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도 딸과 함께 쇼핑하러 갔던 용산동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우리는 줄여서 '용현아'라고 부르는 쇼핑몰이다.
현대프리미엄아울렛 대전점은 지하 2층· 지상 7층, 연면적 13만㎡ 규모에 280개 매장과 호텔(100실), 컨벤션센터, 영화관 등을 갖춘 복합 시설로 2020년 6월 26일 개점했다. 개점당시 바로 앞 고등학교를 다니던 딸은 학교가 일찍 끝나는 날이면 친구와 함께 신나서 구경을 다니기도 했던 곳이다.
9월 26일 아침 7시 40분 무렵, 운동을 마치시고 거실에 놓인 안마의자에 누워 안마를 받으시던 어머님께서 이러시는 거다.
"이상하다. 하늘에 어째 꺼먼 먹구름이 몰려오냐?"
아침식사를 식탁에 부랴부랴 차려놓고, 거실 베란다로 나가보니 진짜 아파트 왼쪽에서부터 시커먼 구름이 뭉실뭉실 몰려나오는 게 심상찮아보였다.
"어디서 불이 났나 봐요? 저쪽이면 용현아 있는 곳인데..."
그러고서 남편을 깨워 아침을 먹다보니, 시커먼 구름이 점점 더 심하게 퍼지고 큰길에서 소방차의 싸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불이 나긴 났나 보다... 그런데 싸이렌 소리가 좀 들리다 말아서 큰불이 아닌가 보다~ 하고 평상시처럼 밥을 먹고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했다.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하면서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8시 45분에 유성구청에서 재난문자가 왔다.
오늘 07:45경 관평동(용산동인데) 현대프리미엄아울렛 내 지하주차장 화재가 발생하였으니 이 지역을 우회하여 주시고 인근 주민은 안전사고 발생에 유의 바랍니다.
'용현아에서 불난 거 맞구나. 아직 개장전이니 별다른 인명피해는 없겠지?' 했는데 아니었다. 오후부터 쏟아진 기사들을 보고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대형화재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남일 같지 않으면서도 사실 멀게만 느껴졌던 사건이 우리 동네에서, 그것도 지척에서 늘상 보는 쇼핑몰에서 일어났고, 게다가 그 불로 인해 8명이나 되는 사상자가 생겼다니! 피해자들 소식만 전해들어도 이렇듯 가슴이 아프고, 심장이 벌렁대는데 피해자 가족들은 얼마나 억장이 무너질까... 오후 내내 마음이 울적하고 괴로웠다. 마음을 진정시키느라 오후늦게 텃밭을 다녀오기도 했다. ㅜㅜ
저녁 뉴스를 보니 8명의 피해자들은 택배·청소·방재 업무 관련 근로자들로 이 가운데 사망자 7명은 30대부터 70대까지 남성 6명과 60대 여성 1명이고, 부상자는 40대 남성이라고 한다. 피해자 대부분이 중년이다. 한창 일할 나이에, 누군가의 엄마이자 아빠이자 남편이자 부인이었을 사람들. 아침에 출근할 때만 해도 평상시처럼 잘 다녀오라고 인사 나누고 집에서 나왔을 텐데, 일터에서 갑자기 일어난 불로 결국 퇴근하지 못하고 말았다.
이래서 하는 말이,
"있을 때 잘해~" 인가 보다.
그날따라 아침에 출근한 남편이 하루 종일 카톡에도 답이 없고, 퇴근까지 늦어져서 얼마나 애가 탔는지 모른다. 평소라면 카톡에 바로 답하고 퇴근이 늦어지면 무슨 일로 퇴근이 늦어지는지 알려주는데, 카톡과 문자로 왜 늦냐고 해도 답이 없는 것이었다. 어디선가 소방차의 싸이렌 소리는 계속 들려오고... 설마 또 불이 난 건 아니겠지? 싶으면서도 많이 걱정됐다.
동네수퍼에서 꽃게 세일을 하길래 남편이 먹고 싶다고 노래부르던 '양념게장'을 만들며, 무사히 퇴근해 그토록 앙망하던 양념게장을 맛있게 먹어주길 바라고 또 바랐다.
다행히 저녁 7시 34분에 출발한다는 문자가 왔고, 20여 분 뒤 남편이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남편을 기다리던 양념게장은 남편 입을 거쳐 깨끗하게 비워졌다. 남편의 쩝쩝대며 먹는 소리도 아주 이쁘게 들리던 저녁이었다.
인생사,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고
언제 이 세상 소풍 끝낼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살아) 있을 때 잘 하자!'
는 생각을 마구마구 했던 날이었다.
- 삼가 고인이 되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아울러 중태에 빠진 분이 곧 회복하시길 두 손 모아 빕니다.