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째 붙박이로 살고 있는 이 집은 결혼한 지 4년만에 아파트청약을 넣어서 분양에 당첨됐고, 입주시점인 2006년 3월 기준 결혼한 지 7년만에 우리집을 마련했다.
그때만 해도 대전에서 아파트를 분양한 역사 이래 최고라는 3:1의 경쟁률을 뚫고 분양받게 되어 기쁨이 컸다. 한국판 실리콘밸리를 만들겠다며 대전시와 한화가 의기투합해 만든 아파트 근처 산업지원시설 용지 분양 경쟁률은 650:1을 기록하기도 했다.
인생에서 가장 애착이 간다는 첫 집에서 살게 된 이후, 남편의 발령이나 아이들의 성장에 따라 서울로 다시 올라가거나 더 큰 평수로 이사할 뻔한 적이 있었으나, 이런저런 사정과 함께 지금 사는 집과 이웃들이 너무 좋아서 그냥 눌러앉았더니 어느덧 17년째 한 집에 살게 되었다. 내 생애 가장 오랫동안 한 집에 산 기록이다.
이렇게 우리가 한 집에 머문 동안 아래윗집은 사는 이가 세 번 바뀌었다. 바뀔 때마다 인사를 나누고, 음식이 오가고, 차를 마시며 잘 지내왔는데... 아래층에 마지막으로 이사온 사람들과 층간소음 문제로 조금씩 삐걱대기 시작했다.
큰 애가 다섯 살, 작은 애가 두 살 때 이 집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으니 사실 층간소음 문제로 아래층과 갈등이 생겼다면 아이들 어릴 때여야 맞다. 그런데 그때는 한 번도 층간소음으로 아래층과 얼굴 붉힐 일이 없었다. 오히려 우리가 빵이나 과일, 시골에서 주신 농산물 등을 들고 인사하러 내려하면 자꾸 이런 거 들고 오지 말라고, 자신들 집에서는 위층 소음이 하나도 안 들린다면서 너무 신경쓰지 말라고 하실 정도였다. 그런데 아이들이 다 커서 층간소음 걱정이 거의 없는 중고등학생이 된 뒤에야 이사 들어온 세번째 아래층 사람들은 수시로 층간소음문제를 제기했다.
식탁의자 끌리는 소리가 너무 시끄럽다부터 시작해서, 창문/방문 여닫는 소리, 베란다 문 여는 소리, 세면대에서 물 내려가는 소리, 수도꼭지 돌리는 소리, 심지어 양치하는 소리까지!
잊을만 하면 한 번씩 층간소음을 거론하는 것이었다. 하도 자주 하니까 자기네도 좀 그랬는지 처음엔 직접 찾아와서 이야길 하거나 문자로 조심스레 의견을 전달하다 나중엔 관리실을 통해서 전달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작년엔 환경부가 운영하는 층간소음 관련 조정기관에까지 층간소음 민원을 넣어 관리실에 비상사태가 나기도 했다.
평소에 잦은 교류를 한 것은 아니지만 층간소음을 제기하면 바로바로 고쳤고, 입주 이후 늘 그래왔듯이 시시때때로 먹을 것을 들고 가서 소위 기름칠도 하며 잘 지내왔는데, 환경부 민원까지 하다니 정말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관리실을 통해 베란다 문 열때마다 소리가 나서 시끄럽다고 두어 달 전에 민원을 접수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관리실에서 내게 전달을 안 한 것이었다. 그바람에 우리집은 전혀 모른 채 지냈고, 아래층은 나름대로 참다참다 계속 문소리가 나니까 관리실을 거치지 않고 바로 환경부에 민원을 넣은 것이었다.
환경부에서 층간소음 중재 공문을 받은 관리실은 화들짝 놀라 소장님까지 총출동하여 우리집과 아랫집을 다니며 소음의 원인분석을 하고 해결방법을 논의해서 잘 마무리되긴 했지만, 그야말로 식겁한 사건이었다. 우리집 식구들은 지금도 베란다 문 열 때마다 아래층을 의식해 조심조심 살살 밀고 닫는다.
10년 넘게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층간소음 민원을 세번째 아랫집 사람들에게 몽땅 다 겪은 셈인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대부분의 소음문제는 우리가 조심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집이 점점 노후화되서 자연스레 생겨난 일이었다.
최근에 제기된 소음민원인 세면대 수도에서 나는 삑삑 소리도 집이 오래되어 수도꼭지가 노후화되다 보니 뻑뻑해지며 나는 소리였다. 우리집 화장실에선 그렇게 크게 나는 소리가 아닌데, 아래층에서는 배관을 타고 내려간 소리가 증폭되면서 크게 들린다고 한다. 이 사실은 관리실 설비전문가들이 우리집에 두 차례나 와서 수도꼭지 점검을 한 뒤에야 알게 되었다.
처음 관리실에서 점검 나왔을 땐 우리집 수도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었는데, 아래층이 그 소리 때문에 밤에 잠을 못 잔다며 계속 민원을 제기하니 우리집뿐만 아니라 위아래 옆집들 수도까지 다 점검하고도 그 소리의 원인을 못 찾다가 결국 우리집에 두 번째 점검을 나오고서야 밝혀졌다. 그러니까 관리실의 설비전문가들도 잘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의 소음인데 아래층 사람들이 워낙 민감하다 보니 재점검을 하면서 주의깊게 소리를 들어보고서야 밝혀진 것이다.(처음 점검을 하고난 며칠 뒤 텃밭에 다녀오면서 아래층 아줌마랑 엘베 앞에서 마주치게 되어 이야길 나눴는데, 자신은 잠들면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남편이 예민해서 자다가도 화장실에서 나는 소리를 다 듣는다고 했다.)
관리실에서도 우리집에 미안했는지, 수도꼭지 부품만 사다놓고 연락주시면 바로 교체해드리겠다고 중재안을 제시했다. 그래서 기왕 이렇게 된 거 오래되서 뻑뻑하다 싶은 수전들을 다 교체하기로 했다. 나중에 또 같은 문제로 민원이 제기될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문제가 된 안방욕실 세면대 수도뿐만 아니라 샤워기, 싱크대 수전까지 싹 다 바꾸었다. 안 그래도 싱크대 수전은 새로 바꿔야겠다 하던 참인데 원님덕에 나팔 분다고, 민감한 아래층 사람들 민원덕분에 덩달아 바꾸게 되었다.
사실 이런 수전들 교체하려고 기술자 불러서 바꾸려면 잘은 몰라도 공사비가 꽤 나왔을 거다. 관리실 기사님들이 그냥 해주셨으니, 우리로선 공사비를 따로 내지 않고도 새것으로 교체할 수 있어 오히려 잘 되었다 싶었다.(물론 땀 뻘뻘 흘리며 수고하신 기사님들께는 시원한 둥굴레차도 대접하고, 비타민음료랑 딸이 만든 쿠키랑 도라지배즙이랑 사과까지 나중에 드시라고 따로 챙겨드렸다, 감사한 마음으로)
비록 층간소음 민원의 대상이 된 입장이라 속이 상하고 기분이 안 좋기도 했지만 새로 바꿔서 반짝반짝 빛나는 수전들을 보니 이런 게 전화위복인가 싶었다. 지속적인 소음민원을 제기한 민감한 아래층에 마음한편으론 고맙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