가치이지만 이것들은 돈과 다른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다. 그러니 돈에 집착하지 마라'는 말은 모순이다. 어차피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제외하곤 모두 돈으로 살 수 있으니까. 사람들이 일생을 걸고 추구하는 것에 가장 빠르게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돈'이다. 돈은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문제를 만들기에, '적당한 돈'이란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의사의 도움으로 영원히 산 사람은 없다. 90년 인생 가운데 한 달의 시간을 벌기 위해 30년을 인색하게 사는 것이 옳은지, '그 시간 동안 정말 섹시하게 돈을 쓸 수 있었는데~' 하며 마지막 순간에 후회하지 않도록 살아야 한다. 생을 정리하는 마지막 내 한 평의 공간 주변에  내게서 받은 것이 많은 사람들, 내게 많이 고마워하는 사람들의 지지와 격려로 채워지는 것이 옳다.(참고1 사진작가 김중만의 이야기)

​4. 긍정의 언어로 예언하기

"잘될 거야. 진짜, 다음번에는 잘될 거다. 난 알겠거든. 니가 잘될 거라는 거."

책망하고 싶은 마음과 안쓰러운 마음과 위로하고픈 마음이 갈팡질팡 오갈 때, 그 생각을 곱씹어서 잘 다듬어진 생각 위에 수십 년 축적해온 우주의 에너지를 골고루 섞은 뒤 비로소 음성에 실어 말하는 이것이 바로 예언이다.

긍정의 예언은 틀리지 않는다. 단지 그 성취가 조금 뒤로 미뤄지는 것뿐이다. 또 실패하면 또 예언하라. 진심을 모두어, 세월의 지혜를 담아, 인생의 요령을 슬쩍 끼워 넣어 더 그럴듯하게 예언하는 것이다.

상황은 같다. 젊은이는 실패했다. 그리고 다음번 도전을 해야 한다. 그들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가 많지만 어떻게 이야기할지,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내 몫이다. 섹시함은 자신도 모르게 상대를 유혹하는 힘이다. 누구도 저주의 예언에 매혹을 느끼지 않는다. 축복하고 격려하는 섹시한 예언자가 돼라.

5. 유머는 선택이 아닌 필수

부모가 자식에게(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인생의 가르침을 전달하면서 개그를 하라는 뜻이 아니다. 자식으로 하여금 쓴 약을 기꺼이 받아먹게 만드는 '당의정'이 유머이다. 모든 조건이 같다면 유머러스한 태도로 다가선 부모가 근엄하게 가르치는 부모보다 환영받는다. 태도로서의 유머는 '웃긴 얘기'보다는 '배려'와 조금 더 비슷하다. 유머는 상대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 행복하면 좋겠어요."가 유머를 구사하는 태도 뒤에 숨겨진 의도이다.

6. 기록하자, 내가 기억될 수 있도록

기록의 습관은 사람이기에 어쩔 수 없이 지니고 있는 부족한 부분을 차분하게 한 글자, 한 장씩 채워 넣는 작업이다. 언젠가 온전하고 완성된 사람이 되도록. 그러므로 기록하고 있는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고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기록하는 사람은 더할 수 없이 섹시한 사람이다.

7. 이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세상의 절반을 버리는 것

함께 살아가는 세상의 절반을 차지하는 그들인데, 이해의 노력을 접어버린다는 것은 세상을 반만 보고, 반만 즐기고, 반만 누리다 가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세상의 절반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알 수 없는 사람으로 버려버리는 것을 허락하겠다는 뜻이다. '이성에 대한 이해'라는 득도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들을 보며, 아무리 노력해도 득도 수준에 도달할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노하우를 훔치는 노력은 해볼 수 있다.

8. 감사와 즐거움은 쌍둥이다

불평을 늘어놓아 상황이 달라진다면 천 번이라도 불평을 하고 만 번이라도 그 불평을 들어주겠지만 불평은 아무 힘이 없다. 아니 불평은 아주 부정적인 힘을 갖고 있다. 불평을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가 힘이 쭉쭉 빠지도록 만드는 놀랍도록 부정적인 힘. 감사는 정확하게 반대 기능을 한다.

가진 것을 손에서 놓아야 하고, 지닌 것을 잃어가면서 감사보다는 불안과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지만, 아직 잃지 않은 것이 있다면 여전히 감사할 수 있는 '꺼리'가 있다. 그럴 때 불평을 늘어놓는 대신,

"참 감사한 일이다. 고맙구나, 고맙습니다. 이것도 못 누릴 수 있었어."라고 한다면 덜 가지지 않았음을 감사하는 매력적인 모습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빈 손으로 태어난 인생이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주었다면 세상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그러니 세상을 향해 그 고마움을 전하며, 세상이 내 마음을 오해하지 않도록 충분히 드러내며 살 일이다.


9. 스트레칭으로 얻을 수 있는 것

첫째 기분 좋은 호르몬을 분비시켜 공짜 마약의 효과를 준다. 심호흡을 하면서 천천히 운동을 하면 흔히 명상이라고 부르는 '좋은 마음'에 대한 '깊은 생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둘째 내 몸에 대한 재발견을 할 수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천천히 접혀있던 것을 펴고, 휘어진 것을 바로 잡고, 굳은 것을 부드럽게 만들며 스트레칭을 하다 보면 내 몸 구석구석에 대해 주인으로서의 권위를 회복해가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셋째 매일 진보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스트레칭에 필요한 것은 꾸준함이다. 매일 규칙적으로 반복해야 일정 수준에 도달하고 유지되는 운동이다. 매일매일의 스트레칭을 통해 자기 몸을 점검하는 것, 자기 몸에서 질 좋은 호르몬이 분비되는 것, 죽을 때까지 섹시하게 살 수 있는 첫걸음이다.

10. 인생엔 언제나 놀이터가 필요하다

사람은 혼자 놀면 재미가 없다. 사람으로 노는 것이고, 사람들과 재미있게 노는 것이다. 매일 그저 보기만 해서는 놀아지지 못한다. 적극적으로 놀아야 한다. 등산도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뭔가를 남길 수 있는 목적을 갖고 하게 되면 놀이가 한결 재미있어진다. "우리 죽기 전에 대한민국 모든 산을 다 올라가 보자. 그리고 그 산에 대한 기록을 남겨보자, 넌 사진 찍고, 넌 글 쓰고." 이런 식으로.

병원에 입원해서도 링거줄로 꽃을 만들어 간호사들에게 나눠주는 사람이 있고, 그저 앓다가 병 나으면 그냥 나가는 사람이 있다. 어느 쪽이 섹시하게 사는 모습일까? 활용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언제나 신나는 놀이터를 만드는 것이 섹시한 모습이다.(참고2. 나의 할머니 이야기)

참고 1) 평생 아프리카에서 의사로 봉사하느라 고등학교 때부터 학비 한 번을 제대로 대주지 못한 아들에게 병상의 아버지가 마지막 한 말이 "2천만 원 정도밖에 없는데 괜찮겠냐?"였다고 한다. 그 마음이 너무도 사랑스러워 아버지를 꼭 끌어안고 임종까지 한 달 동안 정말 행복하게 시간을 보냈다고 한 사진작가 김중만의 고백을 기억하자. 2천만 원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의사라는 직업으로 집 한 칸 남겨주지 못한 아버지의 미안함이 자랑스러웠던 아들. 병든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해 재능과 재물을 다 써버리고 남긴 돈 2천만 원은 그 가치를 절대 헤아릴 수 없는 씨앗이 되어 아들에게 이어질 것이다. 이처럼 돈으로 씨앗을 삼으라. 그것이 진정한 유산이다.    

참고 2) 이 부분을 읽으며 할머니 생각이 났다. 내가 국민학교 4학년 때 오토바이 사고로 발을 크게 다치신 할머니는  수술과 재활을 위해 해남 종합병원에서 몇 달 동안 계셔야 했다. 여름방학 때는 한 달 동안 할머니 간병을 하며 함께 병원생활을 하기도 했는데, 그때 할머니께서 만들어주시곤 했던 게 바로 링거줄로 만든 꽃이었다. 할머니는 손재주가 있으신 분이어서 링거줄로 꽃도 만드시고, 열쇠고리도 만드시고, 강아지 모양 인형도 만드시는 등 다양하게 만드셔서 병원을 찾는 분이나 병원에 계신 분들에게 나누는 즐거움을 누리셨다. 그래서 그런지 병원에서 할머니 간병하며 지낸 한 달은 참 재미났던 시간으로 기억한다.


번외 1) '고맙다'의 다른 의미

소극적으로 고마운 마음을 드러내는 기능뿐만 아니라 공격적으로 영역을 표시하는 기능도 있다.
남편 직장에 부임한 멋진 솔로 여자 상사에게 먼저 고맙다고 표현하는 것은 남편에 대한 소유권이 자신에게 있음을 선포하는 아내의 공격이다.  자식의 직장 상사에게 고맙다며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하는 것 또한 자식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이다. 또한 고맙다는 누가 먼저 하느냐에 따라 주인과 객을 구분시킨다.

번외2) 아마추어지만 전문가처럼

자신이 즐겁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 일에는 지치치

도 않는다. 의무와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져 느슨한 즐거움을 누리며 전문 지식을 쌓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전문가가 되어 사람을 끌어 모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번외3) 원수 찾아 땡큐 하기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성경에 나온 이 표현은 얼핏 보면 원수를 꼭 갚고 지나가라고 가르치는 듯하지만 사실은 '동해보복(同害報復)'을 지키라는 말씀이다. 받은 만큼만 갚으라는 것.  눈을 상했으면 눈만, 이를 상했으면 이만, 받은 만큼만 돌려주는 것으로 보복을 마치라는 뜻이다. 그런데 진정한 용서란 내게 해를 가한 사람에게 축복을 빌어줄 수 있을 만큼의 경지에 가야 완성이 된다고들 한다. 그러니 보복하지 않고, 그냥 잊어버림으로 용서했다 말할 수는 없다.

세상 그 어떤 일도 좋기만 한 일이 없듯, 나쁘기만 한 관계는 없다. 모든 것에 완벽한 사람이 없고, 모든 일에 절대로 나쁘기만 한 사람은 없다. 관계와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가치. 뜻하지 않고 예측하지 못했던 만남의 섭리... 젊은 날에는 결코 알 수 없는 진리이다. 발생하는 모든 일에 의미가 있음을 깨달은 지혜로만 인정할 수 있는 사람관계이다. 이렇게 관계도를 그려보면 아주 먼 옛날 기억에서 지워버린 원수에게 땡큐 할 수 있고, 그러고 나면 현재의 용서도 훨씬 수월해진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성직자에 가까운 용서지만 나름 영악한 계산이 숨어있다. 세월의 흐름 속에 악연이 평생의 인연으로 바뀌는 것을 경험했으니까. 용서는, 더 나아가 원수에게 감사하기는 노년의 지혜와 경험으로만 얻을 수 있는 매력 만점의 '인격 완성형 무기'이다.



* 섹시하게 물드는 가을 단풍. 자연도 세상에서 사라지기 전 온 정성을 다해 스스로를 아름답게 가꿀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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