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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Nov 06. 2020

아픔이 아픔에게

단풍이 아름다운 이유

요 며칠 날이 무척 차가워진데다 감기기운이 있어서 이틀 정도 새벽운동을 나가지 않았다. 오늘 재활용쓰레기 분리배출하는 날이라 잠시 버리러 나갔다가 의외로 날이 따스해 단지 안을 한 바퀴 돌았다. 하현이 하늘 높이 떠있긴 했으나 구름이 많아 자주 가렸고, 새벽 어둠 속에서도 가로등 불빛 속에서 환하게 빛나는 나무들이 아름다웠다.  

등산을 자주 하는 이들은 올해 단풍흉년이라고들 하는데, 단지 안은 그래도 흉년까진 아니고 평작은 되는 듯하다. 이제야 붉게 물들어가는 단풍나무들은 볼 때마다 감탄을 자아내고, 칙칙하던 메타세콰이어 잎이 드디어 노랗게 물들기 시작했다. 노랗게 시작해 붉게 변하며 떨어지는 것이 메타세콰이어다. 하루하루 물들어가는 모습을 사진에 담으며 설레이고 있다.

시월 중순 한밭도서관에서 빌렸던 책 '사랑은 내 시간을 기꺼이 내주는 것이다'를 딸이 읽은 뒤로 이기주 작가의 책을 더 읽고 싶어해서 관평도서관에서 네 권의 책을 더 빌렸다.

대부분 내가 읽었던 책, 혹은 읽었다고 생각한 책들인데 책상에 펼쳐져 있으니 한 번 더 눈이 가게 되어 그 중의 한 권을 읽기 시작했다.


[언어의 온도] 첫째 장 '말, 마음에 새기는 것'의

첫째 글이 내 마음 속에 훅 들어온다.

- 언젠가 2호선 홍대입구역에서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맞은편 좌석에 앉아 있는 할머니와 손자가 눈에 들어왔는데 자세히 보니 꼬마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할머니 손에는 약봉지가 들려 있었다. 병원에 다녀오는 듯했다.

할머니가 손자 이마에 손을 올려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아직 열이 있네. 저녁 먹고 약 먹자.”
손자는 커다란 눈을 끔뻑거리며 대꾸했다.

"네. 그럴게요. 그런데 할머니, 할머니는 내가 아픈 걸 어떻게 그리 잘 알아요?"

할머니는 손자의 헝클어진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그게 말이지. 아픈 사람을 알아보는 건, 더 아픈 사람이란다..."

상처를 겪어본 사람은 안다.
그 상처의 깊이와 넓이와 끔찍함을.
그래서 다른 사람의 몸과 마음에서 자신이 겪은 것과 비슷한 상처가 보이면 남보다 재빨리 알아챈다. 상처가 남긴 흉터를 알아보는 눈이 생긴다.

그리고 아파 봤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아프지 않게 할 수도 있다. 어린 손자에게 할머니가 알려주려고 한 것도 이런 이치가 아니었을까? -

아파 본 사람이라서, 더 아픈 사람이라서, 남이 아픈 걸 예민하게 알아챈다는 할머니의 말씀과 이기주 작가의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거지가 동냥을 다니면, 부자 동네에선 문전박대당하기 십상이지만 가난한 동네에서 오히려 먹을 것을 넘치게 얻는 것과 같은 이치리라. 배고파본 사람이 배고픈 사람의 사정을 가장 잘 아니까.
 
내가 누군가의 아픔에 예민하게 반응할 때가 언제인지 떠올려보면, 그 아픔을 나도 겪었기 때문에 그랬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 아픔을 누군가가 다시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 더욱 애썼다는 사실도.

단풍은 멀리서 보면 밝고 화사하지만 한 장 한 장 세밀히 살펴보면 상처가 있다. 물론 완전무결하게 깨끗한 잎도 간혹 있으나 대부분은 아주 작더라도 상처 하나쯤 가지고 있다. 어쩌면 단풍을 더 예뻐보이게 만드는 건 이들이 품고 있는 그 상처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파 본 사람이 그 아픔을 알아채듯이 상처 받은 자는 상처 입은 자를 위로하는 힘이 있다.

풍찬노숙하며 비바람도 태풍도 뜨거운 태양도 고스란히 견뎌내느라, 내밀하게 입은 상처를 딛고 마지막 힘을 짜내는 단풍이 저리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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