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애쓴 청소기에게 공로상을 주었어요. 서울 신혼집에서부터 지금의 대전집까지 모두 세 집을 거쳐가며 그 작은 몸으로 집안 곳곳을 열심히 청소해온 아이니 공로상을 줄 만하지요.
나루가 뱃속에 있을 때도 이 아이를 쓱쓱 밀고 다니며 청소했고, 나루가 태어났을 땐 아이 자는 시간을 피해 살살 밀며 청소했고, 나루가 한창 클 때는 치워도 치워도 금방 지저분해지는 집안을 깨끗이 해주는 일등공신이었으며, 외출전에 부리나케 청소하고 있는데 엄마돌이 둘째가 엄마 좋아~~ 하며 제 뒤로 무심코 다가왔다가 청소기에 부딪혀 얼굴에 영광의 상처를 남기기도 한... 제 결혼생활의 처음부터 지금까지 모든 것을 함께 한 애증의 산물이지요.
유선진공청소기가 있어도 무선이라는 점때문에 편리해서 이 아이를 더 애용했고, 오래 썼으니 바꿔볼까 하는 마음에 가전명품이라 자찬하는 대기업에서 나온 무선진공청소기를 산 적이 있지만 흡입력도 떨어지는데다 1년도 못쓰고 사망하셨지요.
그래서 흡입력이 떨어지면 중간 중간 밧데리를 갈아끼워가며(청소기 몸체 뒤에 교체기록을 해두었는데, 그동안 총 네 번 갈아끼웠더라구요)
잘 써왔건만, 청소기는 멀쩡한데 충전기가 고장나는 바람에 더이상 쓸 수 없게 되어 어쩔 수 없이 안녕을 고하게 되었답니다.
이 아이를 만든 회사는 두원테크라는 곳으로 작은 중소기업이지만 기술력이 뛰어난 회사같았어요. 무선청소기를 선물 받은 뒤로 7년을 넘게 써도 밧데리가 여전히 빵빵해서 흡입력이 좋아 만족도가 높았답니다. 그래서 어머님과 합가할 때 어머님방에 놓고 쓰시는 용도로 새것을 사드리려고 보니, 두원테크는 사라지고 대기업으로 합병되었더라구요. 그 기업에서 동일 모델의 청소기를 만들고 있고, 서비스센터가 같아서 알게 되었지요.
그래도 같은 모델이니 비슷하겠지~ 하는 마음에 차별화를 위해 하얀색으로 된 무선청소기를 샀는데, 이 하양이는 밧데리도 금방 닳고 진회색 형님보다 더 빨리 망가지고 말았답니다. 대기업에 흡수되면서 두원테크의 기술력이 사라진 것 같아 많이 아쉬웠어요.
서비스센터 말로는 밧데리는 부품이 남아있는 한 갈아서 쓸 수 있지만, 충전기는 한 번 망가지면 더이상 쓸 수가 없다고 하더라구요. 하얀색 충전기가 망가지고 난 뒤에도 진회색 충전기는 말짱해서 잘 썼는데, 23년을 쓰니 드디어 가실 때가 되었나 봐요.
올해 들어 충전기에 청소기를 꽂으면 빨간 불이 바로 안 들어오고 어찌어찌 핀트를 잘 맞춰야 들어오더니만 이젠 그마저도 안 되기에 이르렀답니다. 그래서 아쉬움을 가득 안은 채 떠나보내게 되었지요.
물티슈로 청소기 이곳저곳을 깨끗이 닦고 필터안의 먼지들도 탁탁 털어서 비운 다음, 기념사진을 찍고 미리 써둔 공로상을 붙여주었어요. 밖에 내놓기 전에 이 상장은 떼어내야 하지만 그 전까지만이라도 붙이고 있으라구요.
이제 이 아이가 있던 자리에는 요즘 인기 좋은 가전브랜드의 진공무선청소기가 당당하게 서있답니다. 이 아이에 비해선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차츰 익숙해지고 정이 들겠지요.
하지만 아무리 메인모터 평생보증이라고 해도, 23년을 버텨낼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아요. 새 무선청소기를 쓸 때마다 떠나보낸 아이가 떠오를 것 같아요. 뒤늦게 이 아이에게 이름을 붙여서 불러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