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느냐 아니냐의 기준은 의미 부여가 되는 리추얼을 몇 개나 가지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한다.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리추얼은 아침 식사입니다. 아내가 과일을 깎아오고 빵를 구워오면, 저는 커피를 직접 갈아서 끓입니다. 집 안에 커피 향이 가득 퍼지면 무지 행복해요.
우리 가족은 집 뒷산에 우리만의 형제 약수터가 있어요. 아이들과 함께 땅을 파서 만든 거예요. 우리 아들 녀석이 사춘기 시절 가출도 하고 패싸움도 하고 별거 다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기분이 좋을 때에는 형제 약수터에 가자고 그래요. 여기 가서 아이들과 있으면 전 행복합니다.
내 개인적인 삶에서 가장 중요한 리추얼은 수첩에 만년필로 끼적일 때입니다. 그 순간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요."
책 '노는 만큼 행복해진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남자의 물건' 등으로 대중에 잘 알려진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박사가 소개한 자기 가족의 리추얼이다.
그럼 도대체 '리추얼'(ritual)이란 무엇일까?
한 마디로 하면
세상의 방해로부터 나를 지키는 혼자만의 의식이다.
‘리추얼’은 의식을 의미하는 단어로,
하루를 마치 종교적 의례처럼 여기는 엄격한 태도이자,
일상의 방해로부터 나를 지키는 유용한 도구,
삶의 에너지를 불어넣는 반복적 행위이다.
- 리츄얼 / 메이슨 커리 / 책읽는수요일
토마스 홉스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까지
지난 400년간 가장 위대한 창조자들로 손꼽히는
161명의 완벽한 하루에서 찾아낸 결정적 리추얼들을
소개한 이 책에 나온 '리추얼'의 뜻이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글을 쓰기 위해 특별히 마련된 공간이 아닌 튼튼한 탁자와 타이프라이터가 필요한 것의 전부라고 말했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대여섯 시간을 일하고 오후에는 달리기나 수영을 하며 저녁 9시에 잠들었다.
문학·예술·철학·과학 등의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긴 인물들은 이렇듯 각자 자기만의 의식을 통해 창조적 영감을 얻었다.
김정운 박사의 설명은 좀 다르다.
‘리추얼’이란 습관하고 비슷하지만 그냥 습관은 아니고 리추얼의 내용적 조건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정서적 반응과 의미 부여'이다.
유대인은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한 번은 꼭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한다고 한다. 유대인이 특별한 DNA를 갖고 있지 않음에도 위대한 민족으로 인정받고 있는 이유는 바로 리추얼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어디에 있든지 안식일에는 반드시 가족들끼리 모여서 밥을 같이 먹는다는 리추얼. 그래야 유대인이 된다고 생각하는 리추얼이 수천 년의 세월이 흘러도 지켜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운 박사는 리추얼에 대해 "어찌 보면 너무 사소해서 허탈하기까지도 한 삶의 반복되는 패턴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여기 안전여행을 위한 우리 가족만의 리추얼이 있다.
호남고속도로 하행선을 타고 달리다 보면 북대전나들목에서 서대전나들목 사이, 서대전 나들목 약 1km 전 오른쪽 산 아래에 10m를 훌쩍 넘길 듯한 키 큰 불상이 보인다. 얼굴만 금칠이 되어있고, 목 아래로는 그냥 희끄무레한 철불이다.
이 불상 앞을 지날 때마다 우리 가족은
"안녕하세요~ 불상아저씨! 우리 오늘 00 가요~
잘 다녀올게요~ 우리 없는 동안 대전 잘 지켜주세요^^"
하고 불상을 향해 손을 흔들며 큰소리로 인사한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며 이 불상 앞을 지나치면 또 어김없이 이번엔 왼쪽에 서있는 불상을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며,
"우리 잘 놀고 왔어요~ 불상아저씨! 안녕히 계세요~"
소란스레 안부인사를 남기고 집으로 향한다.
안전여행을 위한 우리 가족만의 리추얼이다.
이런 리추얼 덕분인지 아직까지 호남선을 거쳐가는 여행길에서 사고가 난 적이 한 번도 없다.
둘째가 세 살 무렵이었던 때는 이 불상에 얽힌 재미난 일화도 있다. 어머님까지 모시고 남도 어딘가를 향해가던 중에 역시나 또 불상아저씨와 인사를 나눌 때가 되었다.
당시 여섯 살이던 첫째는 아기 때부터 쭉 해온 의식이라, 이번에도 가족과 함께 불상아저씨를 향해 안부인사를 열심히 했다. 그걸 보던 둘째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자랑스럽게 말하길,
"나도 불상 알아요~"
아는 체를 하는 것이다.
세 살, 한창 말이 늘고 세상을 향한 호기심이
뭉개뭉개 뜬구름처럼 생겨나는 나이였다.
"오잉? 구래? 불상이 뭔데?"
어머님과 남편, 나를 비롯해 첫째까지
놀라움 반 기대 반으로 물었더니
"코피 나고 아픈 거요~"
하는 거다. 둘째의 이 대답에 온가족이 하하호호깔깔거리며 얼마나 신나게 웃었는지 모른다.
애기 때부터 몸이 약한 편이었던 둘째는 코피가 자주 나서, 코피가 날 때마다 내가 휴지로 피를 닦아주며
"아이구~ 불쌍한 것~ 얼마나 아플까..."
했던 나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불상'을 발음 그대로 '불쌍'으로 듣고
자기딴엔 아는 거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한 거다.
지금도 그 불상 앞을 지날 때면 둘째의 코피 나고 아픈 불상 이야기가 떠올라 빙그레 웃곤 한다.
한 번은 온 가족이 그저 지니치기만 했던 불상아저씨가 계신 곳을 직접 찾아가 가까이에서 알현하기도 했다. (그때가 2013년 1월이었는데수운교 혹은 천도교 관련 단체에서 세운 불상이었다.)
요즘은 아이들이 우리 부부와 함께 어딜 다니는 일이 많이 줄어서 서대전 불상아저씨를 향해 안부인사하는 의식을 자주 하진 못하지만, 우리 둘만이라도 그 앞을 지나칠 때면 여전히
"우리 잘 갔다 올게요~ 불상아저씨!"
하며 인사를 한다.
우리 가족만의 소소한 리추얼이지만 불상아저씨와 나누는 인사가 앞으로도 우리의 안전여행을 보장해주리라 믿는다. 그리고 이 리추얼은 우리가족의 삶이 제대로 돌아가게 해주는 징표이기도 하다.
문득 당신의 삶에는, 당신의 가족에게는
어떤 리추얼이 있는지 궁금하다.
아직 없다면 하나쯤 만들어 키워보실 것을 적극 권한다.
* 작년 오늘 썼던 글이 떠올라 며칠 전 찾았던 불상아저씨 이야길 덧붙인다.
우리가족 안전여행의 수호자인
서대전 나들목 불상아저씨를
2021년 10월 11일에 다시 찾아갔다.
아이들 어릴 때니 10년도 더 전에 온 가족이 찾아간 뒤 참으로 오랫만이다. 한글날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그 앞을 지나다가 불상아저씨 모습이 좀 달라진 것 같아 들여다보기로 한 것이다.
전에는 불상 앞으로 가려면 농가 한 채를 지나 오솔길로 들어가야했는데, 그 농가는 사라져 잔해만 남았고 주변은 철조망 울타리가 쳐져있었다. 근처 밭에서 고구마를 캐고 계시는 분이 계셔서
"전에 여기 집이 한 채 있었는데 지금은 없네요~"하고 여쭈니, 부모님께서 사시다 돌아가셔서 집을 새로 지으려고 부쉈다고 하신다.
불상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곳도 철조망이 둘러쳐져있어 들어가볼 수 없게 돼있었었다.
아저씨 말에 따르면,
불상까지 들어가는 길이 자기네 땅인데 전에는 무상으로 드나들게 했다가, 주변에 과수원을 조성하면서 산짐승 피해도 있고, 그 불상을 정기적으로 관리하는 사람들도 없고, 철거도 하지 않아서 모두 철조망을 쳐버리셨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엔 바로 앞까진 가지 못하고, 철조망 울타리 앞까지만 가서 바라보며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아무도 가까이 가지 못한 채, 철조망에 둘러쳐져있는 탓인지 불상아저씨 얼굴이 왠지 무뚝뚝하고 슬퍼보였다. 몇 년간 관리해주는 사람 없이도 우뚝 선 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고맙기도 하면서, 안돼기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우리의 안전지킴이 수호신인 불상 아저씨가 오래오래 그 자리를 지켜주시길 바라는 건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